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부터 장점은 열정, 성실함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통번역 관련 수업과 자격증을 알아보다가 “ITT 국제통역번역협회“를 알게 되었다. 취업에 필수인 국가자격증을 따야 할 시기에 민간자격증을 따려고 기웃거렸다. 통번역대학원에 가지 못한 게 한이 되었고 속상했다.
포항에는 관련 시험 고사장이나 학원이 없었기에 온라인 서점에서 기출문제집을 사서 공부했다. 강의를 듣지는 않았고,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교재를 풀며 시험 유형을 익혔다.
고사장은 부산 서면. 시험을 한번 치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움직여야 했다.
통역시험은 고사장에서 주어지는 헤드셋을 끼고 나오는 음성을 들으며 동시통역을 했다. 메모를 하면서 듣지만 말이 빠르고, 단어도 모르는 게 많아서 영어 음성을 놓치기 일쑤였다. 두 번까지만 듣고 통역을 해야 했지만 나는 5번은 들었던 거 같다. 말이 빨라서 당황했고, 메모를 하다가 놓쳐서 내용을 까먹어 더 당황했다. 그렇게 전문통역은 2급에 만족해야 했고 비즈니스통역은 겨우겨우 1급을 땄다. 그다음 번역시험은 한국어로 된 원문 혹은 영어로 된 원문을 번역하는 방식이었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사전 검색은 허용해 주셨던 거 같다. (단어를 모르면 번역이 안되니)
제한된 시간 내에 번역을 써야 하니 손은 아프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급수가 나오지는 못했지만 자격증이 손에 주어지니 뿌듯했다.
영어자막번역사는 서울 동국대학교가 고사장이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당일에 시험 치러 가려니 부담이었다. 그 당시 건국대학교 학생이라 서울에서 자취했던 남동생의 원룸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고 시험을 치러 갔다. 영어자막번역사(영한번역) 시험에는 애니메이션이 나왔고 난이도가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인지 1급이 나왔다. 한영번역은 다음에 쳐보겠다며 미루다가 결국 치지 못했다. (서울까지 치러 가는 게 부담이라)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신 전공자들에게 통번역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편이다. 그래서 전문 국제행사 통번역가로는 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기업이든 영어강사든 지원을 할 때 통번역자격증이 있다는 강점만으로 면접 볼 기회도 많았고, 합격도 했다.
남들이 국가자격증(기사, 한국사, 한국어)을 준비할 때 필요 없어 보이는 영어 관련 자격증을 준비했다. 남들이 하나쯤은 다 갖고 있는 국가자격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훨씬 특별하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희귀한 자격증이니까 관심을 많이 받았다. 가끔 내 블로그에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유입인구를 살펴보면 “영어통역자격증”이 있다.
남들이 다 하는 거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분위기나 유행에 휩쓸려서 따라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안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다 읽는다는 베스트셀러는 오히려 안 읽고, 나만의 취향대로 내가 좋아하거나 끌리는 책 위주로 읽는다. 남들이 모르는 책을 내가 알고 있을 때 느끼는 그 희열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나만 알고 싶고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싶다. 베스트셀러들을 대부분 안 읽어봐서 민망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애독가는 남들이 모르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