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난 양말을 신는 게 뭐가 어때!

경희와 희재 이야기

by 연은미 작가



구멍이 난 양말을 신는 건 아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짝짝이 양말을 신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바지가 짧아져도 상관없었다. 위, 아래 색깔을 맞추면서 입지도 않았다. 저 아이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경희는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기 관리인데, 기본에 무심한 아들이 답답했다. 남의 집 자식들은 엄마가 하는 말을 자분자분 잘도 듣더구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소한 것도 쉽게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했다. 어제 구멍난 양말을 신고 학교를 갔다온 희재와 실랑이를 하고 찝찝하게 잠든 경희는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왜 저 아이는 내가 말하면 뻗대면서 반대로만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경희는 자식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한 시간째 불도 켜지 않고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애들 크는 게 다 그렇지', 가볍게 넘기는 남편은 안 방에서 코를 드르렁거리며 속 편하게 자고 있다. 한숨이 나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희재는 항상 가시가 돋쳐 있었다. 사춘기인 걸 알지만 적응이 안 된다. 어릴 때는 잘 웃고 무엇이든 하라는 데로 잘 따르는 귀여운 아이였는데 왜 저렇게 변한 걸까. 부드럽게 대화해야지 마음먹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날카롭게 베어버리는 희재의 말투에 감정이 터져서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기를 몇 번, 희재는 경희의 잔소리에 점점 반응을 하지 않았다. 대드는 것도 화가 나지만 없는 사람 취급하니 머리꼭지가 돌 것 같았다. 누가 자식은 무조건 사랑스럽다고 했지? 요즘 같으면 혼자 멀리 가서 남편이고 아들이고 신경 끄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살고 싶었다. 그제야 내 빈자리가 불편하다고 느껴 눈곱만큼이라도 고맙다고 생각하려나. 머릿속에서 경희는 희재와 격렬하게 싸웠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사생결단을 내기도 하고, 당장 짐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가기도 했다. 경희의 머릿속은 시끄럽고 복잡했다. 그동안 누적되 온 감정은 작은 일 하나에도 맹렬히 타올라 둘 중 한 명이 다 타서 재가 되어야 끝날 것 같았다.


희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가방을 메고 있다. 어느새 학교에 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경희가 아들을 바라본다. 경희의 눈은 0.1초 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을 해 걸리적거리는 곳을 찾아낸다. 교복 셔츠깃이 흐트러지고 어깨 재봉 라인도 느슨하게 떠 있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마지막으로 양말이 눈에 걸린다. 오늘은 구멍 난 양말은 아니지만 초 겨울인데 발목이 보이는 여름 양말을 신었다. 한숨이 나온다.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그만두고 몸을 일으킨다. 경희는 냉장고를 열어 어제 저녁에 준비해 둔 재료를 꺼내 금세 따뜻한 전복죽을 끓여 정갈하게 식탁을 차린다.


구멍이 난 양말을 신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양말이 짝짝이면 어때, 그냥 걸치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친구도 없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혼자인데. 희재는 내내 외롭다. 의욕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너를 위해서라는 허울로 포장하고 꼭두각시 인형처럼 자신을 휘두르는 엄마가 싫다. 엄마는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된다며 나를 최고의 학원, 개인 과외에 집어넣어 어릴 때부터 뺑뺑이를 돌렸다. 만들기에 열중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학원에 갔다가 쉬지 않고 다음 학원 차를 타고 이동해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희재는 엄마의 욕심에 질렸다. 자신의 속도를 무시하고 몰아붙이는 엄마에게 반항하고 싶었다. 가슴에 화가 쌓이고 쌓인 곳이 곪아 갔다. 생기를 잃은 희재의 세상은 안개 낀 회색 도시로 변했다. 암울한 기운이 짙누르는 그곳에서 희재는 목적도 이유도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마땅히 할 말이 없다. 어차피 배부르고 등따셔서 하는 속 편한 소리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방을 의자에 놓고 앉아 엄마가 끓여준 전복죽을 한 숟갈 입에 가져간다. 담백하고 짭조름한 전복죽이 맛있어서 기분이 나쁘다. 엄마가 싫지만 엄마가 해주는 것을 순순히 받아먹으며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독립했으면 좋겠다.


경희와 희재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두고 점점 침묵하고 외면하며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경희와 희재는 평행선을 걷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은 한 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구멍 난 양말이 문제인가? 따뜻한 전복죽이 둘 사이를 가깝게 해 주는가? 양말과 전복죽은 수면 위의 작은 현상일 뿐이다. 수면 아래 거대한 빙산을 건드리는 게 두려워 둘은 누르면 터지는 폭탄 같은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간다. 폭탄이 터지면 양말도, 전복죽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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