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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잒 Sep 20. 2022

[작만작] 내 작품이 위로가 되니까요.

4년차 그림작가 헤일리의 이야기

그림작가 헤일리와의 첫 조우는 노래 동호회에서였다. 뚜렷한 인상에 꾸민듯 안 꾸민듯 색을 조합한 차림으로 나온 그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아, 저 사람도 분명 창작자겠구나. 꾼은 꾼을 알아보듯, 나는 내 동족을 금방 알아챘다. 영미권에서 오래 공부하고, 회사생활을 해 온 헤일리는 휴가 삼아 한국에 들어온 차였다. 그녀는 휴식과 불편한 동거중이다. 한 번도 살면서 쉬어 본 적 없는 탓에, 지금 온전히 나를 위해 누리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만은 못한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인터뷰를 제안했다. 


"글 작가인 내가, 그림 작가인 언니를 인터뷰하면 어떨까요?"


무료함과 권태 속에 일할 때의 반짝임이 필요했던 헤일리는 무척이나 흔쾌히, [작가가 만난 작가]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어색해하던 모습도 잠시, 늘어놓기에 2박 3일도 부족한 그녀의 업적을 달달 읊고, 나는 받아쓰느라 우리는 서로 정신이 없었다. 한 시간 내내 서로의 비슷한 점을 탐구했다. 그동안 예술과 창작이 우리의 삶에 은은히 스며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질문은,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 작가'인지를 묻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녀는 쑥스럼 반, 긴장 반으로 말문을 열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예요. 남에게 의뢰를 받아, 정해진 틀 안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인데.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은 아직은 생소한 분야예요. 한국에는 일러스트학과가 딱히 없는 걸로 알아요. 그래서 내 전공을 소개할 때, 저는 서양화과나 회화과라고 설명하곤 합니다."


"중학교때까지는 공부를 꽤나 잘 했어요. 우등반에 속해 있기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학 과학을 좋아하던 이과생이었어요. 선생님들도 약대를 지망하는 것이 어떻냐, 권장했고요. 진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문득 걱정이 되더라고요. '어쩌면 내 평생 직업이 될 지도 모르는데,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그 때 문득 취미로 삼던 미술이 생각났어요. 내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었거든요. 


사실 어릴 때 굉장히 산만한 아이었어요. 뭐든지 조금씩 발 담그는 건 참 잘했고 공부도 그 중 하나였죠. 그래서인지, 30분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어요. 딱 하나, 그림 그릴 때 빼고요. 초등학교 3학년 애가 그림 그린다고 7시간을 책상 앞에 꼼짝않고 앉아 있었어요. 무색무취인 내가 알록달록 무지개빛을 쓰는 순간은 붓과 펜을 잡을 때였어요. 그래서, '그림이 나한테 잘 맞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고등학교 때 예술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하게 됐죠."


미술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이면 모두 안다는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이름 있는 기업에서 커리어패스를 쌓아 온 그녀.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녀가 본인 자랑을 입에 담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셀프 칭찬을 민망해하는 조선화(?) 됐다며, 그녀에게 우스갯소리를 건네자 박장대소가 건너왔다. 잠깐 조선의 헤일리를 내려놓고, 미국의 헤일리로 돌아와 당신의 업적을 자랑해달라며 요청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다니던 회사가 화장품 패키징 회사였어요.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제가 일러스트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출시할 패키징에 제 디자인을 넣어보는 건 어떤가, 먼저 제안을 해왔고 저는 흔쾌히 작업에 임했죠. 패키징 특성 상 출시 몇 달 전에 시안이 결정되는데, 내 눈으로 제품 출시를 보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죠. 그러고 몇 달 후 괌으로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세상에, 내 작품을 입은 패키징이 마트 매대에 떡하니 올라와 있는 거예요." 


작가님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군요! 라며 추켜세우는 나를 극구 말리며, 아직 한참 멀었다는 헤일리. 그런 그녀도 일을 시작할 때는 좌절의 고배를 세게 들이켰다고 한다. 


