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때는 ‘조, 한, 유’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연결하면 예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성씨와는 관계없이 남자를 만나왔지만, 남자를 만날 때마다 혼자 김칫국을 진하게 마시면서 남자의 성에 붙일 예쁜 이름들을 짓곤 했었다. 의도하지 않았건만 희한하게도 나는 청주한씨 집안의 자손과 결혼 했고, 딩크족을 선언하면서 아이 이름 짓기는 동생의 남편 성인 ‘황’씨로 이어졌다. 나는 동생의 첫 딸이 태어나고 조카 이름 짓기에 열을 올렸으나 채택되지는 않았다.(둘째를 노리고 있다.)
내가 이렇게 이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이냐? 알게 모르게 그 ‘이름값’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덩치가 크면 덩칫값을,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하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하물며 인터넷 게시판에서조차 소위 ‘닉값 한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 모든 ‘값’들은 죄다 타인의 기대가 붙인 값이다. 겉만 보고 붙인 값. 존재에 대한 통찰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시도 되지 않은 오지랖이다. 나는 그런 식의 오지랖을 굉장히 싫어한다.
하지만 ‘이름값’은 다르다. 이름값은 삶의 출발에 붙여 주는 기원, 기대, 바람, 사랑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이름’에 관심이 많다. 어릴 적 읽은 동화에서도 신데렐라는 ‘재투성이 아이’, 백설 공주는 ‘눈처럼 흰 피부의 아이’, 위인전에서도 주몽은 ‘활 잘 쏘는 아이’, 혁거세는 ‘세상을 밝힐 아이’ 라는 이름풀이가 나왔다. 책 속 인물들은 죄다 ‘이름값’을 하더란 말이다.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은가? 나의 이름값은 무엇인지. 내 소중한 이의 이름값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물어본다. 당신의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냐고. 한자의 풀이도 좋고, 단어의 의미도 좋다고. 그 사람에게 이름 붙여 준 가족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귀하게 봐주고 예쁘게 기대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의 뜻을 내게 말한 사람이,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그 이름처럼 자신의 ‘이름값’을 되새기면서 자신을 소중히 여겼으면 해서이다.
그러나 ‘이름값’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내가 살고픈 삶이 아닌 이름을 받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딸이 되라고 ‘막순이, 끝순이’로 이름 붙여지거나, 남동생을 보게 해달라고 사내의 이름을 받은 딸들이 있었다. 이름값은 시대에 따라 삶을 테두리에 가두기도 한다. 순하고 조용한 여인이 미덕이던 시절, 정숙할 숙(淑), 순할 순(順) 등으로 끝맺는 여자 이름이 많았다. 기대와 바람이 부담이 되는 이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그만큼 이름은 우리의 삶에 중요하다는 것. 주변의 기대, 사회적 관습, 심지어는 사주팔자까지 연결되어(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 내 이름은 흔한 이름 ‘미정’.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름값은 아주 귀하다. 뜻을 풀면 빛이 곱고 예쁘다는 뜻의 미(媄)에, 비단에 그린 그림, 그림의 틀이라는 뜻의 정(幀)을 쓴다. 합하면 ‘곱고 예쁜 액자’라는 뜻이다. 어릴 적 이름의 의미를 물어보는 내게 엄마는 ‘안에 담긴 그림을 돋보이게 해주는 액자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쓰임 있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다. 내가 소중하고 귀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 큰 미정 작은 미정 심지어 중간 미정까지 학교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난 ‘흔한’ 내 이름이 소중하고 좋았다. 곱고 예쁜 액자처럼 누군가의 인생 그림을 소중히 담아주고 싶었다.
어른이 된 나는 신기하게도 내 ‘이름값’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르친다기보다는 배운다는 말이 좋겠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매일 자라는 나를 만나고 있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늘 나는 내 ‘이름값’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의 삶이 나와 맞닿는 그 순간을 그림처럼 바라본다. 아이의 보석 같은 가능성이 잘 보이도록 내 액자에 담아 소중히 걸어둔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낙서처럼 보이는 아이의 그림도 나라는 액자에 담아 그것이 작품임을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운 액자’를 낳은, ‘귀하고 정숙한 사람’.
내 곁의 청주 한씨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
내 동생 ‘서울 남자’ 와 그의 짝 ‘황제’ 그리고 둘의 딸 ‘바른 아이’.
나의 소중한 벗들 ‘빼어난 보배’, ‘아름다운 은혜’
‘별이 떠 있을 때 태어난 아이’, ‘은은한 보배’…….
내 주변 모두의 이름값이 내게는 소중하다. 그렇다고 그 이름의 뜻에 맞게 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없이 작게 쪼그라드는 날, 내가 값어치 없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다면, 자신에게는 큰 재산인 ‘이름값’이 있다는 것을 든든히 여길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이름값’ 하는 길은 바로 자신을 귀한 사람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이름값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당신은 자신의 ‘이름값’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