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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조 Jun 15. 2022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추어탕

(feat. 아저씨 입맛)



  추어탕은 본래 미꾸라지를 넣어 푹 끓여 만든 음식으로 미꾸라지를 통으로 먹는 중부지방 식,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전라도식 추어탕과 체에 걸러서 먹기에 부드러운 경상도식(방아를 넣기도 한다)으로 나뉜다. 추어탕은 만드는 과정을 보면 미꾸라지가 참 징그럽기도 하고 걸쭉하고 뼈가 씹히는 국물이나, 고수만큼이나 향이 독특한 초피 가루와 생선살을 갈아서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는 미더덕 찜의 콩나물을 열심히 골라 먹거나 육개장과 사발면 육개장도 구분 못할 때 매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모습 때문인지 양식을 몹시 좋아하는 친언니는 나를 보고 아저씨 입맛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아저씨는 죄가 없다!) 추어탕도 단연 나의 아저씨 입맛 취향을 저격한 음식 중 하나이다. 


  중학교 때 살던 동네에 24시간 하는 감자탕 집이 굉장히 유명했는데, 사실 나는 감자탕을 무려 중학교 때 처음 먹어보았다. 서민음식에 대표적 해장음식으로 유명한 감자탕을 우리 가족은 즐겨 먹지 않았다. 부모님은 술은 입에도 데지 않으시니 해장국도 먹을 일이 없었고, 엄마가 세상의 모든 돼지고기를 싫어하시는 편이셔서 감자탕이라는 음식의 존재 자체를 중학교 때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감자탕을 처음 먹었을 때 어찌나 맛이 있던지, 살을 야무지게 발라 새콤한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 재미와 짭짤한 국물의 조화로움에 뼈 사이사이를 쏙쏙 발라먹는 재미에 걸쭉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감자탕 사장님은 열심히 감자탕을 먹는 우리에게 감자탕의 감자가 채소가 아니라 돼지 뼈 부위라는 깨알 정보까지 알려 주셨다. 낯설지만 익숙한 듯 맛있는 감자탕을 먹으며 감탄하니 친구들이 어떻게 한국에 살면서 지금까지 안 먹어봤냐며 신기해했다. 길거리 음식의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인 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전학을 가면서부터였는데, 그전까지는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살던 익숙한 동네에서 늘 먹던 음식만 먹었다면, 전학 이후에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음식 취향을 한껏 넓혀나갔다. 나에게는 첫 감자탕이 놀랄 일도 아니었던 것이 같은 이유로 국민간식 떡볶이의 영혼의 단짝인 순대도 그 무렵에 처음 먹어보았다. 그 시절 케첩 맛으로 먹던 ‘피카추 돈가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만화 캐릭터 피카추 모양으로 생긴 돈가스로 꼬치에 꽂아 먹는 것이 특징이며 살짝 매콤한 케첩 소스를 발라주는 돈가스로 주로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만점 메뉴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열심히 먹었다. 핫도그를 설탕에 굴려주어 맛의 신세계가 열리더니 감자까지 붙어있는 업그레이드형 감자 핫도그도 등장하던 길거리 음식의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그 무렵의 단짝 친구는 부모님 고향이 전라도라 그런지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여서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그리고 먹는 법이 틀렸다며 종종 혼났다. 하하) 그러다 보니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순대의 맛을 왜 이제야 알았나 아쉬울 정도의 맛이었다. 엄마는 지금도 순대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가끔 먹다 남긴 순대가 냉장고에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실 지경이다. 


  돼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더 하기로 하고, 추어탕으로 돌아오면, 고등학생 때 친했던 한 친구가 추어탕에 빠져있었고, 나는 친구와 함께 우연히 맛본 추어탕의 맛에 매료되었다. 여고생들이 감자탕에 추어탕을 참 많이 먹으러 다닌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데, 동네에 참 맛있는 남원 추어탕 전문점이 있었는데 갈 때마다 식당 안에 또래 친구들은 우리 둘 뿐이어서 나이 지극하신 손님들이 우리를 귀엽게 보셨다. 전라도식 추어탕의 특징은 원재료인 미꾸라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국물은 걸쭉하고 초피 가루를 뿌려먹으면 맛이 아주 좋다. (사실 통추어탕은 지금도 즐기지는 않는다) 나는 워낙에 향신료 파라 초피 가루를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많이 뿌려서 먹는다. 듬뿍 넣어서 먹으면 미꾸라지의 살짝 비릿한 맛이 가려지기도 하고 입안에 퍼지는 맵싸한 향이 참 독특하다. 초피 가루는 추어탕이 아니면 식탁에서 도통 볼 수 없는데 추어탕과의 아름다운 조합을 알아내신 맛. 잘. 알.(*맛을 잘 아는)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돋보이는 대목이다. 최근까지 나는 이 가루가 산초가루인 줄 알았는데 추어탕 집에서 주로 쓰는 가루는 거의 대부분 초피 가루라고 한다. 물론, 경상도 지방에서는 산초가루를 넣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산초든 초피든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는지 인터넷 사진으로밖에 못 보았을 정도로 생소한 재료지만 누가 시작한 조합인지 추어탕과 정말 어울리는 것은 틀림없다.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의 ‘남원 추어탕 전문점’에 가면 100% 국내산 미꾸라지 사용은 물론 강황(울금)을 넣은 노오란 밥도 함께 주어서 보는 맛과 함께 추어탕을 즐길 수 있다. 추어탕은 보양식답게 먹고 나면 땀도 쫙~ 나고 속도 든-든한 것이 배불러도 국물까지 싹싹 비우게 되는 마성의 맛이다. 찬바람 불거나 몸에 힘이 없을 때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다.  


