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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잒 Jul 19. 2022

작가가.. 작가가 하고 싶어요.. | prologue

신학과 과탑의 좌충우돌 방송작가 도전기

Q1. 왜 방송작가가 되었나요?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하나씩 품어둔 꿈이 있다.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면서 꿈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잔인한 순간이 있다. 나는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그 잔혹한 순간을 마주했다. 


섬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기자와 PD라는 꿈이 있었다. 백화점도 키즈카페도 그 흔한 스타벅스도 없는 곳에 번번한 문화시설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시골 출신들은 잘 알 것이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대신 나의 사고체계는 TV와 책으로 만들어졌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었으니, 글에 재능을 보이는 건 당연했을 터. 유독 섬마을이 답답했던 나는 TV 속에 나오는 서울살이를 동경했고 그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입에 실패했고 기독교인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성적 맞춰, 신학과에 들어갔다. 나는 '전과 후보 1번'이었다. 기독교학교이면서 일반대학인 학교의 신학과에 정시로 입학하는 목적이, 전과 말고 무엇이 있을까. 나 역시 탈'기독'을 꿈꾸며 학과 탈출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우리 학과에서는 신학뿐만 아니라, 기독교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역사학 등 기독교 학문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 전반을 강의 내용으로 다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이미 많은 독서량으로 익숙했던 터.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이 그다지 어렵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왔고,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학과는 너무 좁았다. 그렇다고 내 그릇이 크다.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단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던 지난 19년이 떠오르며 '학과와 학교에 갇혀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놓치지 않았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그저 서울에서 돈 벌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우연히 아는 작가님을 통해서 공공기관 유튜브 보조작가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했던 일은 기사를 찾고, 촬영 당일 출연진을 모시러 가고, 프리뷰(영상 받아쓰기) 작업을 하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막내작가의 역할이었다. 분명 일이고 선배들이 말하길 돈 버는 것이 연관되면 다 골치 아프다 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구성과 기획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기독교언론사 인턴 기간동안 운 좋게 영상 보조 역할을 하며 프리미어를 배웠다. 사수 잘 만난 덕에 단축키도 못 외우던 내가 6개월 만에 영상 하나를 (효과 잔뜩 넣고)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배워둔 편집 기술은 작가가 되는 결정적 도움을 줬다. 이후 개인 편집자, 기업 영상 편집자 등을 하면서도 영상 구성을 나름대로 진행했다. 편집을 하면 할수록, 구성이 너무 하고 싶었다. 


 (구성이.. 구성이 하고 싶어요.. - 당시 내 심경)


그러다 한 스타트업의 편집자로 급히 투입이 되었고 구성에 관심이 있다는 내게 대표님은 당일 브랜디드 영상 촬영 건의 대본을 공유해주셨다. 몇 개의 설정을 비틀어 당장이라도 촬영이 가능한 장치를 삽입했고, 그때부터 나는 편집자 겸 기획자가 되었다. 동시에 영상업을 하고 있던 학교 선배를 통해 대기업의 교육영상 기획을 맡게 되었고, 이 두 우연한 기회로 나는 구성작가가 되었다. 작가님이 되어 섭외부터 후편집까지 신경을 쓰는 작업을 할 때면, 나는 피로회복제 없이도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현장에 나가 밤을 새우고 들어와도 또 일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가 정말 이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작가님들이 그러했듯 작가교육원에 등록하고 공고에 지원해 방송작가가 되는 루트를 밟았다. 


나는 왜 방송작가가 되었을까. 누군가 물으면, '구성이 너무 재밌어서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게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약이 있다. 내 천직을 찾기까지 나는 운이 참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 묻는다면 사람을 담는, 사람을 돕는 작가라고 대답하곤 한다. 블로그에 작가 노하우를 나누면서 꽤 많은 질문을 받았다. 방송작가를 희망하지만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떤 루트로 작가가 될 수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이 온전히 내 힘만은 절대 아니었듯이, 나 역시 브런치라는 공간에 나의 노하우와 경험을 나누면서 작가를 희망하고 막내작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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