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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Sep 20. 2023

엣지 있게 버리는 법


책장에 들어찬 육아, 심리서, 자기 계발서, 약간의 소설책들…

어느 날 보니 책 위로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다. 비우고, 있는 것은 더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에 책 정리를 시작했다. 다시 안 볼 것 같은 책, 애정이 떨어진 책은 과감히 책장에서 뺐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거운 책들… 집에는 마땅한 트레이도 없고 어떻게 옮기지? 누구 도움 없이 혼자 처리하고 싶은데… 그러다 기막힌 방법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찍히고 낡은 대형 여행용 트렁크!

베란다 수납장 문안에 잠자고 있는 오래된 대형 트렁크를 꺼냈다. 책을 쑤셔 넣고 여행 가듯 끌고 아파트 1층 주차장 분리수거장까지 간다. 세 번이나 트렁크에 책을 넣고 버리고 반복했다. 책을 버리고 뒤돌아서니 아쉽고도 속이 시원했다. 


세 번째로 트렁크를 비우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위층에 사는 또래 엄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인사 후 딱히 할 말이 없는 어정쩡한 관계라 침묵이 들어찬다. 좁은 공간의 침묵은 어색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윗집 엄마가 말을 이었다.

"... 어디 여행 다녀오는 길이세요?"

내 옆에 있는 커다란 여행 트렁크를 보며 긴가민가 하는 눈치다. 행색은 일상복이니 헷갈릴 수밖에.

"아! 하하. 이거 분리수거 중이에요. 무거운 거 넣고 버리기 딱 좋더라고요."

"어머나. 에지 있다!"

위층 엄마의 가벼운 농에 서로 기분 좋게 웃으며 헤어진다.

들어와 가벼워진 방을 둘러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비우고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싶다. 있는 것은 더 아껴주고 싶다. 공간도 내 속도 털 것은 털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가볍게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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