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위해 살다

나의 꽃을 피우리 - 참나무

by 연은미 작가
마린, 송꽃과 이별의식을 치르다


그대를 위해 살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을까

참나무 향이 몸 구석구석 스며든다

마치 진녹색으로 길게 뻗은 한 그루 나무가 되어버릴 것 같아

네가 떠나고, 너를 가슴에 묻고 그리워한 수많은 시간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서 울지 않았다

울면... 내가 울면 네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니까


내 마음은 황폐해졌어.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지.

메마르고 갈라진 곳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을 거야.

그게 편해. 그렇게 살다가 너에게 가고 싶어

그런데 넌 메마른 내 땅에 씨를 뿌렸어.

땅을 일구면서 지치지 않고 계속

씨가 썩어서 죽으면 또 새로운 씨앗을 심어

남의 마음에 제멋대로 들어와 설치는 너에게 화를 내려다 그만뒀어

누가 너를 말리겠어


결국 너는 성공했어.

씨앗이 싹을 틔었어

내게 새로운 인연을 보내주었지

네가 원하는 것을 알아

내가 행복해지는 것

바람으로, 비로, 공기로 와서 내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였지


이제 그녀를 위해 살아도 돼



미안해, 고마워.

손가락 걸고 영원히 둘이서 함께 하자고 했던 약속

남은 생애 동안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위해 살게

행복하게 살다가 네 곁으로 갈게

결국 못 끼어줬던 반지를 네 작은 손가락에 끼어줄게

그때 만나 둘이서 함께 하자



-마린이 죽은 연인 설송꽃을 보내며 -





제 만화 대표작 <나는 사슴이다>는 저에게 많은 감성과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주인공 마리아 오빠 마린은 여자친구 송꽃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빈껍데기처럼 희미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송꽃은 안타깝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홀로 남아 불행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린이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의 꽃을 피우리 참나무의 꽃말은 '그대를 위해 살다'입니다. 꽃말을 읽자마자 린과 송꽃, 그리고 린과 유키가 생각났어요. 송꽃과 제대로 된 이별을 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린은 이별을 위해 참나무 숲을 찾아 이별의식을 치릅니다. 이제야 행복해지는 린을 송꽃은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아주 가끔 린이 그리워 바람으로 찾아옵니다. 바람으로 와서 얼굴을 만지고 입을 맞춥니다. 그러면 린은 이유를 모른 채 마음이 시큰해지겠지요.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이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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