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형 인간의 탄생
거실 책상 위에 놓아둔 폰 알람이 울렸다. 6시, 나의 기상시간이다. 벌떡 일어났다. 큰 알람 소리에 가족이 깰까 싶어 얼른 거실에 나가 알람을 끈다. 이를 닦고 물을 마신다. 그리고 독서를 하려는데 살짝 열려있는 아들 방을 보니 아들이 없었다. 밖이 깜깜한 새벽인데? 어젯밤 방에서 분명히 잠든 아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23년 1월 5일 중학교 졸업을 한 아들은 올해 고 1이 된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꽤나 내 속을 섞인 아들. 크면서 언제부턴가 예민하고 까칠해진 아이는 친구들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수업에도 관심이 없어 다른 짓을 하기 일쑤였다. 학원을 보내도 집중을 못해 결국 선생님이 지도하기 힘들다며 전화가 왔다. 한 마디로 학교생활에 의욕이 없는 아이였다. 졸업식을 맞이하니 3년 전 중학교 입학할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내 바람은 '공부를 못 해도 좋으니 친구들과 잘만 지내다오'였다.
"엄마, 내일부터 새벽에 스터디카페 가서 공부하고 학교에 가려고"
얼마 전 평일 저녁 아들은 나에게 쓱 다가와 던지듯 말했다.
학교 가는 평일 아침에 스터디 카페를 간다고?
종종 새벽기상을 한다고 5시 30분에 일어난 적도 있지만 얼마 못 가 8시까지 퍼 자는 등 그동안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왔던지라 기꺼이 응원하는 마음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 아침공부도 잘 안 되면서 스터디카페에 가는 게 가능한가? 습관이 되려면 작은 거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데 아들의 결심은 무모해 보였다. 또 한 두 번 하다 실패하면 오히려 공부 성취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생각은 좋은데... 그냥 1시간만 일찍 일어나서 책이라도 꾸준히 읽고 학교에 가면 엄청 잘하는 건데.
좀 만만한 목표를 세우는 게 어때?"
"우선 한 번 해 보고."
전날 말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일어나 보니 정말 아들이 없었다. 진짜로 간 거야?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깜깜했다. 이 추운 겨울, 이른 새벽에? 불 하나 안 켜놓고 나갔기에 아들이 없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학교 가기 전 새벽에 스터디 카페에 가기 시작해 하루 이틀을 넘기더니 벌써 2주째가 되었다.
아들은 말랐고 감정이 예민했지만 그렇다고 대차거나 기가 세지 않았다. 남자는 고학년만 돼도 본능적으로 서열 싸움은 한다고 들었다. 중학교에 가면 그게 심해질 텐데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힘 있는 아이들에게 찍혀 꼬봉 노릇을 하거나 셔틀맨이 되면 어쩌지? 별별 걱정이 다 되었다. 그런데 겨울에 터진 코로나가 입학 즈음에 더욱 심해져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고 모든 아이들은 강제 거리 두기가 시행되었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학교 1학년에 코로나로 아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관계단절이 된 상황이 오히려 다행인가 싶었다. 부딪치고 갈등을 겪으며 관계 속에 성장한다는 것을 알지만 솔직히 안도의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학습저하가 심해졌다. 문을 닫고 있지만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게 감으로 왔다. 저렇게 운동도 안 하고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으니 어떡하나. 한숨이 나왔다.
아들 기상 시간은 5시 30분. 취침하기 전 식탁에 드라이기를 꺼내놓고 잠이 든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가방을 싸서 집 앞 24시간 스터디카페에 간다. 처음 몇 번 바로 학교에 가길래 그러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과일주스를 갈아놓을 테니 집에 들러 먹고 가라고 했다. 그 뒤로 아들은 8시가 다 되어 집에 와서 주스를 마시고 학교에 갔다. 7시 넘어 일어나는 남편도 새벽공부를 이어가는 아들을 보며 엄지를 지켜 세웠다.
"아들, 대단하다. 아빠가 배워야겠어. 존경스럽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미끄러지듯 집을 나서는 쾌감이 째진다고 했다. 어제는 글 쓸 게 있어서 오래간만에 5시 30분에 일어났더니 엄마, 왜 일찍 일어났냐고 투덜댄다.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지만 나도 내 계획이 있다고... 아들 때문에 더 일찍 일어나는데도 눈치를 보게 생겼다.
졸업식날 학교 복도에서 아래층에 사는 아들 같은 반 여자아이 엄마를 만나 인사를 했다. "00가 요즘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서요? 스스로 공부하니 얼마나 좋아요?" 딸을 통해 들었다며 칭찬을 한다. 생각지 못한 말에 "아... 그러게요. 저도 신기해요. 3학년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더라요." 그 엄마는 아이 둘 사교육비에 300만 원이 넘게 나가지만 성적은 그만큼 나오지 않아 심란하다는 말을 했다. 아들도 친구들이 학원, 과외 엄청 다닌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아들은 지금 피아노와 수학 한 개만 다니고 있는데 수학도 1월까지만 하고 혼자 해도 충분할 것 같다고 했다. 아들에게 궁디팡팡해준다. "우리 아들은 가성비 대비 아주 잘하고 있어요. 고마워. 최고~~" 나는 아이 공부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다른 교과 학원을 보낸 적이 없기도 하지만 원체 공부를 안 하던 아이였기에 내적 동기가 없으면 아무리 부모가 안달을 해도 소용이 없음을 나는 온몸으로 겪었다.
수포자? 아니 수안자(수학을 안 한 자)였던 아들은 6개월 동안 수학을 파고들어 바닥에서 놀던 수학점수를 높은 점수로 올렸다. 2학기때는 손을 들고 부회장을 지원해 임원으로 학급일을 열심히 했다. 졸업식 때 선생님이 임원활동했던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며 도서상품권을 내보였다. 예전 스승의 날에 선물로 드린 알밤토리 메모지에 메시지가 쓰여있었다. 선생님의 메시지에 1년간 아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제 졸업식을 하고도 어김없이 오늘 새벽에 방을 비운 아들. 아들의 변화는 대단하고 놀랍기만 하다. 근 2년 동안 나는 아들의 놀라운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들은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목표가 생긴 것 같지만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이 없다. 아들의 목표를 응원하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진심으로 감사하다. 매일 몸으로 쌓은 끈기와 성실한 습관은 당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재산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부적응자 아들이 중 3 졸업할 때 어떻게 이렇게 딴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변화가 조금씩 생기던 2년 동안 선순환으로 돌아선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내일은 아들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악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선순환의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 지점을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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