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요청 디엠에 와 있던 메시지를 누른 순간 깜짝 놀랐다.
KCC? Korea Chemical campany ltd.
내가 30년 전에 유일하게 직장 생활했던 그 회사?
27년 전에 3년 적금 천만 원을 타고 만화를 그리기 위해 퇴사하고 나온 그 회사 말이야?
30년이 다 되었는데 000 씨와 둘이 만났다가 내 이야기가 나왔단다. 요즘 뭐 하고 살까? 뭐 그런 얘기들을 했으려나? 요즘 인스타를 많이 하니까 혹시나 하며 이름 검색을 해 보았는데 진짜 나인 것 같은 피드가 떠서 혹시나 하면서 디엠을 보내셨단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바로 통화를 했다.
어마... 목소리가 그대로인 것 같아요.
은미 씨는 완전히 달라졌는데요? 서울 산다고 서울말 쓰네?
첫마디에 빵 터졌다. 어느새 나는 서울 여자가 되어 있었다. 참고로 서울에서 산지 27년이 되었는데도 여기서는 나보고 사투리 쓴다고 한다.
저, 네이버에 인물 등록이 되어 있어서 네이버만 쳐도 나와요. 했더니
이야, 유명해졌네요. 잘 될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네? 아이고, 그때 저 너무 어렸죠. 철도 없었고...
고등학교 반장 출신에 이런 분위기 너무 좋다고 상큼하게 얘기했던 거 아직도 생생, 그리고 제 꿈은 만화가예요.라고 하던 그 말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dream come true
멋집니다.
"저 쫌 감동이에요. 아직도 기억해 주고 찾아주시고~ㅠㅠ 저 첫 1년 중공업 안 파견부서에 있을 때 너무 좋았어요. 그때 00 대리님 하얀 감리복도 기억나고 ㅎㅎ"
"은미 씨 부끄러워하며 당차게 얘기하는 모습 우리 동기들 다 기억합니다. 19살이."
순간 울컥했다.
내가 들어간 부서는 현대중공업 안 파견 부서로 선박감리부였다. 현장에 있는 사무실이라 건물도 허름했다. 게다가 남자 직원이 스무 명 정도에 여직원은 나 혼자였다. 기름기 묻은 하얀 감리복을 입고 하얀 헬멧을 쓴 얼굴 시커먼 아저씨들이 우글우글하게 왔다 갔다 해서 처음에 여기 뭐지? 대기업이 왜 이래? 잘 못 들어온 것 같다. 웬 노가다판? 하면서 겁을 먹었는데 멀쩡하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회식하면 2차는 당연 수순으로 노래방이었는데 다들 놀기도 잘 놀았다. 얌전히 학교 다니다 회식도 하고 노래방도 가니 너무 재밌는 거다. 특히 스물아홉이었던 막 대리 진급을 앞둔 분들과 친해졌는데 다들 잘 챙겨주었다. 외국에 출장 다녀올 때 초콜릿, 향수 등 꼭 내 선물을 사다주시고 책을 선물해 주시는 과장님도 계셨다.
전화를 끊고 톡방이 만들어지고 반가운 다른 분이 들어왔다.
깨알 홍보에 응원도 해주신다. 또 한 분이 들어왔다. 같은 부서에서 매일 얼굴을 보던 대리님이다. 30년이 흘러도 그때 그 말투로 말을 놓는데 오히려 긴 세월의 어색함을 없애줘서 좋았다.
추억의 문을 지나 현실 세계에서 접속한 그들은 50대 후반을 바라보고 나는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들은 내 모습을 풋풋한 열아홉 살로 기억하고 있으니 내 카톡 프사에 보이는 사진들이 은근히 신경 쓰인다. 이 아저씨들도 나이 든 자신들 모습이 신경 쓰이려나?
그렇다 해도 다시 안부를 물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수 십년 세월에 날 기억해주서 행복하다.
나는 연락처가 없지만 과거의 인연 중 누군가 나를 떠올렸을 때 찾을 수 있는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게 오늘 같은 일이 생기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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