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 여행기
3년간 풀타임으로 근무했던 직장을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고 절반의 자유를 얻었다. 적성에 잘 맞지 않아 그만두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파트타임으로 전환을 해야 했다. 많이 배우고 성장한 직장이었지만, 제대로 된 첫 직장에 치일 대로 치여서 시간이 생기자마자 그 해에는 주구장창 여행을 떠났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날 작정이었지만, 함께 일하던 상사분의 간곡한 부탁으로 파트타임 형태로 근무를 해야 했기에 나의 꿈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무엇보다 일의 특성상 3년간 휴가를 내가 원할 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극성수기가 아닌 여유롭고 따뜻한 시기에 여행을 꼭 가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하기 가장 좋은 4월에 신중하게 여행지를 골라봤다. 마침 얼마 전에 친언니가 유럽에서 대학원 프로그램을 마치고 프랑스 남부 여행을 다녀와 강력 추천을 했던 터라 남들 다 가는 유명한 여행지보다는 낯선 곳의 여행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별 고민 없이 프랑스 남부 여행을 선택했다. 유럽의 남부(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대부분 따뜻한 날씨로 휴양지로도 유명하기에 유럽인들도 긴 휴가를 보내러 떠나기도 하는 곳이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 이미 매혹되었었기 때문에 프랑스 남부 여행은 충분히 값진 여행이 될 것이라 믿고 여행 일정을 짜보았다. 나는 계획하는 것이 원체 어려운 파워 P 성향(*MBTI)이라 어느 도시에서 얼마나 여행을 하고 어떤 곳에 묵어야 할지 정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즉흥적인 여행에 늘 재미와 도움을 주던 유럽의 한인 민박이 당시 프랑스 남부 지역에는 거의 없었다. 그러기에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호스텔과 지칠 때쯤 혼자 묵을 숙소로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선택해 열심히 계획을 짰다.
여행을 떠나기 바로 며칠 전, 파리에서 큰 폭발 테러 사건이 있었다. 파리로 도착해 기차로 이동할 계획이었던 나는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머리 아프게 고민해 봤지만 사고가 난 직후니까 오히려 더 안전할 거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조금 무서운 상태로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다행히 여행 중이나 후에도 위험한 일은 전혀 없었다. 나의 여행 거점은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였다.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매번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프랑스 남부 소도시의 매력도 구석구석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마르세유에서 장박을 하면서 당일치기로 주변의 소도시들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처음 도착한 활기가 넘치는 마르세유에서는 테러의 여파로 거대한 총을 무장한 군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총구가 나를 향할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바짝 긴장한 채로 군인들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프랑스의 여행이 설레고 기대됐던 것은 프랑스는 무려 세계가 인정하는 미식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아침, 그 흔한 맥도날드에서 먹었던 크루아상과 블랙커피로도 꽤 만족스러웠고(프랑스의 맥도날드에는 크루아상이 있는데 르꼬르동 블루의 크루아상과 견줄 만큼 정말 맛이 좋았다), 어느 식당에 가서 먹어도 프랑스의 음식은 크게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을 가서는 반드시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여행 중에 자의로 한식당에 가는 일은 없었다. 평소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여행지에서 먹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해 현지 음식만 고집하던 나만의 원칙을 강경하게 지킬 때였고, 혼자 다니는데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아서 동행을 구해본 적도 없었다. 한인 민박에서 묵을 때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사귀어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고, 여행지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느낄 새도 없이 돌아다니고 먹고 마시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전의 여행들과 조금 달랐다. 혼자서 열흘 남짓 계획한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하는데, 어딜 가도 한국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파리만 하더라도 길을 걷다 보면 한국말이 여기저기에 들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프랑스 남부에서는 길에 다니는 동양인조차 거의 없었다. 사실 영어만 통하면 한국 사람이 없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프랑스 남부 사람들은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 파리에서는 영어를 알아들으면서 못하는 척하는 얌체 같은 파리지앵&파리지엔느들과는 친절한 응대는 아니어도 영어로 거의 대부분의 소통은 가능했는데 프랑스 남부에서는 정말 큰 기념품 가게 외에는 식당에서도 영어로 된 메뉴만 던져줄 뿐 누구와도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아도 여행은 계속된다. 인간은 위기의 상황에 손짓, 발짓, 소리를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소통하게 되어있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결과이다. 그리고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도 생각보다 매우 많다는 걸 여행을 하면 할수록 느낀다.
