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조건
#1 이니셜 K씨의 정체
진짜로 서울상경
경상도 울산 처자로 22년을 살았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막연하게 서울 상경을 꿈꾸었지만 진짜로 집을 떠나 서울까지 오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때는 97년 8월, 미리 와서 집을 구하고 울산 집에 있는 내 최소한의 짐을 챙겨 서울로 출발. 나는 룸메이트가 될 J언니와 고속버스를 타고 아빠는 내 짐을 실은 트럭을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버스는 서울로 부릉부릉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상경이 실감이 안 났다.
늦은 오후쯤 우리와 아빠가 비슷하게 도착해 자취방에 짐을 풀었다. 집은 노부부가 주인인 1층 주택이었다.
아빠는 짐을 다 넣어주고 함께 자장면을 시켜먹고는 서둘러 일어나셨다. 일 때문에 하루도 못 주무시고 출발해야했다. 눈물이 찔끔났다. 울산에서도 2년 자취를 했지만 이제 보고 싶어도 자주 못 보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렇게 부모에게서 점점 독립하는가 싶어서 마음이 시큰거렸다.
방 두 칸에 2천만원 전세로 들어갔지만, 방 하나는 바로 누울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각자 방을 가질 순 없었다. 동호회 멤머인 J언니와 나는 큰방에서 언니가 갖고 온 싱글침대에서 함께 잤다. 처음엔 좁게 느꼈지만 금새 적응이 되었다.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울산에서 자취한 곳보다는 훌륭한 보금자리였다.
수유리 정류장 끝을 지나서 살았는데 바로 근처에 북한산국립공원이 있었다. 운동, 등산에 전혀 관심이 없던 건강이 당연한 줄 알았던 우리는 그 좋은 곳에 살면서 한 번도 산을 오른 적이 없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가장 아깝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천혜의 등산로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서울 상경해서 설레는 꿈을 안고 들어간 첫 화실은 무협만화 화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가면 서울 남자를 만날 줄 알았더니 경상도 부산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