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리어스 Lillarious
가끔 내가 처한 현실이 비현실적일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시간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관계가 갑자기 단절될 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죠. 그러다, 함께했던 순간들을 나는 얼마나 감사히 생각했을까 하는 죄책감도 느끼곤 합니다.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 있죠. 그 말이 맞긴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금 오류가 있어 보이기는 해요.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정말 맞을까요? 제 생각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에서 하나하나 세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서라 생각해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애틋한 것은 잃어버린 후, 그제야 빈자리가 드러나기 때문이겠죠.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라는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 매번 세심하게 챙기지 못하였다 하여 죄책감을 가지진 말았으면 해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저의 현재와 과거의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나고 나니, 너무도 풍족했던 삶을 살았던 것이죠. 왜 그때 더 감사히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도 했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겸손하지 못했다는 저를 비난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당연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어요.
다가오는 현실을 편견 없이 받아들였고, 나름 최선이었던 것이죠. 엄마가 하셨던 말을 저도 하고 있네요. 네, 그런 것이었어요. 하나하나 모두를 세심히 챙길 수 없는 것이니까요.
흘러가는 대로 놓아주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포기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건, 내게 할 일이 있음을 말한다 생각해요. 그동안 놓치고 이제야 생각하게 되었다면, 이제 그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된 것이죠. 마치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것처럼요.
저는 쇼비즈니스에 있기도 합니다. 여러 개의 정체성 중 쇼비즈니스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은 한동안 참 낯설었어요. 뭐든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을 비롯해, 넌버벌 공연을 하는 분들, 여러 종류의 코미디언분들을 만납니다. 이분들은 사실 예술가죠. 배우라 생각하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해요. 모두 연기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니까요.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겨하는 하는 일이야말로 쉬울 것 같으나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어떨 때에는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도 하죠. ‘관객이 웃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래서인지, 유명 코미디언일수록 무대 밖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분들이 많습니다. 무대를 위해 온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죠.
처음 그런 모습을 봤을 때 매우 당황했었습니다. 코미디언은 어디서든, 언제나 웃는 존재인 줄 알았으니까요. 이건 비단 코미디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쇼비즈니스에 있는 모든 아티스트들에 관한 이야기죠. 극도의 긴장감을 견뎌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그런 쇼비즈니스의 응축된 에너지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쪽을 택했던 것 같아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과 터져버리기 일초 직전의 응축된 에너지. 100퍼센트 Pressure를 견디며 어떻게든 생산해 내고 전달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예술가가 아닌가 합니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증명하는 삶인 것이죠. 이제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큼 큰 걸음을 뗄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로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