그래도 영어가 통하는 호스텔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밤에 펍(Pub) 투어를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벌써 30대에 접어들고 직장 생활에 찌들어 비축한 체력을 모두 소진해버린 나는 그들 사이에 끼기도 조금 쑥스럽고 피곤해서 숙소에서 만난 유럽의 30대의 비슷한 또래 친구들과 간단한 대화를 하고 일찍 불을 끄고 취침을 했다. 국적을 초월하는 나이의 연대를 경험했다. 며칠간의 호스텔 숙박 후 혼자 쉴 재량으로 인테리어가 쏙 맘에 드는 파리 감성의 에어비앤비 스튜디오 독채를 예약했다. 장기 여행을 하면 모든 기간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중간에 좋은 숙소를 예약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그 대신 호텔보다도 조금 저렴한 프랑스인이 직접 꾸민 에어비앤비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매우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는데,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언제나 돌발 상황의 연속이다.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마르세유의 바다가 보이는 2층 커피숍에서 집주인 아저씨를 만나 열쇠를 받고 숙소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기로 약속을 했었다. 짐을 먼저 숙소에 넣어놓고 가까운 소도시에 다녀올 계획이어서 아침 일찍 아저씨를 만나고 이동하려고 했는데, 전날까지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즉각 답을 하던 아저씨는 만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미리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도 걸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벌써 마르세유에서 며칠을 묵었지만 여전히 총을 무장한 군인들은 돌아다니고 있었고, 혼자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눈에 띄는 동양 여자 사람이어서 그런지 자꾸 같이 밥 먹자거나 어디서 왔냐면서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에서는 길에서 여자인 사람에게 불쑥 말을 걸고 친한척하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자주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르세유는 항구도시여서 아프리카나 다른 지역에서 밀항으로 넘어오는 불법 체류자도 많은 지역이었고, 사람들의 모습이나 말투도 파리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항구도시만의 거친 느낌이 있는 곳이었다. 혼자만의 로망 넘치는 여행이 되어야 했지만, 며칠간의 호스텔 숙박으로 피곤하기도 했고 몸 컨디션도 썩 좋지가 않아서 빨리 하루의 일과를 소화하고 독채에서 조용히 둥지를 틀고 싶었는데, 만나기로 한 아저씨는 한 시간째 오지도 않고, 연락이 두절되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커피숍 주인의 눈치만 보며 다 마신 커피 잔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새로운 숙소를 찾아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서려던 찰나에 에어비앤비 사진으로 보던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가 곱슬거리는 마누(Manu) 아저씨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처음 보는 아저씨인데도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아저씨는 프랑스식 볼 뽀뽀, 비즈(La bise)로 인사를 해주었다. 아저씨는 집에 밤새 전기가 나가서 핸드폰 충전도 되지 않고 방전되어서 알람 소리를 못 들어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하며 마실 것도 한 잔 더 사주셨다. 다행히 잘 곳 없는 국제 미아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어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인테리어가 예뻤던 집을 실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집은 사진으로 본 것 이상으로 너무 예쁜 방 하나와 거실로 연결되어 있는 꽤 큰 스튜디오 형태의 방이었고 만족스러운 위치와 인테리어였다. 아저씨와 잠시 연락 두절되었던 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마누 아저씨와 문자로 영어로 대화할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직접 말로 소통을 하려니 영어식 발음이 아닌 불어식 발음이 꽤 많아서 간단한 대화도 참으로 오래 걸렸다. 