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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결혼하기 전 알아둬야 할 것.

by miyouvely

연애 중인 지인들은 결혼할 사람은 뭐가 다르냐며 눈이 반짝이며 질문을 쏟아낸다.

매번 답은 같았다. 이 사람과 있으면 편하다. 꾸밈없는 날 것의 나인상태로 괜찮다는 것.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다.


어쩌면 오만함이 더해진 착각.


결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별하는 과정에서 찢어질듯한 마음고생이 힘들었고 버림받는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그로 인해 베풀기만 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배려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맞추기 급급했고 내 마음 따위 쳐다보지 않았다. 한편에 공허함이 사랑에 대한 결핍은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부족했던 거였는데. 그걸 또 결혼으로 채우려 했구나.


결혼하면 끝이라는 게 없을 줄 알았다.

주변만 둘러봐도 곧 헤어질 것처럼 다투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갔으니까.

그게 가족이 아닐까 했다.


결혼생활이 지나갈수록 연애만 하고 싱글로 사는 삶이 내겐 더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결혼한 걸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주는 안정감과 다른 결의 든든함. 친한 친구에게도 망설여지는 말을 할 수 있는 막역한 사이인 내 편이 있다는 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면 역할론이란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이벤트가 있어 시댁에 가는 때에는 시부모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체력 소진을 매번 1박을 하고 와야 하는 짝꿍을 존중하기 위한 피로는 늘어갔다. 시댁에 간다고 해서 일을 하는 건 전혀 없다. 되려 힘든 나를 배려해 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낮잠도 자고 먹고 자고 온다.


신기하게도 친정에 가는 것도 불편해한다. 살가운 며느리가 아니라 짝꿍에게도 바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부모님께도 모진소리를 하는 못난 딸이기 되기도 했다.



양가에서 티는 안 낸다고 하지만 2세에 대한 압박이 더 짓누르기 시작했다.


짝꿍은 애기도 좋아하고 그냥 다른 평범한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행복했을 텐데.

나를 만나 고생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커져가던 무렵.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마음 깊숙한 말은 삼킨 채 지냈다.


같이 저녁을 먹고 각자 좋아하는 분야의 영상을 보며 멍 때리는 자유시간을 만끽하며 보내는 게

결혼 생활에 문제가 되리라 몰랐다고 하지만 핑계였다. 방관자였다.


어떤 관계든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라는 게 필수불가결 조건인데 말이다.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우리의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과연 둘이서 평생을 사는 게 가능할지도 함께.


피하고 싶었던 주제였다. 2세에 대해서는 글쎄란 단어로 미뤄왔다. 의학적으로 노산을 한참 넘어 난임센터를 다니며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태라 더 생각하기 싫었다. 10대에는 대학교를 가야 하고 20대에는 취직을 해야 하며 30대에는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을 본인의 선택과 달리 꼭 해야만 하는 이 상황에 지쳐버렸다.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정말 옳은 걸까.

그렇게 살면 행복할까.

당연히 새로운 생명체를 키우며 느낄 행복은 이미 귀에 딱지가 질만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라는 건 안다.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라 운동으로 내년까지 좀 몸을 만든 다음에 축복이 찾아온다면 받아들이고 싶었다고 처음으로 혼자만 생각했던 속마음을 얘기했다. 아픈 모습을 티 내는 걸 싫어하는 나로선

엄청난 용기였고 그걸 아는 그래서 미안해했다.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것 없다. 경행자가 아닌 동행자라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이날을 기점으로 더 단단해졌다. 삶에서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다면 상상도 안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걸 잊지 말자.



결혼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역시 결혼은 신중과 신중을 기해서 내려야 한다는 것을. 좋은 면도 있지만 결혼을 함으로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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