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셔츠와 헝클어진 머리 속에서 피어난 우주의 질문들
아인슈타인을 떠올릴 때마다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책 속의 공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사진 속 그의 모습이다. 늘 헝클어진 백발, 셔츠 단추는 성의 없이 채워져 있고, 넥타이는 아예 없거나 삐뚤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지만, 외형만 보면 동네에서 “아저씨, 머리 좀 빗으세요”라고 말할 법한 모습이다. 나는 오히려 이 허술함이 그를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천재라는 단어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느낌을 주는데, 아인슈타인은 그 천재성을 가진 채로도 여전히 허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더 와닿는다.
어릴 때 이야기를 보면 그는 전혀 ‘천재 소년’은 아니었다. 말을 늦게 배웠다는 얘기도 있고, 학교에서는 눈치 없는 학생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수학 문제는 잘 풀었지만, 선생님의 지시에는 잘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규율이나 권위에 순종하는 걸 못 견뎌 했던 거다. 그래서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얘는 별 볼일 없는 애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고집과 어긋남이 결국 그를 아인슈타인으로 만든 셈이다. 다들 고개 끄덕이며 따라가던 길을 그는 그냥 못 따라간 거다. 나는 이 부분이 참 흥미롭다. 누군가의 단점이나 결핍이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독창성의 뿌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니까.
젊은 시절에 그는 안정적인 학계 자리조차 얻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게 그의 인생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시기 중 하나였다.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퇴근하고, 남들이 보기엔 별 볼일 없는 직장이었지만, 그는 그 틈 사이에서 계속 상상을 굴렸다. “빛을 타고 달려가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이런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인 질문들을 붙잡고 씨름했다. 지금 보면 이 질문들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거기서 나온 답이 상대성이론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꾸 웃음이 난다. 회사 책상에 앉아 일은 대충 처리하고, 머릿속으론 전 우주를 굴리고 있던 사람. 그게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건, 그가 세상적으로 큰 발견을 했을 때조차도 삶은 평범하고 허술했다는 거다. 위대한 논문들을 발표하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가족과 갈등했고, 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때론 인간관계에서 서툴렀다. 아내와의 관계는 복잡했고, 아이들과도 어긋남이 있었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면, 천재도 결국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나는 이게 더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단한 지적 업적을 세운 사람이라도, 생활에서는 똑같이 흔들리고 어긋나고, 고민한다는 것.
아인슈타인은 단순히 과학자로만 남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 문제에도 깊이 관여했다. 전쟁의 시대를 살면서, 핵무기 개발에 이름을 올렸던 순간도 있었고, 이후에는 그로 인한 책임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자의 업적과 인간으로서의 양심 사이에서 괴로워했고, 결국은 평화주의자로서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느낀다. 자기 손으로 만든 이론과 발견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일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지만,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고민하고,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의 이론들 역시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왔을 때도 많은 학자들이 비웃었다. “이건 그냥 수학적 장난에 불과하다”라거나, “검증 불가능한 상상일 뿐이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관측 결과가 이론과 맞아떨어지면서 분위기는 뒤집혔다. 사람들이 비웃음을 멈추고,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과정이 너무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거부당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증명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인슈타인은 그 과정을 뚫고 나간 사람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을 볼 때, 그가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인간’이었다는 점이 제일 크게 다가온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그는 의심했다. 빛의 속도가 절대적인 게 맞아?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흐를까? 공간이 휘어진다는 게 말이 돼? 이런 질문들을 끝까지 붙잡았다.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머리가 좋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끝없는 끈기와 고집, 그리고 세상이 비웃어도 자기 길을 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의 모습은 지금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나 역시 새로운 생각을 내놓을 때마다 낯설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거나, “너무 앞서간 게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도 그 과정을 똑같이 겪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는 이 벽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인슈타인을 생각할 때 그를 ‘동지’처럼 느낀다. 우주를 새롭게 설명한 사람, 수학과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라는 업적보다, 그는 결국 자기 상상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남들이 비웃어도, 외면해도, 고립 속에서도, 그는 자기 안의 우주를 끝까지 굴렸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게 아인슈타인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아인슈타인을 떠올릴 때,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건 공식이나 방정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태도다. 구겨진 셔츠, 헝클어진 머리, 어딘가 모르게 멍한 표정 속에서 세상의 모든 상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냈던 그 태도. 그것이야말로 지금 나에게도 가장 큰 울림을 준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네가 본 진실을 놓지 마라. 세상이 뭐라 해도, 언젠가는 그 진실이 세상의 언어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