내가 혼자서 남부의 소도시들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니, 아저씨는 눈이 동그래져서 어떻게 프랑스어를 모르는데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하냐며 신기해했고, 나는 다음에 올 때는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운율이 있는 언어, 불어를 꼭 배워서 오리라 아저씨와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는 먹을 것이 참 많았지만, 프랑스 남부에서는 부야베스라고 하는 생선 수프를 꼭 먹어봐야 한다는 글이 여행 정보를 찾을 때 종종 눈에 띄었다. 부야베스는 똠얌꿍과 함께 3대 수프에 들어가며 한국인의 입맛에도 꽤 맞아서 괜찮았다는 후기도 많았다. 마르세유 바닷가에는 바다를 보고 앉는 노천식당 테이블이 빽빽하게 길가까지 나와 있었고, 프랑스 요리를 파는 많은 식당에서 부야베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서 주로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한 끼에 한 가지 메뉴밖에 고르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쉬웠지만, 부야베스는 가격이 좀 있는 데다 1인분만 팔지 않았지만 꼭 먹어봐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바다 앞 노천 식당에서 부야베스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시켜서 먹었다. 하도 칭찬이 자자했던 요리였던지라 기대를 꽤 많이 했는데, 음... 부야베스는 익숙한 생선 수프라고 해야 할까, 토마토가 들어간 매운탕 같다고 해야 할까, 쌀쌀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속을 데우기에 뜨끈하니 맛은 괜찮았다. 그런데 3대 수프에 똠얌꿍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맛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부야베스 전문점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의 안락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숙소는 마르세유 도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도 좋고 걸어서 식당이나 가게들이 주변에 즐비했기에 꽤 마음에 들었는데, 밤이 되어도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오래된 유럽식 건물이다 보니 창문이 이중창 일리 없었고, 만화영화에서나 낭만적으로 보이는 밖으로 열리는 공주님 창문 같은 것이 실제로는 비가 와도 다 막아주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허술했다. 평소에 호스텔 다인 실을 이용해도 많이 예민한 편이 아니었는데, 시차 적응과 며칠간의 여행으로 누적된 피로, 매일의 소도시 방문으로 장시간 기차 이동시간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밤새 오토바이 엔진이 털털털, 부릉부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정말 밤에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곳에서 몇 박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고 아직도 며칠이나 남은 여행이 다 망쳐진 것 같은 기분에 너무 화가 났다. 무엇보다 잠을 잘 못 잔 상태에서 하루 종일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숙소 1층에 있는 음식점에서 기름 냄새가 계속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다. 혼자 여행의 로망보다는 혼자 여행의 단점과 방음이 취약한 유럽의 고풍스러운 오래된 건물이 너무 괘씸했다. 이튿날 여행에 지치고 불면에 피곤해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혼자만의 힐링이 필요했는데, 아니 도대체 한국 음식이 너무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어릴 때 흥미롭게 읽었던 한비야 님의 책에서 오지 여행 중 몸이 아플 때 신라면 한 그릇을 먹었더니 싹 낳았다는 글귀도 떠올랐다.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코빼기도 보지 못해서 그런 건지, 몸이 피곤하고 예민해져서 그런 건지 여행하면서 처음 느껴본 그리운 맛이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호스텔에서 잠깐 같이 만나 돌아다닌 독일 친구 빼고는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고, 여행이 꽤나 외롭고 지루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하지만 한인 민박집도 없는 프랑스 남부에 한국 식당이 있을 리도 없었고, 있다고 해도 여행 방랑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호스텔 근처에서 봤던 베트남 식당이 있어서 쌀국수에 고수나 팍팍 추가해서 먹으면 나의 헛헛함이 좀 해결될까 싶어 심각하게 고민해 봤지만, 이미 그 지역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숙소와 가까운 큰 쇼핑몰에 희망을 걸고 무작정 가보았다.
