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09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열 다섯째 날.

Belorado - San Juan de Ortega 23km. 산 후안 데 오르테가 San Juan de Ortega

오전 6시 기상. 오전 8시 출발.

어느 때보다도 일찍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선물할 만한 것을 찾느라 조용히 가방을 뒤적였다. 산티는 어제, 앞으로 계속 추워질 거라며 자신의 니트 모자와 장갑을 주었다. 산티와 산티아고 여행을 벌써 네 번이나 함께 한 친구들이라고 했다. 까미노의 아버지, 어머니라 생각하고 잘 따랐더니 예뻐해 주신 분들이라 헤어지는 마음이 더 안타깝다.

새벽녘에 혼자 침낭 안에서 벌써 한차례 눈물을 찍어내며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작은 카드 지갑을 비워서 아센에게 주며, 산티 내외의 집이 있는 마드리드의 집주소를 받아 적었다. 아구스틴에게는 산토도밍고에서 구입한 목걸이를 주려고 챙겼다.

아구스틴이 조용히 다가왔다. 자신의 두툼한 양말을 주면서 “따뜻할 거야.”라고 말했다. 이런… 정말 고마웠다. 아구스틴은 돌아 앉아 어제 세탁했던 자신의 빨래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내가 빨래를 갤 때처럼, 새 옷이 접혀 있는 방식대로 빨래를 개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친구 내가 좋아하는 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모든 짐을 챙기고 나와 보니, 판초 없이 얇은 우비를 입고 다니던 마리안에게 아구스틴이 자신의 판초를 입혀주고 있었다. 섬세한 사람. 그것을 보고 흐뭇해하면서 신발을 신고 가방을 둘러매는데, 그가 옆으로 와서는 내 가방에 무엇인가 꾹 눌러 넣어 주었다. 그의 스틱이었다. 나의 나무 지팡이를 보아 알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스틱을 이제는 내 것이라며 주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말없이 그저 가방에 끼워 넣어 주었다.

그래서 나도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는 선물을 끝내 받지 않았다. “내가 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의 것이야. 이것은 네 것이야. 난 그저 네 지도만 보내주면 돼. 지도 보면서 늘 네 생각할게. 마음만 받을게” 라며 말했다. 그라뇬 알베르게에 주고 온 세계지도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와 빵을 나누고 난 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산티가 볼에 키스를 하며 인사를 했다. 아센과, 아구스틴과 인사를 나누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고 멈추지 않았다. 아구스틴이 자기 고향에 꼭 오라 하기에 알겠다고 했더니 “언제?” 라며 쳐다보았다. 그래서 “곧 갈게”라고 하며 웃었다. 이별의 순간이라 어떻게 약속 날짜를 정확히 잡을 수도 없고 해서 다시 연락하겠다는 의미였는데 언제냐고 재차 물어서 당황스러웠다. 아구스틴은 내가 자신을 방문하러 올 때까지 의사소통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다. 꼭 오라며. 그리고는 그가 내 볼을 양손으로 쥐고는 무슨 말인가 계속했는데 꺼이꺼이 울어 대느라고 하나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리안이 출발하자고 재촉해서 가방을 찾아들고는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산티가 밖에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들어갔다.

앞서 가는 마리안 뒤에서 울면서 따라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서 스페인 여자 두 분의 뒤를 따르다가 그만 길을 잃게 되었다. 마리안은 당황하지 않고 안내책을 읽어가며 주변 지리를 확인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서 미안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돌아 나온 후에야 처음부터 입구를 잘 못 들어섰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이탈이 자꾸 생각나서 실실 웃어 댔다. 어쨌든 다시 길을 찾아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마리안이 휴대폰을 받더니 기뻐하면서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산티와 아센이 와 있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앞을 보니, 산티 내외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드리드로 가기 전에 친구들과 차 한 잔 마시려고 가는 길에, 우리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뛰어가서 품에 안겼다. 내외는 우리의 오늘 여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차로 약 1km 정도를 데려다주었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아쉬운 만큼 더 꼭 안아주고 헤어졌다.

돌아서서 오르는 길은 잠시 오르막이었다. 그리고 12km 정도 줄곧 긴 산책로였다. 날씨만 좋았다면 정말 아름다울 길이었다. 오늘 우리는 이 ‘길’에서 눈보라가 치고, 비가 내리고, 마지막에는 따스한 태양을 만났다. 너무너무 괴팍한 날씨였다. 아니 신비로운 날씨였다.

도착한 알베르게 오스피탈레로는 아주 젊은 스페인 청년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스페인 사람이 그저 반가웠나 보다. 오늘 알베르게에는 스페인 사람이 마리안뿐이었다. 모두들 외국인들이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다가도 외국인 나그네를 위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했다. 친절한 사람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이곳은 부엌이 없어서 바(Bar)에 가야 했다. 마리안은 옆 식탁에 앉은 프랑스 순례자가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를 못하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러더니 또 다른 식탁에 앉아있던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영국 아가씨를 불러서 통역을 부탁했다. 너무 친절하지 않은가. 천사였다.

