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에피소드에 이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렇습니다. 나는 살면서 엄마처럼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너무도 차이가 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죠. 엄마는 한마디로 참 통이 큰 사람 같았습니다. 조용하고 묵묵히 할 일 하는 아버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게으르다는 말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모두 너무도 성실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당시 모두가 힘들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습니다. 심심하고 우울할 겨를이 없습니다.
어떤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이야, 배부르고 등 따시니 불만이 많아. 우울증? 그런 거 생길 틈이 어디 있어? 먹고사는 게 바쁜데.” 그의 말이 맞기도 합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먹고사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사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 보니 그렇습니다.
엄마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시골에 시집와서 아버지도 힘들어하는 농사일을 했으니 말입니다. 엄마는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청결과 정리정돈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 쓸고 닦고, 정리하는 게 일입니다. 먼지 나고 흙 날리는 농사일은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게 있었습니다. 사랑의 부재. 시댁과의 트러블, 남편과의 트러블. 믿는 건 자식밖에 없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런 자식조차도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니 마음이 많이 아팠겠습니다.
아버지도 그렇습니다. 둘째 아들이었으나 형님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습니다. 부모의 뜻을 따라야 했겠습니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도맡았습니다.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의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알았습니다. 어린 부모님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걸요. 매일을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서투른 실수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실수하는 것처럼요. 히어로가 아니니까요. 엄마의 말의 맞았습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내가 원망의 말의 쏟아내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어이없고,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알겠습니다. 엄마도 매우 힘들었다는 걸요. 완벽하지 않은 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요. 그래도 엄마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많습니다. 돌봄. 엄마는 나에게 세상을 선물했고, 나를 돌봐 주었습니다. 그걸 이제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참 답답했습니다. 신문만 읽고 있는 아버지가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그렇습니다. 그러다 마음 맞는 지인과 밤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도 그랬나 봅니다. 마을회관에서, 집으로 찾아오는 어르신들과 소주를 두고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표현력이 미숙했지만 아버지도 사랑을 받고 주고 싶은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부모님은 의도했든 아니든, 나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존재입니다. 나를 돌봐준 존재입니다. 성인이 되어, 식물을 키우고, 강아지를 키우고 고양이를 돌보며 알았습니다. 돌봄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이라는 것을요.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됨을요. 타인의 사랑이 크고 작음을 운운하는 건 괴로움을 자처하는 일인 것 같아요. 사랑은 나에게부터 나오니까요. 그래서 사랑은 받기보다 주는 것이라 하나 봅니다. 주는 사랑이 궁금하다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식물이 있나요?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잎을 정리해 주세요. 자주 시선을 주기도 하고요. 나에게도 그렇게 해주세요. 돌보는 것이죠. 그렇게 돌봄에 익숙해지면 나를 사랑하는 일이,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좀 더 수월해질 거예요. 즐겁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예요.
11.29, 24. 다이아 벨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