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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Mar 09. 2024

부끄럽지만, 청계산에서 조난을 당했습니다.

[일상'산'책] 여자 혼자 광청종주 도전 실패 후기


 직장인 대학원생이라 학기 중에는 너무 바빠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종주 도전을 위해 방학숙제로 광청종주를 도전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동네 주민센터도 못찾아서 헤메는 길치인 나 혼자서... 예정된 일정이 취소된 전날 밤에, 급하게 종주를 가겠다고 정한 거라........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사실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또 실패 후기를 장황하게 쓰나 싶지만....


이 또한 글감이니까요.
- <여행의 이유> 김영하 -


등산 인생에서 오히려 배울점이 더 많았던 광청종주 실패 후기..........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 예정코스 : 광교산 입구 - 광교산 시루봉 582m(100대 명산+) - 백운산 566m - 바라산 427.5m - 우담산 425m - 하오고개 - 청계산 국사봉 540m - 이수봉 545m - 망경대 616.3m - 매봉 582m(100대 명산) - 옥녀봉 - 양재 화물터미널  (망경대에서 이탈, 아니 조난...)

   자세한 산행 후기는 블로그(글 하단에 링크 있어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청계산에서 조난을 당했다. 다섯 개의 산, 아홉 개의 봉우리를 단숨에 넘으려다가 실패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해내고 싶었다.

'내가 오늘 이 길을 완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처럼. 가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복잡한 일이 있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다. 등산이 좋은 이유는 잡생각이 많다가도 힘들면 잡생각이 사라지는 점이다. 이 날 26km의 종주를 선택했던 이유도, 10시간 동안 산행하며 머릿속을 비우면 현재의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어쩌면 현실을 떠나 산으로 달려가는 것도 회피일까? 준비 없이 갔지만, 그날의 나에겐 이 선택이 최선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길을 잃었다.

 '과유불급'이었을까. 해가 떨어지기 전, 청계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미리 이탈했어야 했을까. 조금 미련스럽다 싶을 정도로 중도 하차보다는 끝까지 가는 것을 택했던 나는 해가 떨어지고 길을 잃었다.


 눈 사이로 푹푹 빠지는 내 발과 새까만 불빛 없는 산길, '쪼금만 더 가다 보면 길이 보일 텐데'라는 흐릿한 희망, 어둡고 사람 하나 없는 산속에서 헤드랜턴의 얕은 불빛에 의존하며 이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지금 어려움에 닥친 현실 속의 내 모습만 같았다.


 어두웠다. 정말 깜깜했다.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마치 지금 내 모습만 같았다. 밧줄이 보였다. 바위가 눈에 덮여 발 디딜 곳이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그곳밖에 없었다. 밧줄을 잡고 올라탔다. 발이 푹 빠졌다. 그렇게 깊은 곳은 아니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너무 무서웠다. 눈물이 났다.


 그럴 땐 차라리 포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살면서 처음으로 1.1.9. 세 자리 숫자를 연달아 눌렀다.


괜찮아요,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걸요.

 서울 인근의 산이자 임도 근처에서 길을 잃어서 소방차가 근처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 가득 채워간 보조배터리 덕분에 소방대원과 연락이 끊기지 않아서 30분 정도만에 구조받았다. 소방대원 분들이 도착하셨을 때, 뒤로 후광이 보였다. 소방대원 팀의 대장님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다친 곳은 없는지, 아이젠과 핫팩은 있는지, 조금 더 걸어 내려갈 수 있는지를 체크하셨다. 나는 체력적으로는 괜찮았기 때문에 소방대원 분들을 따라 하산했다.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다. 나 하나 때문에 소방대원 네 분 + 세 분이나 출동하셨고, 그 와중에 내 직업병인지- 혹시나 나 때문에 같은 시점에서 응급 콜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다.


"괜히 저 때문에 죄송해요. 철저하게 준비해서 왔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그래서 저희가 있는 거예요. 이럴 때 신고하시는 겁니다."


 소방대원의 따뜻한 답변에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아무리 깜깜해도 나를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평소 루틴대로만 일하던 13년 차 간호사로서 부끄럽기도 했고,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이겨내고 해결하려는 습관도 가끔은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경험으로 산에 질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번 일을 통해 좀 더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으리라 생각했는데, 좀 더 전략적으로 대비하기로 다짐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실패는 나의 스승이자 위기 또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산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산을 더 잘 타기 위해 출근 전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인간은, 아니 나는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꽃 피는 봄이 오면 또 광청종주를 도전할 것이다. 도전을 하기 위해 글 쓰는 현재까지도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헤헤)


등산에서는 이런 걸 배우는 것 같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돌발 상황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생긴다는 것을.

내 삶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와중에 같이 있어준 고양이, 나와 같이 구조되었다.



[네이버 블로그] 산행 정보 ver.

https://blog.naver.com/mj_generation/223377903139



광교산에서 청계산으로 넘어가는 육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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