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지 않지만 깊고 오래 사귀는 편이다. M에게는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동갑 자녀들 때문에 인연이 됐지만 만나면 아이 얘기는 지나가는 안부정도로 끝내고 서로의 얘기 나누기 바쁜 P와 K가 있다. M은 6년 전 얼떨결에 사서 부회장인 되면서 얼떨결에 사서 회장이 된 P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P는 종종 집으로 차를 마시러 오라고 했는데 P와 친한 엄마들 몇 명을 함께 부를 때가 있었다. 일면식이 없던 M과 K는 P의 집에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하고 곁다리로 몇 번 함께 만나다 친해졌다. 그들 셋은 두문불출 각자 잘 살다가 잊을만하면 만나 점심을 먹으며 회포를 푸는 사이다. 아이들이 개학을 하니 K에게서 바로 점심 먹자며 톡이 온다.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오늘 같은 날 점심 이벤트는 챙겨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잽싸게 만나고 와서 일해야겠다고 M은 생각한다.
"나 요즘 마라톤 매일 5킬로씩 뛰잖니. 장난 아니지?"
요즘 달리기와 걷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M은 업그레이드된 아침 운동을 자랑하려다 P가 던진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뭐? 매일 5킬로? 실화임?"
P가 말했다.
"내가 작년 12월 중순에 무작정 나와서 걷다가 왜 그랬는지 갑자기 뛰어볼 생각을 했잖아. 근데 100미터 달리고 충격받았어. 그거 조금 뛰었는데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거야. 그때 결심했지. 한 달 안에 트랙 한 바퀴를 뛰겠다고!"
M은 몇 달 전 P의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운동을 하다 P가 사는 아파트 동이 가까워지면 P를 생각하기도 했다.
'이 언니는 계속 달리고 있으려나? 쉬운 일이 아닌데 하다가 말았을 거야. 걷기도 아니고 달리기가 얼마나 힘든데......'
결과는 천만의 말씀에 대반전이었다.
M이 66일 글쓰기 챌린지를 하고 있는 것처럼 P는 매일 달리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달리잖아? 그럼 평소 끊임없이 올라오는 머릿속 고민이 한순간에 사라져. 숨이 차서 생각할 틈이 없어. 땀을 흠뻑 흘리며 뛰다 보면 커다랗게 부풀어진 고민이 너무 사소하게 느껴지는 거야."
"맞아. 언니, 나도 수영할 때 느꼈어. 아무런 생각 할 수 없이 그 순간에 몰입되는 거."
"수영은 출발하면 돌아올 때까지는 앞으로 나아가게라도 되지. 안 그럼 가라앉으니까. 달리기는 매 순간 유혹이야."
M도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M은 아직 1킬로도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고 P는 5킬로를 뛰었으니 서로가 느끼는 몸의 감각과 느끼는 바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힘들면 그 자리에 멈추면 된다는 유혹과 한 바퀴라도 더 뛰어보려는 마음이 충돌하는데 유혹을 이겨내고 조금씩 더 뛰다 보니 한 바퀴가 두 바퀴 되고 어느새 5킬로를 달리게 되더라."
그들은 점심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왔다. 식당 옆에 작은 카페가 보였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카페에 들어갔다. P와 K가 평소에 안 먹는 달디단 캐러멜 마키아또와 바닐라 라테를 주문하자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 M도 덩달아 바닐라 라테를 주문한다. 오랜만에 자유를 누리며 실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감정텐션이 평소보다 높아졌다는 증거다. 카페 앞은 P의 운동코스 공원이었다. 그들은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공원을 걷기로 했다. 트랙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날은 차갑지만 햇살은 무척 따사로웠다. 고양이가 햇볕을 찾아 해바라기 하듯 햇살을 듬뿍 흡수하며 천천히 걸었다. 오후의 햇살과 달콤한 커피는 그들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하기 충분했다.
"여기 한 바퀴가 몇 미터야?"
"320미터."
"엑? 그거밖에 안 된다고? 5킬로를 뛰려면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 거야?"
"16바퀴 정도 되지."
호오, 16바퀴가 5킬로라고?
M은 가슴이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좋아, 내 아침 운동 다음 목표는 이 트랙이다. 내일은 운동 코스를 바꿔 보겠어. M의 불타는 눈빛을 느꼈는지 P가 진정을 시킨다.
"워~워~ 욕심내지 말고 한 바퀴부터 시작해. 내 페이스를 찾는 게 중요해. 무리하면 탈 나. 멈추지 않고 조금씩 늘리다 보면 한 바퀴가 열 바퀴가 되는 거야."
M보다 마라톤 세계에 조금 더 빨리 입문한 P는 M에게 러닝앱과 러닝화를 소개해 준다.
중요한 건 페이스야. 너무 빨리 뛰려고 하지 않고 너한테 맞는 속도를 유지해.
맞다. 뭐든지 한 걸음부터다. M은 집으로 오면서 생각한다. P와 K와의 브런치가 무척 행복했다고. 아무리 바빠도 가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사람을 만나면 겸손해진다. 사람을 통해서 경험하고 깨닫는다. 누구누구 맘으로 불리는 관계, 만나면 아이 얘기가 주를 이루는 관계면 벌써 시들해져 끊어졌을 거다. 서로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관계라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 상관없이 몇 년째 인연이 이어오고 있다. 오늘의 글감을 선사해 준 P 언니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