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축복을 받고 있다
오늘도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었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호기심 가득한 눈이다. 할머니는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뜬다. 눈썹이 이마 쪽으로 당겨지고 연하게 잡혔던 이마 주름이 선명해진다. 콧방울에서 입술 양끝까지 길게 갈라지는 팔자주름은 볼을 더 둥그렇게 만든다. 미소에서 출발한 잔주름과 양쪽 눈가 짧은 주름, 입가 굵은 주름은 한결같이 선하다. 아래로 처진 눈썹 끝과 위로 올라간 입꼬리도 싱글벙글하다. 윤기 없는 푸석한 흰머리는 적갈색 스웨터 모자 밖으로 자유롭게 뻗쳐 있다. 독특한 문양의 귀걸이가 머리카락 사이에 대롱거린다. 세월에 주름 잡히고 눈두덩이가 처져 눈꺼풀을 덮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눈빛이다. 사랑스러운 눈빛에 할머니의 어린 소녀가 보인다. 육신은 나이를 먹고 비단결 머리는 푸석해져도 눈빛은 맑고 순수하다. 물결처럼 흐르는 주름을 눈으로 따라 그리며 아래로 내려온다. 자두빛 스웨터를 입은 체구가 조그맣다. 할머니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본다. 나를 가리키는 정확한 손짓에 자리에 박힌 듯 꼼짝하지 못한다. 내 속까지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시끄러운 거리의 소리가 일시에 사라진다. 주변은 그대로 정지하고 할머니와 나의 시계만 흐른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뒷목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날아오른다. 내게 주문을 걸은 게 틀림없다. 이제야 알았다. 이 할머니는 요정이다. 아름다운 요정이 남루한 할머니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요정이 얼굴 한가득 미소 짓는다.
얘야, 네게 수호신이 가득하구나. 매일 웃으며 밝은 빛을 나누면서 살거라.
요정은 포근한 미소를 짓고는 손짓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골목으로 사라진다. 주위 소음이 다시 들리고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간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나는 몇 번 뒤돌아보다 발걸음을 옮긴다. 요정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대로 축복이 된다. 집으로 가는 동안 축복이 나를 따라온다. 하루종일 지치고 무거웠던 발걸음이 왠지 가볍게 느껴진다. 오늘은 잠을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가는 길에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고 내일은 힘을 내서 살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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