 이런 추어탕을 먹을 때마다 나는 첫 연애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피식 웃곤 한다. 한창 추어탕을 좋아하던 시절, 처음으로 남자 친구가 생겼는데 그 친구는 한 살 어린 귀여운 연하남이었다. 둘 다 처음 하는 연애에 풋풋함이 가득한 시절이었지만 그만큼 서툴기도 했다. 연애에서 음식궁합이란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남자들이 연애하면 떡볶이를 제일 많이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고, 남자인 친구들이 연애나 소개팅을 안 하면 파스타 먹을 일이 도통 없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30대에 접어든 나의 주변에서는 파스타&떡볶이와 연애의 상관관계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곤 했다. 음식궁합이 잘 맞는 연애가 반드시 수월한 건 아닐 테지만, 음식으로 연애 초반에 공통점을 발견하며 가까워지기도 하고, 헤어진 후에는 옛 연인과 닮아 있는 입맛을 발견하고 씁쓸함을 느끼기도 할 터이다. 나의 첫 번째 연애는 다양한 음식을 즐기거나 나의 음식 취향을 아직 제대로 발견하지 않았을 나이였다. 누가 사주는 음식이면 다 좋고, 고기면 환장하고, 떡볶이는 없어서 못 먹고, 아웃백이면 더할 나위 없는 한 끼가 되는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추어탕에 꽂혀서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추어탕을 먹어야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추어탕에 대한 집착이 미국에서 잠시 살다가 한국에 다시 오면서, 외국에서 맛보기 힘든 한국 음식의 소중함을 느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때만 해도 떡볶이나 양념치킨 같은 한국의 맛을 제대로 내는 미국의 한인 식당이 없었고, 백 주부님의 황금 레시피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한국에 오면 먹어야 하는 음식 1순위는 양념치킨과 떡볶이, 짜장면, 나에게는 추어탕이었다. 그 당시 남자 친구는 자신은 추어탕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고, 사실 살짝 징그럽다고 고백했다. 어린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을 그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맛집을 소개해 주고 같이 먹으러 다니거나 그도 안 되면 혼자 먹으면 됐을 일이었는데, 괜히 입이 삐죽 나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엽지만 정말 억지스러운 투정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추어탕을 그렇게 좋아하니 시도라도 해보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해야 하고, 내가 맛있는 건 너도 맛있어야 하고,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껴야 하는 연애 상대와의 동일시를 원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그와 같아야 한다고 착각했던 미성숙한 연애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는 그런 연애를 지향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억지로 함께 가주는 것보다(음악 취향이 주류 쪽은 아니라 콘서트는 늘 혼자 다니게 됩니다만) 나 혼자 재미있게 다녀오라고 쿨하게 인사해 주는 것이 좋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가수의 음악을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억지로 앉아서 듣는 건 곤혹스럽다고 생각한다. 또 혼자 공연 보는 맛을 알아버린 나는 무엇이든 같이 하는 것보다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남자 친구가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먹어보지 않았다는 그 말에 서운해 혼자 며칠을 꽁해 있었던 것 같다. 추어탕에 맛을 들이지 않은 게 뭐 서운할 일인가 웃기면서도 그때 그 시절에도 나는 음식에 진심이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웃긴 것이 추어탕을 먹을 때마다 종종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지나간 연애 중에 그때가 가장 선명해서인지 처음의 풋풋함이 있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끝이 텁텁해서였을까. 그 친구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고, 나도 내 인생을 잘 꾸려가고 있지만,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추어탕’과 ‘첫 남자 친구’는 나에게만큼은 겹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뭐, 그때 그 시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고, 추어탕은 여전히 맛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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