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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3. 2022

망향; 망할, 망 향

<14> 2018. 8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들. 가장 쉽게는 당신과 찍은 사진에서부터 떠오르는 기억. 그렇게 시작된 기억은 리듬앤블루스를 거쳐, 파란 바다가 내던 윤슬, 가을 즈음 어스름이 알리는 냄새, 겨울에 나오는 귤 내음, 당신이 쓰던 향수. 그런 것들로 다시 부유하지. 내가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그 끝도 철저히 외로웠던 최후 기억까지.


당신이 뿌린 향수香水 그리고 내가 느낀 향수鄕愁 간의 우스운 동질감.

당신은 내게 고향과 같은 사람이었다. 망향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지독히도 원해서 보고 있어도 늘 그리웠던 사람. 그 감정은 수신되지 못했고, 그를 향한 마음은 휘저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와 나의 결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길로 나는 많이 방황했고 다시는 애초에 그런 감정 따위를 나누지 않았다. 내 잔잔함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를 옆에 두고 스스로를 휘젓을 용기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당신과의 기억에서 나는 내음들은 희미해졌고, 나는 당신과의 시간을 잊어버린 듯했지만, 어쩌면 여전히 그때 그 거칠게 일었던 모래와 자갈의 파도에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순전히 당신의 향수, 그것의 이름이 궁금하여 걷다가도 문득 그 향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그 향수의 이름이 뭐냐고, 들었는데 기억 못 하는 내가 야속해서.


망향望鄕: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망忘, 향香: 향수의 이름을 잊어버려 안타까운 마음


갈 곳 없는 그 망할 망향한 감정뿐이었다. 망향이 마침내 망할, 망, 향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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