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만화 화실에서 선, 후배로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카페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대화가 되는 사람이다. 만났을 때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어쩌다 보니 데뷔도 같은 출판사에서 하고 출판사 워크숍도 함께 가고 화실을 구해 함께 출근해 그림 그리고 같이 손잡고 집으로 퇴근했다. 화실 회식도 같이 하고 주말 나들이도 당연히 함께 했다. 이십 대 내 인간관계 속에 항상 남편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 그냥 하는 대로 해주는 데로 따라갔다. 좋았지만 뭔가 가슴속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강제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졌다. 남편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독립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아쉬움은 함께는 있었으나 각각이 없었기 때문이란 것을.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행복한 게 아니었다. 마음속 들어앉은 수많은 방을 다 오픈할 수 없다. 나로서 존재하려면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나만의 관계가 필요하다.
결혼 초기까지만 해도 종종 꾸던 꿈이 있었다.
허름한 방에 내가 있다. 방을 보며 아, 난 어디서 자야 되지? 이 좁은 방에 가족들과 다 함께 자야 하나? 우울해하는데 방 맞은편에 미닫이를 열면 방이 하나 더 있다. 방 안에 또 벽장이 있어서 벽장을 열면 또 방이 있다. 꿈에서 생각한다. 와, 방이 많다. 이제 내 방이 생기겠네. 좋아하다 꿈을 깨면 현실은 지저분하고 뒤죽박죽 된 집이다. 왜 그런 꿈을 꿀까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 나는 평안한 내 방이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정신적 독립을 하기 시작하는 사춘기부터는 나만의 공간을 원하게 된다. 부모를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 내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방이 갖고 싶었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내 공간이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할 때도 지인 언니와 함께였고 바로 남편과 결혼을 했으니 결혼해서도 나만의 방은 없었다. 물리적 방을 얘기하지만 사실 정신적인 방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신혼시절 우리 부부는 잘 지냈지만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나만의 시간과 리듬이었다. 그림 그리는 리듬, 운동하는 리듬, 나만의 사람들. 그건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로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올 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할 때도 기꺼이 보내준다. 남편도 내 모임을 존중한다.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을 키우던 집중 육아시절엔 집에 내 책상 하나가 없었다. 지금은 그림 책상, 컴퓨터 책상도 세팅하고 벽에는 내 일러스트 그림을 잔뜩 붙여놨다. '나 그림 그려요. 거실은 내 작업공간이에요.' 영역 표시하듯이. 일부러 나를 드러낸다. 내 취향, 특색을 계속 남편에게 알려준다. 내가 나로서 건강하게 뿌리내려야 부부관계도 좋아진다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