나의 첫인상

by 연은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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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고려화학에 입사해서 직장 생활할 때 일이다. 영업소 건물에서 가장 높은 직급은 비서가 딸린 상무님이었고 내가 속한 중방식 기술 영업부에는 이사님이 최고 직급이었다. 그런데 석 달에 한 번 서울 본사에 있는 상무님보다 높은 전무님이 행차하시는 거다. 분기별 사업부 회의가 열리는 그날은 부서장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회의 당일 오전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못 보던 분이 올라오길래 '안녕하세요'하고 밝게 인사를 했다. '오, 그래요. 상무실이 아딘가? "네. 3층입니다." 알고 봤더니 그분이 바로 서울에서 오신 전무님이었다. 전무님이 '계단에서 만난 여직원이 인사를 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웃는 인상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부서 차장님이 전해주었다.


서울 상경할 때 함께 올라온 만화 그리는 동갑친구는 서울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 언니네 집에서 생활했다. 언젠가 친구 언니를 만나게 되어 인사를 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둘째 언니는 나를 좋게 보았다.

"야, 은미야. 우리 언니가 내 친구들 중에 니 인상이 젤 좋다더라." 후에 친구가 전해 주었다.


살면서 인상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결혼을 해서도 시어머니, 서울에 계신 작은 아버님네도 나를 이쁘게 봐주셨다.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나에게 최대 약점이 있었으니 정작 나는 다른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애매한 얼굴은 학부모 모임에서 한두 번 본 엄마들이다. 만나서는 반갑게 이야기를 하는데 거리에서 상대방이 인사를 하면 누군지 몰라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아이 친구가 인사를 하면 어, 그래? 안녕~ 하고는 누구더라? 하고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으니 얼마나 미안한지. 혹시 이름이 틀리면 민망하여 이름을 빼고 스리슬쩍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뜬다.


한 번은 부부동반 연말 모임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남편이 맥주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밤 11시에 동네 호프집에 들어갔다. 둘이서 수다를 한참 떨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백허그를 하는 게 아닌가? 저 뒤에서 담배 피우고 오겠다고 한 남편인가? 갑자기 이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는 맘으로 뒤돌아봤더니 어떤 엄마가 때로때록 눈을 굴리며 내 어깨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안에서부터 그렇게 손을 흔들었는데 한 번을 안 보더라. 같이 온 남자 누구야?"

아니, 그쪽은 누구세요? 누구지? 반말이면 동갑 아니면 언니인데... 언니는 아닌 것 같고...

"이 시간에 낯선 남자와 술을 마셔서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마나 고민했다고."

맥락을 재빠르게 파악하며 자세히 얼굴을 뜯어보니 나예 엄마다!

"아, 00아, 뭐야, 깜짝 놀랐잖아. 누군 누구야, 남편이지. 근데 안에 있었다고? 난 왜 몰랐지?"

코 앞에 아이 친구 엄마가 앉아 있었는데 몰랐다니, 내가 참 얼굴을 안 보고 다니지만 심했다. 정말.


최리나 작가님 결혼식에서도 얼굴을 잘 몰라봐서 실수를 연발했다. 함께 강의 수강을 하며 줌으로도 얼굴을 봤는데 딴 분한테 000님이시죠? 하며 인사를 했다. 어마, 저 000 아닌데요. 아하하. 죄송해요. 닮았는데... 땀방울 흘리며 자리로 돌아와서 SNS 단톡방에 들어가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느라 머릿속이 무지하게 바빴다.


이번 주 맘에스밈 & 글로성장연구소 오프 세미나가 있다. 별별챌린지 42일 차, 매일 글을 함께 쓰는 작가님들과 끈끈한 동지 의식이 쌓여가며 직접 만나고 싶다 생각했다. 일은 바쁘고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이 데려다준단다. 착한 남편 덕분에 이동수단이 편하게 세팅되었다. 오랜만에 집순이 탈출이다. 금요일까지 열심히 작업하고 가야겠다. 몇 번 만난 분들을 또 몰라볼까 걱정이 되지만 환하게 웃으면 봐 주시겠지. 내가 인상은 좀 좋은 편이니까.


이름표와 얼굴 매칭해서 잘 외워보겠습니다. 작가님들 만날 생각 하니 설렙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얼굴 #첫인상 #일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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