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고추핀

by 연은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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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는 우리를 종종 쫓아냈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방을 어질러서.

거짓말을 해서.

어떨 때는 연좌제로.


"막내가 구구단을 외울 수 있게 언니, 오빠가 도와. 오늘 저녁까지 다 못 외우면 셋 다 쫓아낼 거야."

나는 열심히 구구단을 외운다. 2단도 쉽고, 3단도 쉽고 4단도 외우겠고 5단은 누워서 떡먹기인데

그다음부터는 진도가 안 나간다. 6단을 겨우 외웠는데 7단부터는 무리다.

낮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공포의 저녁을 맞이한다.

엄마는 잊지 않고 나를 불러 세운다.

"외워 봐. "

긴장을 하니 머릿속이 더 하얘진다.

결과는 이미 예상된 바, 7단부터 버벅대며 우물쭈물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언니, 오빠도 긴장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약속을 철떡 같이 지키는 엄마가 매서운 눈으로 소리친다.

"다들 나가!"

그렇게 삼 남매는 내복 바람에 쫓겨난다.

날씨가 제법 추운 깜깜한 밤이다. 조용한 동네에 드문드문 사람이 지나간다.

내복 바람에 줄줄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아. 우린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우라고 내복바람에 쫓아냈겠지.

우선 몸을 가릴 곳이 필요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 말이야.

사실 우리는 어른이 모르는 비밀장소를 많이 알아. 골목 구석을 누비며 놀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그리로 가자."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골목을 따라 몸을 움츠리며 엉거주춤 걸어. 우리 모습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골목을 나오면 한 담장 안쪽에 짚더미가 쌓여있지. 그리고 벽과 짚더미 사이에 아주 좁지만 공간이 있어. 옆으로 게걸음을 하면 아이들은 들어갈 수 있어. 우리는 조심조심 짚더미와 벽 사이로 들어가 나란히 섰어. 벽이 바람을 막아서인지 이제 그다지 춥지 않아. 몸을 밀착해서 서로의 온기를 나눠가졌지. 엄마 욕을 하면서,

곱하기 못 외웠다고 쫓아내고 엄마 밉다.

나도 잘 외우고 싶은데 안 외워지는 걸 어떡해. 꽁알꽁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고추핀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거야. 저 고추핀은 분명 엄마 건데.

엄마는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 거지?

표독스러운 엄마는 뽀글뽀글 파마머리 양쪽으로 고추모양 갈퀴 핀을 꽂았어.

고추핀이 허둥지둥 멀어지네. 고추핀을 보며 생각해. 고추핀은 엄마를 닮았어.

표독스러운 고추핀, 무서운 고추핀.


그때는 몰랐지. 엄마의 얼굴표정이 어땠는지를.

깜깜한 밖을 보며 금세 후회하고 안절부절 걱정이 되어 삼 남매를 찾아 나섰다는 것을.

감쪽같이 사라진 삼 남매를 찾아 마음 졸이며 동네 곳곳을 헤맸다는 것을.

한 차례 야단을 맞고 잠든 삼 남매를 순서대로 얼굴과 이마를 쓸어내리며 미안해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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