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밀당은 아침부터 시작된다

초핀과 나의 아이패드 쟁탈전

by 연은미 작가
초핀과 나는 책상 짝꿍이다



"엄마가 젤 부러워. 어디 안 가고 하루종일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나도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싶다."

요즘 들어 부쩍 수학 학원을 가기 싫어하는 초핀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누워서 옷을 갈아입으며 그림 작업하고 있는 나를 부럽게 쳐다본다.

내가 제일 부럽다니, 딸한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예비중딩으로서 겨울 방학 초핀의 계획은 딱 하나, 1일 1 그림을 그리겠다는 거였다. 마카, 색연필, 물감을 사달라고 해서 졸업선물로 그림도구 세트를 싹 사주었다. 그랬더니 정작 그림은 내 아이패드로 많이 그린다. 역시 요즘 애들은 디지털 드로잉이 익숙하다.


"엄마, 나 결심했어. 웹툰작가가 될 거야. 예고도 가고 싶은데 어떡해야 되는지 좀 알아봐 줘."

"정... 말이야?"

"정말이야."


초핀의 꿈 선언 후 몇 가지가 달라졌다.

첫 번째는 기상 시간이다.

6학년 방학까지만 해도 11시 넘어야 겨우 일어나던 녀석이 지금은 8시에 꼬박꼬박 일어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내가 운동을 간 사이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엄마 운동 간다. 주스 갈아놓은 거 먹어."

"응."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먼저 앞 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찬바람이 쌩하고 실내로 들어오면 그림을 그리던 초핀은 아이패드를 가지고 안방으로 쏙 들어가 이불을 덮고 이어서 그림을 그린다. 그 사이에 나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국민체조 3세트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이제 마무리해"

"알았어. 조금만, 하던거만 마저하고"

몇 번의 성화에 겨우 내 아이패드를 넘겨받는다.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두 번째 달라진 점은 드디어 초핀을 운동의 세계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저학년 때만 해도 밖에서 살았던 초핀은 엉덩이가 무거워져 집에 콕 박힌 집순이가 되어 버렸다. 초핀을 밖으로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2년 전처럼 플라잉 요가를 하라고 해도 안 하고 싶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고정적인 활동이 더 늘어나는 게 싫단다. 이렇게 덕후 기질이 있는 유형은 특히 정기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게 모친의 생각인데 머리 굵어졌다고 돈 주고 운동을 시켜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니 세상 편한 녀석 같으니라고.


"건강하게 쭉 오래 그리고 싶으면 0순위가 운동이야."

"그림만 잘 그린다고 만화가가 되나. 글도 잘 써야 하고 가장 중요한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만화가 되기 전에 몸이 아작 난다."

"알았어......."

동기가 생겨서인지, 드디어 아침운동을 시작했다.

후딱 걷고 오는 2천보 정도라 성에 안 차지만 시작을 했으니 엉덩이 팡팡 두드리면서 독려해야겠다.

세 번째는 학습 몰입도다.

공부에 큰 취미가 없는 초핀은 그동안 세월아, 네월아 하며 몇 시간 동안 홈워크를 하셨는데 이제는 저녁에 그림 그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집중해서 재빨리 해치운다. 숙제를 하면서 반 협박을 한다.

"엄마, 열심히 해. 잘못하면 나한테 따라 잡혀. 공부 끝나면 내가 그릴 거야."

헐이다. 예전에도 틈틈이 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지만 이건 거의 아이패드 쟁탈전 수준이다.

마감 중인 엄마를 재끼고 그림을 그리려는 당돌한 초핀을 기가 차서 쳐다본다.


초핀은 요즘 인체를 잘 그리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일러스트를 한 장씩 완성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니 눈이 반짝반짝한다. 어려운 구도의 그림에 도전하는 건 칭찬할 만하다.

"엄마, 내가 봐도 몇 달 전보다 많이 늘었어. 예전엔 맨날 정면 그림만 그렸는데. 뿌듯해. 엄청 뿌듯해.

자리에 앉으면 두, 세 시간을 꼼짝 않고 그리는 초핀이 걱정스러워 묻는다.

"딸아, 허리 안 아파?"

"안 아픈데."

".... 어려서 좋구나."

"그림이 그렇게 좋아?"

"좋지, 너무 재밌지."

"마감이 얼마나 힘든데."

"엄마, 나 마감 잘하게 생기지 않았어?"

"푸하핫. 그러게. 새벽같이 불금을 달리는 거 보면 잘할 것 같아."

초핀과 이런 대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덕후기질이 농후한 덕녀 초핀이 나보다 웹툰작가로서 더 잘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내 나이로 돌아가면 뭘 하고 싶어?

가끔 아주 중요한 질문은 던지는 초핀

"음... 책을 많이 읽고 싶어. 어릴 때 책을 많이 안 읽은 게 가장 후회돼.

그림 그리는 만큼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썼으면 지금 생각하는 거랑

글 쓰는 거, 엄청 달라졌을 거야."

요즘 엄마가 매일 챌린지 글 쓰는 거 늠 잘하는 거 같지 않아?

"그래, 잘하고 있어."

그니까, 초핀아... 영혼없이 대답하지 말고... 넌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쓰란 말을 하고 싶은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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