"대학교 졸업할때즘, 정말 큰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뉴욕에서 핫한 브랜드였죠. 그 브랜드에서 협업 제안이 왔고, 너무 신나서 교수님께도 말씀 드렸어요! 축하를 받으며 미팅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그 쪽에서 부르는 가격이 너무 불길한 거예요. 그림 10장을 그려주고, 저작권까지 넘겨주는 데 1500불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인 제가 듣기에도 어처구니가 없는 가격이라 교수님들께 어떻게 하면 좋냐고, 조언을 구했죠. 당시 제 마음은 반반이었거든요. 어쨌든 회사의 이름값이 있으니, 이 프로젝트를 헐값에라도 진행하고 싶은 마음과 내 가치를 스스로 깎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얘기를 들은 교수님들은 단번에 NO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가격에 오퍼를 받아들이면, 다른 창작자들에게는 더 낮은 제안이 갈 거고, 이 생태계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거죠. 


(브랜드 이름을 듣고) 저라면 헐값에라도 했을 것 같아요. 라는 내게 헤일리는 사실 본인도 그랬다며 속마음을 터놨다. 


"그 때 정말 힘들었죠. 그냥 할 걸 그랬다고 수백 번 생각했어요. 교수님들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프리랜서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내가 뽑히려면 남보다 나은 구석을 계속해서 어필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게 되는 거. 무섭기도 해요."


그럼에도 그녀는 4년차 디자이너, 그림으로 밥벌이하는 어엿한 작가님. 좌절의 문턱에서 그녀를 일으킨 원동력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헤일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사는 게 참 신기하죠. 그럴 때마다 모르는 사람들이 '헤일리, 당신의 작품으로 내가 위로 받았어요' 라고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손 한번 털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요. 특히나 그림은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받기 어려운 일이에요. 한 번 작품을 준비하면 몇 주는 기본 몇 달, 몇 년까지도 가니까. 그래도 정말 신기한 방식으로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호주 매거진 달력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있는데, 저는 9월을 그리는 작가로 들어갔어요. 2022년 달력이니, 2021년 초반에 작업해 2021년 말에 팔았죠. 저조차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 그림이 어떻게 생겼냐면요, 창문에 여자가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어요. 그런데 9월 1일에 인스타그램에 엄청나게 긴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더라고요. 알고보니 제게 메시지를 보낸 그 분은, 9월 달력을 넘기기 싫을 정도로 하루하루와 전쟁하며 살아가는 분이셨어요. 용기 내 9월 달력을 넘겼는데 그 그림 속의 여자가 본인과 너무 닮아서 위로를 받았다는 거예요. 아, 저 여자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은, 열심히 산 삶의 반증이겠구나. 그녀는 지금 잠시 쉬는 것일 뿐이고 금방 다시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다시 씩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얻었다. 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경험인 지 몰라요.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아요. 이 일." 


그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색깔로, '따뜻한 오렌지'를 꼽았다. 

"그 색을 실제로 많이 쓰기도 하고요. 내 그림에서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안정을 느끼고 평안하면 좋겠어요." 


사람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는 그녀의 말 속에서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그림에 표정을 잘 넣지 않는다. 감정을 정형화하기 싫어서, 그녀가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 하나의 표시라고 한다. 그림은, 온전히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 그런 헤일리의 진심에서 자신을 투영해 봤던 한 사람과 그의 메시지 덕분에, 헤일리는 미술을 놓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사실. 세상이라는 커다란 매듭 속에서 튼튼한 새끼줄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픽디자인은 순수미술계와는 다르게, 상업성을 띄는 분야예요. 결국에는 개인사업자, 작은 사업체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여기 입문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림뿐만 아니라 경제와 경영 등을 공부해두면 좋아요. 두 번째는. 이 업계 정말 좁은 바닥이에요. 과장해서 두 다리 걸치면 다 아는데. 그런 만큼 서로에게 굉장히 열려있어요. 저도 처음 일러스트를 시작할 때 막막한 마음으로 유명 작가들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단 한명도 빠짐없이 제 메시지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줬던 따뜻한 기억을 갖고 있어요. 그 마음으로, 내가 받은 만큼 꼭 나눌 거라는 다짐을 하게 됐고요. 서로의 따뜻한 연결고리를 믿는 거. 그것도 중요하네요."


헤일리는 아트디렉터를 꿈꾼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본인의 장점을 살려, 매니저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 따뜻한 도전, 양립할 수 없어보이는 두 단어가 헤일리라는 사람 안에서 하나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친다. 그녀의 선한 영향력이, 온 세상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한줄기 산들바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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