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이 날로 짙어져 가는 한여름이에요. 바람은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고 나뭇잎은 반짝반짝 빛가루를 쏟아내요. 빛가루는 바람을 타고 우아하게 춤을 추어요. 시원한 바람이 소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줘요. 나무에 가려져 있지만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숲 속을 환하게 밝혀줘요. 소녀가 밤마실을 나왔어요. 숲 속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토슬반 친구들이 소녀를 발견했어요. 콧노래를 흥얼대며 소녀가 걸어가요. 토끼 한 마리가 몰래 교실을 빠져나와 소녀를 뒤따르기 시작했어요. 소녀는 갖고 있던 풍선을 선물로 주었어요. 소녀와 토끼가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토끼 친구들이 모여들었어요. 하나 둘, 하나 둘, 소녀와 토끼들이 행진을 하다 아지트를 찾았어요. 둥근 아치형 문으로 들어가요. 똑똑, 잠시 실례합니다. 소녀는 무척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성에 사는 주인에게 인사를 잊지 않아요.
알밤양을 부른다.
"알밤아, 엄마 전시회에 낼 그림인데... 어때?
"몽글몽글, 이쁘네. 엄마."
"나중에 손주 방에 걸면 어울릴 것 같지 않아?."
"푸웁! 손주우?"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가버린다.
밤톨군을 부른다.
"밤톨군아, 나중에 니가 낳은 아이 방에 걸어줄까?"
"결혼 안 할 수도 있는데? "
생각지 않은 답변에 말문이 막힌다.
"그렇지. 안 하고 싶음 안 하면 되지. 하고 싶은데 못 하진 말아라."
"만약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난 딸이 좋아."
"오올! "
"딸이 이쁘잖아."
그래, 녀석아, 널 봐도 크고 나면 아들은 좀 재미없지? 응?
"엄마가 잘 보관했다가 니 딸 방에 걸어줄게."
"그... 래."
퇴근하고 온 남편을 부른다.
"오빠, 이 그림 어때?"
"어, 귀엽네."
"나중에 울 손주 방에 걸면 괜찮겠지?"
"헐, 멀리도 간다. 지금 애들 방에 걸어주면 되지."
"애들은... 이제 너무 많이 컸어. 좀 더 어려야 돼."
어린아이를 보면 자꾸만 여기저기 눌러보고 싶다.
아이의 보드라운 몸을 꾸욱 누르면
까르르르 웃음이 터진다.
내 보기엔 재밌는 게 하나도 없는데 즐거워 죽는다.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웃는다.
온몸이 웃음주머니로 만들어진 것 같다.
어린아이가 웃는 소리는 주변을 명랑함으로 채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섯 살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대요. 그러니 더 이상 아이에게 바라지 마세요."
어디서 들었더라. 아이가 크니 그 말이 무릎 치게 와닿는다.
'어릴 때 더 많이 놀리고 예뻐해 줘. 아이들 크면 아쉬워’
아이들에게 온전히 나를 내어줄 그때는 육아 선배들의 조언은 아이들이 컸으니 할 수 있는 팔자 좋은 소리로 들렸다. 아이들이 빨리 커서 내 시간이 생기길 바랐다. 이제 아이들은 많이 컸고 내 시간도 제법 생겼다. 아이들은 예전만큼 내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예전만큼 방방거리지 않는다. 찰떡처럼 붙을 때는 얼른 떨어졌으면 하고 떨어지니 아쉽고 서운하다고 푸념한다. 참으로 한심한 엄마다. 역사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커가니 내게 조언했던 육아선배들과 같은 마음이 된다. 토실토실한 몸으로 통통거리며 뛰어다닐 때가 예쁜 거구나. 그 명랑함에 어른이 힐링하는 거구나.
그림을 그리며 아이의 빛나는 동심을 떠올린다.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를 아이들만 보는 것처럼 현실적인 어른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소녀의 밤마실을 그려보았다. 이 그림을 보는 분들이 기분이 왕왕 좋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