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간 인연들

by 글짓는 미영씨

나는 손절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손절을 한 세명의 친구가 있다. 오늘은 문득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첫 번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알고 지냈었다. 유머감각이 좋아서 같이 있으면 재밌고, 꾸미기도 잘해서 은근히 따라 배운 게 많다. 하지만 리드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뭐든 자기 멋대로 하는 탓에 남을 따라가고 맞춰주는 성향인 나와는 매우 맞지 않았다. 항상 나만 희생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고 어느 날 그 인내는 끝을 보였다.


그날 다른 한 친구와 같이 세 명이서 저녁약속을 잡고 7시쯤에 만나서 놀기로 했었다. 내 생일 즈음이었나 해서 노래방도 가고 밥도 먹고 하기로 대략 계획을 했었다. 그날 6시까지 알바가 있었던 터라 끝나고 바로 약속 장소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바가 끝나고 카톡을 확인하니 둘이 미리 만나 노래방에 가있겠다는 것이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가서 같이 놀다 보면 기분이 풀리겠지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도착하자마자 그 친구가 하는 말은 피곤해서 먼저 집에 가겠단다. 자긴 놀 거 다 놀았고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으니 돌아가겠단 소리다. 도대체 이럴 거면 약속을 왜 잡았으며 미리 말이라도 했으면 거기까지 가질 않았을 것 아닌가.


그때 느낀 충격은 아직까지 잊지 못하겠다.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란 걸 느끼고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쌓아온 추억과 감정들은 소중하지만 그걸 이어가야 할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에게 사람답게 친구답게 대해줄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연락을 해왔지만 최대한 거리를 뒀고 그렇게 끝이 났다.


두 번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만났었다. 알고 지낸 시간은 세명중 가장 짧지만 가정환경 등 공유할 이야기들이 많아서 가깝게 지냈었다. 그 끝은 매우 허무했다. 해외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때, 날짜를 겨우 맞춰 밥을 먹기로 한 날. 그 애는 애슐리 뷔페가 먹고 싶다고 계속 우겼었다. 속도 별로 안 좋고 한식이 먹고 싶었던 터라 다른 데 가면 안 되냐고 재차 물어봤지만 끄떡없었다. 일단은 애슐리를 가자고 하고 약속장소를 가면서 문득 한국에 오랜만에 온건 난데 왜 저 애는 자기가 먹고 싶은걸 저리 피력할까 의아했다.


약속도 삼십 분 정도 늦은 상태에서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으려니 기분이 좀 그랬다. 그런 상태에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좀 나아졌고, 그다음 주에 시간이 날 때 롯데월드에 가자고 해서 미리 샤틀버스 표도 사놓고 그날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전날 갑자기 계획을 취소하자면서 환불이 되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다행히 버스표는 환불은 가능해서 돈을 돌려준 뒤 그 이후로는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만 자주 만나고 성인이 된 이후로 자주 만나지 않아서 몰랐지만, 조금 충격이었다. 가기 싫다는데도 억지로 가고 싶다고 우기던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으면 한다.


세 번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최근까지 연락을 이어오던 사이다. 나와는 결이 매우 달랐지만 친구가 됐던 아이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끝이 제일 힘들었다.


그 아이는 중학교 때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내가 항상 공부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서 같이 공부하게 됐었다. 나도 노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는 아이에서 이대에서 쇼핑도 해보고 외모에도 신경 쓰게 됐었다. 성인이 되고도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친구도 많아서 알고 지내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 일을 겪기 전까진.


그 일은 내 결혼식에서 일어났다. 해외에서 하는 터라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은 숙소를 마련해 주려는 생각을 하고 결혼 날짜를 알려줬는데 놀랍게도 곧바로 오겠다고 답이 왔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게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내 결혼식을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원래 계획된 여행에서 잠깐 결혼식에 들려 얼굴만 비추고 숙소도 공짜로 얻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결혼식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편을 포함해서) 이 친구는 나를 위해 오는 게 아니라고 했었다. 지금까지 봐온 봐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끝까지 그녀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날 사회자에게 줄곧 나를 불러서 자신의 숙소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걸 듣고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는 온통 자기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숙소가 중요했고 자신의 여행이 중요했다.


결혼식 다음날 그 친구는 원래 여행하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우리가 가족이랑 친한 친구들끼리 근처에 유명한 와이너리에 간다고 하니 갑자기 마음을 바꿔선 끼어갔다. 그때 당시엔 가족들은 대부분 내가 그 애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그간의 일들을 알았기에 상당히 차가운 상태였지만 끄떡 않고 같이 식사를 했다. 당시의 나는 축의금을 얼마나 줄려고 이런 식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놀랍게도 그 애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자신이 참여한 게 나에게 그렇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sns에 답글을 남겼고 그 꼴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나는 생에 처음 누군가를 차단했다. 곧 결혼한다고 하던데 자신 같은 친구가 가득한 결혼이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보니 세 명에게 공통점이 있는 것도 같다. 무언가 반짝이거나 공감 가는 것이 있어서 다가갔다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고 멀어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배울 점이 있겠지만 그로 인해 겪는 스트레스와 상처가 너무 크다면 때로는 그만해야 하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게 뿌듯하다.

작가의 이전글지나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