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2006년 6월 나는 내 대표작 만화 <나는 사슴이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남겨두고 있었다. 총 17권 기획에 16권째 마감을 막 끝내고 잠시 널브러져 쉴 때였다. 마지막 한 권이라니, 6년간 힘들게 달려온 장편이 마무리되면 당분간 작업 계획이 없었다. 사실 일하느라 7년 동안 미뤄온 아이도 가져야 했다. 앞으로 내게 일어날 변화가 조금 긴장되었다.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의식을 하고 싶었던 나는 일돌남편에게 서울 상경해 자취했던 우이동을 가보자고 했다. 우이동은 우리 부부에게 추억이 가득한 동네였다. 일돌 남편은 면허증을 따서 슬슬 능숙해져가고 있어 우리는 편하게 부천에서 서울 우이동으로 한낮의 여행을 떠났다. 강북구에 접어들어 화개사, 수유리, 4.19 국립묘지 등 이정표를 보니 반가웠다. 하지만 맘먹고 나선 날은 바람 한 점 없이 습하고 뜨거운 땡볕에 아스팔트 지면이 이글거리는 날씨였다. 차에서 내리자 습한 뜨거움에 숨이 턱 막혔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아무 커피숍에 들어가 아이스커피와 매실주스를 마시며 더위부터 식혔다.
미아리 만화 화실에 가다
97년에 상경해 다닌 내 첫 만화 화실은 미아리에 있어서 근처 우이동에 자취방을 구했다. 우이동 집에서 화실은 버스로 20분 거리였다. 우리는 간판이 제각각으로 어수선하게 달린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만화 화실은 오래된 건물의 2층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역시나 문이 잠겨 있었다. 화장실은 환상적인 냄새와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가 여전했지만 건물 내부는 페인트칠을 해서 깨끗했다. 인원이 몇 명만 되었을 때까진 밥을 화실에서 해 먹었기 때문에 막내였던 나는 잡일 담당이었다. 회사랑 달라서 식사는 각자 해결해야 된다고 들은 터라 밥을 공짜로 먹여준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잡일을 했다. 냄새나는 공용 화장실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쌀을 씻고 설거지를 했다. 일돌은 화실에서 숙식을 했기에 화장실에서 머리까지 감았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 닥치면 다 하게 된다고나 할까.
일돌은 화실에서 숙식을 하다 남자 후배들이 몇 명 들어오면서 화실에서 근처에 여관을 구해주었다. 여인숙 수준이었는데 간판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였다. 일돌은 몇 년이 지났는데 여전한 여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화실에서 나와 도보를 조금 걸으면 육교가 있었다. 일돌은 퇴근하는 나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교를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정류장에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버스가 도착하면 서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그 짧은 시간의 데이트는 아쉬워서 더 소중했는데 어느새 육교가 없어지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우리는 그 앞 건물 2층에 고기집을 쳐다보았다. 원래는 커피숍이었다. 일돌이 내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결판(?)을 냈던 장소다. 화실 근처 새우구이집, 우리가 함께 했던 곳곳의 데이트 장소는 없어진 데가 많았다. 근래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육교와 커피숍이 있었다는 걸 모르겠지. 장소는 타임머신 역할을 한다. 다시 그 장소에 오니 묶어놨던 추억 주머니 끈이 단번에 풀려버린다. 이야기가 봇물같이 터진다.
미아동 화실 근처를 거닐다 내가 자취했던 우이동에 가보기로 했다. 거기도 혹시 없어졌을까? 1층 단독 주택이라 걱정이 된다. 그곳만은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보조석 창문 밖에 스쳐가는 풍경을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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