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엔 Nov 13. 2020

엄마와 작곡가 그 사이,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 음악을 하고 싶어서, 큰 포부를 갖고 직장도 그만둔 게 벌써 10년 정도 됐다. 하지만 난 그 사이 아직까지도 완전한 작곡가는 되지 못했다. 무명 가수에게 곡을 주기도 했고, 나름 소소한 음악 작업도 했지만 수록곡이라도 되길 염원했던 유명한 가수 앨범에는 후보곡까지만 올라가고 실패하길 계속.. 잘 풀렸다 라고 할 수는 없을 딱 그 정도..


지난 10년은 거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시간이었다. 10년 사이에 완전한 작곡가는 되지 못했지만 '엄마'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직업이 생겼으니까. 나 자신 하나도 스스로 어떻게 할 줄 모르던 내가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대견한 일을 해낸 건 사실이다. 부족한 한 인간을 '엄마'로 만들어준 우리 아이들에게도 정말 고맙다.


하지만 첫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되어 갈수록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내 꿈도, '나'라는 사람도 온데간데 사라졌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나의 모든 것", "나의 분신"이라고 하는데, 내 마음은 도저히 그렇게 되질 않았다. 아이가 나의 삶의 커다란 부분이긴 하지만 내 자신과 동일시는 안 되었다. 모성애가 부족한 인간인 것 같아 무척 괴로웠다. 괴로우면서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날 대신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이는 아이고, 엄마는 엄마이고, 난 곡을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러던 중 첫째가 돌 때 쯤,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슈퍼스타K'가 돌풍을 일으키던 때였는데, 슈퍼스타K 우승자에게 곡을 줄 수 있는 작곡가를 뽑는 오디션 프로가 기획 중이라는 것. 슈퍼스타K의 세컨 프로였던 거다. 아이 키우느라 곡 작업은 커녕 잠도 못자던 시절이었는데, 설마 되겠나 하고 아이 낳기 전에 썼던 곡을 냈다가 덜컥 붙어버린 것이다. 아이와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던 나는 그 방송을 위해 집도 아이도 내팽겨쳤다. 그 기간이 거의 2개월 정도였는데, 아이 아빠와 친정엄마, 시댁식구들이 돌아가며 아이를 봐주었지만 내가 촬영나간 날엔 돌쟁이 우리 딸은 잠도 못 자고 울었다고 한다. 엄마 찾느라..


사실 나도 우리 딸 생각에 방송이 너무나 힘들었다. 촬영만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미션곡을 써야했는데 곡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애 키우느라 곡 작업을 너무 오랫동안 손놓아서 감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딸 생각에 늘 마음이 불안하고, 중도 하차하고 그냥 집에 가고 싶기만 했다.


우리 딸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난 이 부분이 가장 후회된다. 기왕 마음 먹고 덤벼든 일이니 악착같이 해냈어야 했는데 방송 중간쯤 거의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본선에 올라간 작곡가들 중 매회 3팀씩 떨어뜨리는 경선이었는데, 경쟁자들이 다 이미 가요계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 쟁쟁한 작곡가들이었다. 난 내가 떨어질 날만 기다렸다. 내 곡이 너무 후진 것 같아 자신이 없었고, 우는 아이 돌보며 밤새 곡 쓰는 것도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 운이 좋게도 TOP7까지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떨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너무 좋아 뛰어왔더랬다.


작곡가 오디션 방송 출연 당시

아..왜 그랬는지.. 그 때 내 멘토가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정말 유명한 프로듀서였는데, 멘토의 전화도 받지 않고, 함께 방송했던 작곡가들과도 단절..그대로 잠수타고 아무 일도 없던 듯 아이 키우며, 또 둘째를 낳고 키우며 수 년을 보냈다.


이제 돌아보니.. 그 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밖에 못했나 자책도 든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든 달려들었을텐데. 10년이나 늦었지만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 때보다 나이도 많이 먹고, 영한 감각도 사라졌겠지만 내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말이다.


여전히 곡쓰는 것은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이다. 아이들 키우며 곡을 써야 해서 물리적인 시간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곡쓰지 못한 것만큼 정말 좋은 곡을 만들고 싶어서 쉽게 쉽게 써지질 않는다.

세계적인 영화음악 감독인 히사이시 조도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도퇴될까 두려워만 하지 않고 "계속 곡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에 비하면 작곡가로서 난 정말 미약한 존재이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계속 곡을 써"야겠다. 10곡을 쓴다고 10곡이 모두 좋을 수 없겠지만 100곡 중 1곡이라도 좋은 곡이 나온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100곡을 써야하는 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갖고 있던 죄책감도 거둬들이려 한다. 엄마는 엄마의 삶과 꿈이 있고, 아이들은 내 분신이 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그 자체의 존재이지 '내'가 아니니까. 그저 아이들에게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고,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를 큰 기회를 한 번 놓쳤고, 지금도 곡쓰는 게 두렵고, 난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이유들이 내가 좋은 작곡가가 되지 못할 이유는 아니기를..




작가의 이전글 남산타워에는 전 남친이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