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봉한지 6년차, 예진 작가님
세상에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삶을 영위해가는 사람들. 예진 작가님은 그런 확신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글을 잘 쓰고 노래를 좋아하던 탓에 어릴 적부터 작사가라는 꿈을 품었고, 어린 나이에 꿈을 이뤘다. 3분 내에 기승전결이 모두 포함되는 글을 쓰는 그녀는, 적게는 16부작 많게는 대하극을 쓰는 드라마작가의 삶이 궁금하다고 했다. 더 큰 꿈을 좇으며 부단히 노력하는 예진 작가님을 약 한 시간동안 인터뷰 할 수 있었다.
"저는 입봉한지 6년차, 전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년차가 되는 작사가입니다. ccm 밴드 보컬 겸 곡 쓰는 사람이에요. 그 중에서도 작사를 가장 많이 하고 있고요. 어릴 때부터 글이라면 어디 내놓아도 자신 있었어요. 음악도 좋아했어서 자연스레 작사가의 꿈을 꾸게 된 것 같아요. 전공은 실용음악인데, 문예창작과의 길도 있었지만 음악을 좀 더 깊이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보컬 전공을 살려서 대학을 들어갔어요.
입봉이란걸 한 건, 고등학생 때였어요. 보컬 레슨을 받던 선생님께서 곡을 내셨는데, 가사 쓰는걸 좋아하던 제게 작사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고 우연한 기회로(?) 입봉 작사가가 되었어요! 내 작품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는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입봉한 작가들을 굉장히 극적으로 그려놓잖아요. 그런데 저는 내내 이게 맞나? 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만 좋고, 친구들에게 말하기에 좋은. 그것 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더라고요 (웃음)"
큰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성과를 냈을 때, 원하던 직장을 갖게 됐을 때, 쉽게말해 꿈을 이룬 순간이 닥쳤을 때. 당시에는 뛸 듯 기쁘지만 그것도 잠시. 이게 내 상상 속 순간이 맞나? 뇌정지가 오는 시점이 있다.
영화 <소울> 중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조는 이 경험이 자기가 생각한 기쁨과는 다름을 느끼고
매일 이렇게 공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된다.
조는 도로시아에게 자신은 이날만을 기다려왔고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고 토로해 보지만,
도로시아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주지.
그는 늙은 물고기에게 헤엄쳐가서 말했어. "바다를 찾고 있어요."
"바다?" 늙은 물고기가 말했지. "네가 있는 곳이 바다란다."
어린 물고기가 말했네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저는 바다를 원한다고요."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꿈을 이룬 예진 작가님. 그러나 그녀는 계속 꿈을 꾸는 중이다. 한번도 회의감을 느끼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한다. 누군가 시켜서 작사를 하는게 아니라는 작가님. 오히려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힘들다고 한다.
"작사가는 의뢰 받은 곡에 가사를 입히는 사람이에요. 곡을 맡긴 사람은 한 번에 최고의 창작물이 완성되어 나오는데,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저의 창작물이 단번에 일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수정해야지, 해야지, 마음을 먹고 손을 움직이는데 머리는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문득 작사가에게 의뢰를 할 때는, 어떻게 의뢰를 해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단번에 받을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예진 작가님은, 처음 말해주는 가이드가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레퍼런스를 잡아서 보내주면 훨씬 작업에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누군가 나의 노력이 깃든 창작물을 보고, 진심으로 "좋았다"고 말해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사실 저는 그렇게 홍보를 많이 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저를 보컬리스트로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제 가사를 보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표면적인 응원인지, 아님 정말 감명을 받아 보내는 말인지는 느껴지기 마련인데, 진심어린 연락을 받으면 정말 기뻐요. 아직까지는 결과에 대한 보상보다 인정 받는 느낌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배고픈 직업이란 건 중학생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창작을 해서 산다는 건, 대박 아니면 살아가기 힘들다는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도 창작이 가져오는 특별한 매력에 매료됐던 것 같아요. 이야기든, 노래든, 책이든 작가가 없었으면,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표현 하나하나로 달라지는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훌륭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작사가가 강렬히,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서두르지 않을게요
난 매일매일
사랑을 고백할게요
내 곁에서
편히 기대 쉬어요
그대 나와 미소를 닮는 날 그날까지
하고 싶은 일을 즐기고 있는 자에게서 나오는 여유, 그리고 자신감. 예진 작가님의 여유는 창작을 향한 열정에서 비롯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 그녀가 롤모델로 삼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를 닮고 싶기에, 이토록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걸까.
"김이나 작사가요. (웃음) 워낙 유명한 분이시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 분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저는 팬이었어요. 쓰신 책도 다 읽고, 작사법을 알려주신 프로그램을 달달 외우듯 다 보기도 했고. 하나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가사에 녹여내는 걸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분이세요. 김이나 작사가는 저처럼 의뢰가 들어오면, 맞는 가사를 쓰시는 분인데 그런 면에서, 직업적으로 본인의 일을 너무 잘 하시는 점을 닮고 싶어요.
또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요. 잔나비 최정훈씨요.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지? 가사를 읊조릴때마다 감탄하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잔나비 최정훈씨의 가사를 많이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누구를 닮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작가가 되고싶은지도 중요하잖아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마음 먹었던 순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했고요, 새벽감성을 많이 탔던 것 같아요. 딱 그 시기에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나온 노래 <그래, 우리 함께>를 들었어요. 그 노래를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펑펑 울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아, 이렇게 치유가 되는 곡을 쓰고 싶다. 라는 마음이 커졌어요. 가사를 쓰는 이유, 음악을 하는 이유는 지금도 같아요. 내 노래로 한명이라도 치유받았으면 좋겠다.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신도 났으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으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하고픈 말을 물었다. 쑥스러운 듯 크게 웃던 예진 작가님은, 이내 깊은 생각에 빠지더니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길, 굉장히 외로운 건 사실이죠. 그리고 내게 일 줄 사람이 필요해요. (웃음)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하고, 음악적으로든 아니든 사람을 통해 받는 영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같아요. 가사 소재로 쓰면 좋겠다 하는 에피소드를 찾기 위해 사람을 만나기도 해요. 그러려면 좋은 사람들이 옆에 많아야 하는데, 내가 좋은 사람이면 인복도 자연스레 많아지잖아요. 그렇게 나를 발전해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나은 사람이 되어가면 갈수록 좋은 사람도 주변에 많아지고, 기회도 자주 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내가 하는 일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가사를 잘 써요, 가사 쓰는 일을 해요. 라고 끊임없이 얘기를 하면요, 사람들이 제가 실력 있다고 생각해서 저를 믿어줘요. 마지막으로,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기 마련인 직업이잖아요. 비수기가 오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다면, 이 일을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다같이 좋은 한줄한줄을 위해 응원해나갑시다. 화이팅"
기독교학에서, 인간에게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관계'라고 한다. 지금 CCM에 가사를 붙이고 있는 예진 작가님은 신이 주신 선물이 얼마나 귀한지를 무척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작가님으로부터 한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어 고맙다고. 작가님의 넘치는 생기를 받아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은 나는,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