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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Oct 26. 2023

이강의 호시절

나를 위로하는 따뜻한 추억으로의 여행





















집에서 일하는 게 지루해서 아이패드와 책을 챙겨 집 근처 카페에 왔다. 1층 통창문 앞 기다랗고 좁은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이 오고 간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며 지나간다. 차들이 빠르게 스쳐 사라진다.  지나가는 사람을 멍하니 구경한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해 홀짝홀짝 마시면서 책을 읽다가 그림을 그리다 또 무심히 사람들을 구경한다.


직원이 주문한 손님을 부르는 소리, 기계에서 커피를 내리는 소리, 컵 부딪치는 소리, 손님들이 말하는 소리, 커피와 빵 냄새가 일상의 지루함을 몰아낸다.  창문 밖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들에게도 영원할 것 같은 유년시절이 있었을 테지. 살아온 환경은 모두 다르겠지만 힘든 시절이라도 버티게 해 준 사소한 것들, 소중한 것들이 있을 테지.


내 고향 본적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와야 2리 909번지. 

첫 돌이 되기 전 김포로 이사했다가 4살쯤 울산으로 이사를 갔기에 강원도가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기억에 없다. 내가 기억나는 건 울산 약사동부터다. 어렴풋이 네다섯 살부터 드문드문  사진같이 찍힌 몇 장면만 기억난다. 그런데도 어릴 때 나는 내가 태어났다는 본적 주소를 열심히 외우고 다녔다. 


나의 살던 고향은 성정동 150-12

<이강의 호시절> 이강 작가도 성정동 주소를 가슴이 새기고 그곳을 그리워한다. 아이에게 고향 주소란 본능적으로 그리움의 장소가 아닐까.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의 지하 창고까지 깊숙이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를 그들의 지하창고 앞까지 데려다줘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글로성장연구소 탄탄글쓰기 수업 중 작가님이 해 준  말이  인상적으로 마음에 남아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지침이 되었는데  <이강의 호시절>은  독자의 지하창고 앞까지 데려다 유년의 이야기를 끌고 나온다.

마냥 달콤하지 않았던 나의 유년시절. 처음엔 이강 작가의 호시절이 질투 나게 부러웠는데 작가의 추억 속 이야기와 사물을 따라가다 보니 쌉싸름한 내 유년 틈에도 소중한 일상이 한가득이었다. 


'작가님은 스카이콩콩을 탔군요. 없는 집 아이들은 마당에 세워져 있는 삽을 탔답니다. 담벼락에 세워져 있는 삽에 올라가 몇 번 뛰다가 마당 망가지고 흙 파인다고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났지요.' 책을 읽다 흐흐거리며  장면을 회상하다보니 당시 마당에서 키우던 개 '도꾸'를 떠올리게 했고  답벼락에 피었던 맨드라미도 살아났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큰 외삼촌네 집 앞 대나무밭 우리들 아지트도 줄줄이 떠올랐다. 


가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내가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상상을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고 싶지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게 개입할 수가 없다. 


지금의 이 순간을 현재의 눈으로 보지 마라.
먼 영원의 눈으로 현재를 보라.
-스피노자


내가 무척 좋아하는 명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다가도 이 명언을 읽으면 가슴에 시큰한 바람이 분다. 눈앞에 있는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보고 있는데도 애 닮고 그리워진다.

 

<이강의 호시절>은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작가의 이야기가 타임머신이 되어 내 어린 시절로 여행을 하게 된다. 우리의 호시절은 언제나 지금이다. 깊어지는 가을과 어울리는 책 <이강의 호시절> 읽으며 오늘의 소중함을 느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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