쇼핑몰에는 일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 부근의 직장인들이 정장 차림으로 혼밥을 하고 있기도 하고 깔끔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여행에서 한식이 고파서 고른 첫 번째 메뉴는 치라시즈시. 치라시는 ‘흩뿌리다’는 뜻으로 다양한 생선과 달걀부침, 채소가 고명으로 밥 위에 뿌려져 있는 형태의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왜인지 치라시즈시는 보기 힘든 메뉴지만 외국에서는 종종 보여 즐겨 먹었었고, 일본에서는 1인 메뉴로 흔하게 먹기도 하고 다 같이 나누어 먹기도 하는 메뉴이다. 나는 워낙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마르세유가 바닷가라 그런지 회가 싱싱한 것이 꽤 괜찮아서 정말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되었다. 회를 한 점 집어서 먹는데, 쌀밥 때문인지 웃기게도 고향의 맛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쌀의 원산지도 생선회도 우리 땅에서 왔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원래 일본 음식을 좋아하기야 했지만, 프랑스에서 일본 음식을 먹으며 감격할 일인가 싶다가도 너무 맛있어서 프랑스에서 최고로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었다. 흰쌀밥과 신선한 해산물로 든든하게 속을 채워서인지, 귀마개와 마음의 준비를 함께 한 채로 보내 숙소에서의 두 번째 밤은 그래도 첫날보다는 견딜 만했다.
이후 고흐의 도시 아를, 아비뇽 다리, 골목이 아름다웠던 생 폴 드 방스, 바다만 바라봐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니스를 구석구석 구경하고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었다. 미술을 사랑하는 나는 고흐가 밤의 카페테라스를 화폭에 옮긴 자리에도 가서 고흐의 시선을 흠뻑 느껴보기도 하고, 햇빛이 유난히 잘 들었던 샤갈의 무덤 앞에 한참 서 있어 보기도 하고, 숲이 아늑하게 감싼 세잔의 아틀리에도 가보았다. 니스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동행이라는 것을 구해 여행 중인 대학생 친구와 한 끼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였는데, 낯을 가리고 반내향 반외향형인 나는 소개팅을 하는 것 같은 긴장감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만났다. (나에게 소개팅은 언제나 설렘보다는 긴장의 연속이다) 톡으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서로의 취향을 고려하면서도 한 끼 식사를 망치지 않을 우리의 접선지는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나한테는 프랑스 미식을 경험하는 것보다 한국말로 떠들 사람이 고팠기 때문에 피자만큼 안전한 선택이 없었던 것이다. 서로 니스 바닷가의 아름다움에 반했다며 혼자 여행 중에 찍기 어려운 사진을 서로 찍어주자고 신이 나 실컷 떠들며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막상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어두워져서 서로의 카메라에 남은 건 초점을 잃어 흔들리는 얼굴과 어두워져 형체를 잃은 니스의 바다 배경뿐이었다.
낭만을 기대하며 혼자 떠난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하면서 치라시즈지 인해 나의 여행 미식 부심은 깨졌고, 혼자만의 여행이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다. 짧지 않은 일정 중에 예상치 못한 난관과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고단함이 있긴 했지만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 아닐까. 어느 때보다 많은 미술관에 가보고 세기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그들의 시대에서 그들의 시선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여행 하루하루가 소중해 그때 가보지 못했던 프랑스의 다른 소도시들도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대하며 설렘을 느꼈다. 마누 아저씨와 이야기하다 무심코 한 약속, 꼭 프랑스어를 배워서 다시 오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밤새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나의 단잠을 괴롭혔던 마르세유의 숙소는 완전히 잊을 만큼 그렇게 프랑스 남부는 찬란하게 아름답고 빛이 났다.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프랑스의 남부를 사랑하고 향유하였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