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장 서러울 때는 내가 아플 때다. 남편, 가족이 아프면 당연한 듯 수발을 드는데 정작 내가 아플 때는 잘해야 죽배달 정도의 호사를 받는다. 남편은 먹는 거야 사 먹으면 되니 좀 쉬라고 하지만 끼니를 며칠이나 배달음식으로 때울 수는 없다. 설거지와 요리를 해주면 좋겠는데 늦게 퇴근하는 남편에게 그것까지 바라기도 어렵다. 아파서 집안을 못 챙기면 집안이 어수선해진다. 아무리 서로 일을 나눠 분업화를 한다고 해도 내가 손대야 할 자잘한 일들이 너무 많다.
치우면 표 안 나지만 안 치우면 표 나는 집안일. 소싯적 남편은 집청소, 화장실 청소도 때깔 나게 했는데 일이 바빠지면서 하나씩 손을 떼더니 지금은 집 청소에 신경을 껐다.
"내가 오히려 신경 끈 걸 고맙게 생각해야 돼. 신경 끈 대신 잔소리는 안 하잖아?"
맞다. 남편은 흩트러지는 걸 싫어하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다. 결혼해서 청소할 때마다 책 윗면이랑 책 등과 표지를 다 닦아서 책장에 꽂힌 많은 책이 항상 뽀득뽀득했다. 여러 사람이 만지는 도서관 책 느낌이 끈적하니 불쾌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도서관에서 책 대여를 하면 나도 남편 따라 책을 다 닦아서 보기 시작했다. 남편이 추가로 항변한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애들이 어릴 때 논다고 집안을 흩트릴 때부터 일부러 신경을 껐다고, 아님 애들을 혼내거나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야."
하긴 집안 살림을 잘해도 내가 하고 냉장고에 음식이 썩어도 내가 버리는 게 속이 편하긴 하다. 아주 가아끔 잔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남편 잔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을 줄 몰랐다. 1절만 하는데도 딱 듣기 싫다.
속에서 막 분노가 올라온다. 내가 살림만 하냐? 일 하면서 신경 쓸 게 한 두 가지야? 그렇게 잔소리할 거면 직접 하든가!
"그래서 내가 신경을 껐다고. 못해주니까 " 말로 못 당할 저 당당한 남자!
암튼 아플 때 손가락 까딱 못하고 누워서 앓다가 일어나 지저분한 집안을 둘러보면 우울해진다. 머리는 아프고 으슬으슬 떨리는데 입맛이 없다. 밥때가 다가오고 사 먹기는 돈이 아깝다. 그럴 때 서럽다. 내가 움직여야 애들 뱃속에 먹을 게 들어가는구나. 평생 밥해야 하는 게 여자의 업이라더니, 아파도 밥 걱정을 해야 되는구나, 아플 때만이라도 하루종일 누워 쉬면서 나만 생각하고 싶다. 나를 위해 누군가 만들어주는 밥상을 받고 싶다. 누워 있으면 방문을 열고 우렁각시가 갓 끓인 뜨끈한 매생이죽을 만들어 침대로 갖다 주는 모습을 상상한다.
매생이굴죽은 내 소울푸드다. 입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국물과 매생이가 입 속으로 후루룩 빨려 들어오면 굴과 어우러진 특유의 바다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많이 씹지 않아도 잘 넘어간다. 뱃속이 뜨끈해지고 곧 몸 전체가 따끈따끈해지는 기분이다. 아플 때는 밥이 잘 안 넘어가는데 뜨거운 매생이굴죽 한 그릇 뚝딱하면 제대로 보양한 느낌이 들어 아픈 것도 금방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매생이 죽은 집에서도 외식으로도 가족과 함께 먹기 힘든 음식이다. 나 빼고 아무도 매생이도, 굴도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엌일을 최대한 짧은 시간에 하려는 나로서 나만 좋아하는 메뉴를 식탁에 따로 올리는 건 가성비, 효율성이 떨어진다. 몇 번 매생이 굴죽을 끓였는데 아이들은 비주얼에 우웩 하고 도망갔다. 음식이란 참 묘하다. 혼자 먹을 때와 함께 먹을 때 느끼는 맛이 다르다. 누구와 어떤 분위기로 먹느냐가 같은 요리의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상대도 함께 좋아하며 서로 맛있다고 주고받으며 먹어야 더 맛있게 느껴진다. 요리를 하면 나도 모르게 물어본다.
"어때? 맛이?"
"음~ 맛있어." 또는 미지근하게 "먹을 만하네." 또는 "뭔가 부족한데?"라는 품평이 돌아온다.
그 한 마디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밥 하느라 움직인 피곤이 더 밀려오기도 한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진짜 맛있다. 라는 인사가 음식을 한 사람을 힘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 딸이, 남편이 요리할 때 먹을 만 하다고 느낄때도 맛있다고 오버해서 칭찬을 한다.
매생이굴죽은 가족이 아닌 지인과 먹는 내 소울푸드다. 가끔 입맛이 맞는 지인을 만나 매생이굴죽을 먹으러 가게 되면 너무 신난다. 가족만큼 내 인간관계도 소중하다. 남편에게 말 못 하는 시시콜콜한 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추운 겨울에 딱 어울리는 매생이굴죽, 애들 방학이 끝나고 마감도 끝나면 동네 언니, 친구들과 맛집 검색해서 매생이 굴죽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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