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5년의 시간을 건너 “
며칠 전, 특별한 시간 여행을 했습니다. 5년 전에 자주 가던 카페에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손님들로 꽉 찬 카페에 한 자리가 남아 있네요. 자주 앉던 창가 자리입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덩그러니 홀로 비어 있네요.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카운터로 향합니다. 직원인지, 주문을 받는 분이 바뀌었네요. 예전에도 주인과 직원이 교대로 근무했었지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카페 안을 서성이며 커피가 나오길 기다립니다. 그대로입니다. 바뀐 것이라고는 작은 소품들과 그때도 있었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커피 볶는 기계. 그뿐인 것 같습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같습니다.
잠시 후 배부른 반달 모양의 나무 쟁반 위에 주문한 커피가 나옵니다. 진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동그란 커피잔과 물, 질그릇처럼 보이는 깜찍한 도자기에 담긴 설탕과 앙증맞은 스푼이 있습니다. 정갈합니다. 남성적인 듯하나 부드러운 여성성이 느껴지는 디자인입니다. 이런 걸 취향저격이라 하지요.
곡선과 직선, 어둠과 밝음, 볼드함과 섬세함의 조화를 좋아합니다. 제 기억엔 무심한 듯한 사장님을 닮은 듯, 세심한 직원분을 닮은 듯 아무튼 이 카페의 분위가 그렇습니다. 커피를 끊은 지 오랜데, 무슨 일인지 요 며칠 아침마다 커피를 마십니다. 캐나다에서 친구가 직접 가져다준 커피가 아직 남아있어 다행입니다. 팀홀튼스 디카페인입니다. 인스턴트이나 제법 진하고 향이 부드러워요. 그래서일까요. 그 덕에 이 곳에 다시 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커피는 진하고 부드럽습니다. 온도도 적당하네요. 그윽한 커피 향에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그때도 혼자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지요. 창가에 비치는 거리 풍경도 여전히 고혹적이고 정겹습니다. 해방촌만의 색이죠.
5년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 자리가 5년 후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다섯 번의 계절의 지났고, 거리의 사람들도 바뀌었지만, 카페와 창 밖 풍경은 그대로예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얼마 전, 쓰레드의 한 포스팅에서 ‘순간이동’ 스티커를 보았더랬어요. 사진 속 엘레버이터 안에 1층, 2층을 가리키는 버튼 위에 ‘순간이동’이라고 쓰여있는 스티커가 있었지요. 누군가 부러 붙여 놓았나 봐요.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잠시, 진심으로 그 버튼을 누르고 싶었어요. 포스팅을 하신 분도 그랬다고 해요.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봐요. 자유!
어디든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재미있을까요? 과거로 갔다 미래로 갔다, 북극체험을 하다가도 더위가 그리워지면 아프리카 열대우림으로 옮겨 가기도 하고 말이죠.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장소에서 사는 삶. 너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순간이동을 하고 있었지요. 저만해도 코로나 시기 전에는 해외를 수시로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만 지나면 다른 지역으로 뚝하고 떨어졌죠. 개인적으로 환경이 바뀐 것도 있지만, 코로나가 발생함으로써 이런 ‘순간이동’이 멈춰버렸었죠. 거침없이 순간이동을 하던 현대인들에게 던져진 경고장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온몸이 밧줄에 묶인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기도 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 꿈을 꾼 적이 있었어요.
코로나로 때마침 등록했던 프랑스 학교도 문을 닫았었었죠.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 저는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기로 갈 수 없다면 저 혼자 날아서라도 간다고 생각했나 봐요. 어느 날 세잔의 그림처럼 꿈속에서 하늘을 날아 프랑스로 갔더랬죠. 그러면서 무거운 여행가방을 함께 들고 날지 못해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옷가지와 생필품을 현지에서 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어이없지만 나름 진지했던 꿈이었지요.
며칠 전에 간 카페에 다시 들렀을 때, 그렇게 순간이동한 기분이었어요. 우연히 그날 5년 전, 그림으로 알게 되었던 분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었거든요. 각자의 꿈을 그림에 담아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셨고, 다른 분은 취미로 그린다고 하셨죠. 서로의 바람을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지내왔던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어요. 선생들님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더라고요. 한 분은 꿈을 이루었고, 또 한 분은 새로운 꿈을 찾은 듯 했어요. 그러나 모두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변함이 없는 듯 보였어요. 우리는 다시 모여 그때처럼 각자의 그림 이야기를 했어요.
카페도 사람들도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정겹고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틈 안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변해왔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극적인 일은 생기지도 않았지만 새로운 관계를 만끽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나는 여전히 무언가와 힘께 녹아있는 듯, 공동으로 뭉뚱그려져 살아가고 있네요.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좀 더, 아니 매우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게 됩니다.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래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에게 자책이나 미움의 잣대를 대기보다는 격려와 용기의 손길을 건네고 싶었던 하루였습니다.
카페 직원의 손놀림이 분주해집니다. 남자 친구인지, 한 분이 멀찌감치 떨어져 커피잔을 기울이고 있네요.
10시에 순간이동을 해야 한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