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입니다. 불어로는 노엘Noël이라고 하죠. 노엘은 저에게 매우 특별했습니다. 한국에 설날과 추석이 있듯이, 프랑스에는 노엘이 있어요. 매우 가족적이고 따듯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죠. 매 해 노엘이 되면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죠. 친척들이 모두 모여 가족 파티를 하기도 합니다.
노엘에 먹는 음식도 매우 특별합니다. 마치 그동안 무얼 먹고살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많고 다양한 음식을 먹습니다. 늦은 오후 5시나 6시부터 아페로(아페리티브Apéritif)로 가볍게(?) 시작합니다. 다양한 핑거푸드와 샴페인 또는 위스키와 같은 강한 알코올을 마시기도 합니다. 핑거푸드도 다양하죠. 아보카도 퓌레와 크리미 한 치즈 위에 새우를 얹고 레몬즙으로 살짝 산미를 더한 음식, 비트 퓌레에 크리미 한 치즈를 섞어 만든 음식, 쏘씨쏭(저의 최애 핑거푸드죠)을 얇게 잘라 깜빠뉴 빵이나 바게트에 얹어 먹는 음식(저는 그냥 쏘씨쏭만 먹습니다) 등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있죠.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아페로를 즐기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그동안 사는 이야기, 지금 일어나는 사회적인 이슈, 읽은 책에 대한 소견, 서로의 관심사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죠. 옆 성(캐슬)의 새로운 주인이 영국인인데, 그는 어떤 사람이고, 근래 지역 로터리 커뮤니티에서 어떤 일이 있어났으며 하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시간입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이었습니다.
아페로를 끝내면 본격적인 식사를 합니다. 앙트레(전체요리), 메인 요리, 샐러드와 치즈, 디저트. 메뉴에 따른 적절한 와인을 선정해서 함께 합니다. 꼬냑이나, 레몬첼리, 배알코올과 같은 디제스티브(후식 알코올 쯔음으로 해두죠)나 커피와 초콜릿으로 식사 시간이 마무리됩니다. 아페로부터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죠. 프랑스에서는 전통으로 내려오는 식습관이기도 하죠(매일 그런 저녁시간을 갖지는 않습니다).
지금 저는 한국에 있습니다. 이제 그런 이야기도 과거이고, 그런 과거를 잊지 못해 힘들어 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걸 내려놓고 인정하고 포용하기 전까지는요. 이제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내려놓음과 포용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사서를 쓰고 살아갑니다. 제가 저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아마도 당시에는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주위에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참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오늘 크리스마스를 맞아, 상하이에서 기적적으로 만난 지인을 만났습니다. 교회에 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간. 그때 저를 살게 해 주었던 은인입니다. 사실 그때 제가 만난 은인은 한 두 분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저에게 살라고, 죽지 말고 살라고, 온 힘을 모았던 순간이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살면서 그렇게 따듯했던 순간도 없었습니다. 내가 존재 자체로 온 세상의 사랑을 받았던 순간이었죠. 그 겨울, 크리스마스는 제게 칠흑같이 어두웠었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웠었어요. 그러나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고, 차가운 얼음을 따듯한 곁으로 녹여 주었던, 사람들.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았죠. 오늘 그들 중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봅니다. 잘 살고 싶습니다. 아니 잘 살고 있습니다!
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친구도 그러네요. “Merry Christamas Miyoung! I’m so happy you’re happy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