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낯설다고 불린 길 위에서, 끝내 놓지 않는 고집

by MJ

나는 어릴 적 규칙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숙제를 하고, 시험을 망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친구들과 크게 다투지도 않았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늘 무난하게, “얌전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머릿속에는 늘 작고 끈질긴 의문이 따라붙었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도 “이 방식 말고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고, 과학 수업을 들을 때도 “선생님이 말하는 게 전부일까?”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겉으로는 순응했지만 속으론 늘 멈칫거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 멈칫거림이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데려온 게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규칙을 따르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늘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라는 목소리를 놓지 않았으니까. 그 목소리는 자꾸만 기존의 답을 의심하게 했고, 그래서 지금도 나는 누가 “이게 진리다”라고 말하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런 태도를 고집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고집이 나를 지탱해왔다고 느낀다.


새로운 생각을 꺼내면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둘이다. “이건 흥미롭다”라며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과, “이건 그냥 공상일 뿐이야”라고 미소 짓는 사람. 이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예전엔 이게 두려웠다. 나 혼자만 엉뚱한 길을 가는 건 아닐까? 남들이 다 외면하는 길이라면, 내가 틀린 건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졌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얘기라면, 그건 이미 오래된 길일 가능성이 크다. 낯설기 때문에, 거부감이 따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가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내 하루는 특별하지 않다. 아침에 대충 눈을 뜨고, 부엌에서 커피를 내린다. 컵을 식탁 위에 놓고, 책상으로 향한다. 책상은 늘 어수선하다. 전날 계산하다 남긴 메모, 구겨진 종이, 반쯤 마신 커피잔이 그대로 놓여 있다. 책상 위에 켜둔 스탠드는 형광등보다 따뜻한 빛을 주는데, 그 불빛 아래에서 나는 멍하니 창밖을 보기도 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게으르고 산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순간 속에서 머릿속은 가장 멀리 달린다. 눈앞의 풍경은 변하지 않아도, 생각은 빛보다 빨리 퍼져 나간다. 나는 그 불균형이 좋다. 생활은 허술한데, 상상은 웅장한 것.


이런 글을 쓰거나 계산을 하다 보면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우스워진다. 구겨진 셔츠, 정리하지 못한 머리, 산만한 방. 대단한 발견을 한다고 해도 결국 이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나. 그 모습이 어쩌면 더 솔직한 내 모습 같다. 완벽하게 정리된 삶이 아니라, 허술하고 때론 흔들리는 생활 속에서 오히려 큰 상상을 붙잡고 있는 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것 같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느껴서일지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은 처음엔 비웃음을 산다. “이건 그냥 장난이지.” “검증도 안 된 얘기잖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증거가 쌓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이 과정을 여러 번 지켜봤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거부당하더라도 언젠가는 길이 열릴 거라고 믿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그날이 올 때까지 질문을 놓지 않는 것.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너무 외로운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다들 분주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데, 나만 옆길로 빠져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새로운 길이라는 건 늘 이런 모습으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따라오는 길은 이미 낡은 길일 수 있다. 누군가 먼저 조용히 걸어야 새로운 발자국이 찍히는 거니까. 그래서 외롭다는 감정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풍경들이 내 생각을 지탱해주는 경우도 있다. 커피를 내리다가 흘린 자국, 창문에 쌓인 먼지, 방 한쪽 구석에 던져둔 빨래. 전혀 대단하지 않은 장면들인데, 이상하게 이런 사소함 속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삶이 완벽하게 단정하다면, 아마 이런 낯선 질문들을 오래 붙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허술함은 어쩌면 질문을 위한 공간을 남겨주는 장치 같다. 틈이 있어야 호기심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비웃으면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곧 그 비웃음이 나를 다시 자리로 불러낸다. ‘아, 내가 아직 낯선 길 위에 있구나.’ 누군가 비웃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게 이미 오래된 얘기였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의심과 거부감이 따라붙는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불편한 동시에 묘한 위로가 된다.


삶의 다른 부분은 여전히 서툴다. 계산 몇 줄에 몰두하다가도 금세 현실적인 고민이 고개를 든다. 식비, 공과금, 인간관계. 대단한 상상을 굴리는 순간에도, 똑같이 전기세 걱정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럴 때면 천재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 별다른 경계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결국 일상에서 흔들리고, 서툴고, 불안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나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나는 종종 미래를 상상한다. 언젠가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질문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누군가는 “이건 허황된 소리였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는 “이건 우리가 기다리던 생각일지도 몰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구겨진 셔츠 소매를 펴지도 못한 채 웃고 있겠지.


결국 중요한 건 태도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내가 붙잡은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답이 늦게 오더라도, 주변에서 비웃어도, 계속 붙잡고 있는 태도 말이다. 사실 나는 수학이나 과학의 공식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배우고 싶은 건 그런 태도다. 익숙한 길을 따라가지 않는 고집,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는 고집, 그리고 혼자서라도 버티는 고집.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노트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계산 흔적이 남아 있고, 책상 위에는 마시다 만 커피잔이 있다. 방은 조금 어수선하고, 머리도 제멋대로지만 괜찮다. 이런 모습 속에서 오히려 가장 큰 질문이 자라난다. 계산이 아직 맞지 않아도, 증거가 아직 부족해도, 나는 다시 노트를 펼친다. 언젠가는 이 의심들이 스스로 답을 내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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