저녁나절 자신타 일행이 등록했다. 자신타는 독일인 남자 두 분과 동행하고 있었다. 한 분이 나이가 많으시고 무릎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일행은 늘 그의 속도에 맞추어서 쉬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사람을 만났고,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그 관심과 사랑을 지속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김춘수 님의 ‘꽃’ 이란 시가 떠올랐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라는.

이 길을 걸으면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또 누군가가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흥분이었다. 그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길을 걷게도 하고 걷지 않게도 혹은 걷지 못하게도 하는 듯하다. 오늘 이 길을 멈추고 싶어졌다.


내일이면 마리안도 집으로 돌아간다. 마리안 마저 가고 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떠나갈 이들만큼 또 가깝게 지낼 친구들을 만나면 이들을 잊게 될까. 추억이 남아서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만나는 이들과 나누는 소중한 소재가 될 테지. 사랑하는 친구들. 스페인에 보물들을 갖게 되어 기쁘다. 성탄절에 아구스틴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11편/ 열여섯, 열일곱)

열여섯째 날.

San Juan de Ortega - Burgos 25km. 부르고스 Burgos

오전 6시 기상. 오전 8시 30분 출발.

어제 만난 영국인 아가씨에게는 일행이 세 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들이라고 한 것 같다. 아이가 두 명인 친구는 남편에게 육아를 부탁하고 오게 된 6일 동안의 특별휴가라고 했다.

기혼 여성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의 친구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가운데 특별 휴가를 내서 외국 여행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고, 용기가 예뻤고, 그녀들의 남편과 아이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나의 친구들과도 저런 기회가 오면 좋겠다.

그 일행 중 한 명이 빌바오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마리안이 동행을 원했다. 마리안은 이곳에서 여정을 마치고 빌바오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원래 그녀는 부르고스까지 걷겠다고 했는데 너무 아쉬웠다. 가방을 뒤져서 마리안에게 줄 한반도 책갈피를 찾았다. 마리안의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자신 타일행과 동행하여 걸었다. 다리가 불편하신 알프레드의 속도에 맞추어 걸었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걷기가 힘든 날이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심하게 때려서 마침내는 화가 날 지경이었고, 판초는 바람에 날려서 도로변의 차들에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난번 벨로라도 갈 때의 몇 배의 비바람이었다.

겨우겨우 부르고스에 도착했을 때는 퇴근 차량들이 차도에 늘어서 있었고, 시내에 사람도 많았다. 엄청 큰 도시여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라 순례자들을 보는 눈초리 또한 그리 곱지만은 않아 보였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지쳐 보이는 행색에다가 커다랗고 지저분한 배낭에 냄새도 날 테니 도시인들이 좋아할 턱이 없을 듯도 하다. 나는 후에 거리에서 여행자를 만나더라도 저런 눈으로 보지는 말아야지. 아니 따스한 눈으로 보고 도와줄 것이 없나 돌아봐 줄 테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힘겹게 도착한 알베르게는 다행히도 비로 인해 더욱 초라한 순례자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할 만큼 깨끗하고 따뜻했다. 침대를 골라 짐을 풀고 앉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가방이 보였다. 내 옆의 침대는 마이클, 아래 침대는 앤드류였다. 두 사람 모두 그랴뇬에서 함께 묵었던 사람들이다. 반가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빨래도 하고, 홀에 내려와서 컴퓨터에 앉았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청년이 쓰윽 지나갔다. 얼굴을 쳐다보고 생긋 웃으며 머리를 수그리면서 “한국인이시죠?” 했더니 “네~” 하는데, 진짜 진짜 반가웠다. 그러면서 “위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어요.” 하며 진한 부산 사투리로 말했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저녁 식사로 케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때 영어를 꽤 잘하는 청년 한 명이 내려와서 마이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 같아 보였지만, 물어보려 하니 왠지 쑥스러워서 주저하고 있는데 마이클이 다가왔다. 그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그 청년에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영훈 씨라고 했다. 영훈 씨는 붙임성 좋게 인사도 잘하고 초면인 나와 말도 잘 나누는 넉살 좋은 성격이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씨에, ‘나’를 어디에 두고 몸만 걷는 듯한 하루였다. 길을 접고 싶을 정도로 정신을 잃었다. 아니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 이유들이 떠 오르지 않을 만큼 마음을 잃은 것 같이 허전했다.

그러다 돌이켜 보니 천사들이 없었을 때에도, 나무와 동물과 풀과 바람과 태양과 하늘이 길동무가 되어 주어서 외롭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름다운 길동무들과 비를 맞으면서도 서로 기대며 걸을 수 있어 좋다. 아픈 친구와 함께 천천히 걷고, 바람 불면 잠시 쉬어가고, 그렇게 걸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걷는 내내 가장 많이 부른 노래이다.

알베르게에서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났다.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묶어 땋은 머리를 한 청년이다. 몸이 가볍고 날렵해 보이는 이 청년은 부엌 시설이 제대로 없는 이곳에서 전자레인지에 밥을 만들어서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재밌기도 하고 무튼 신기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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