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11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스무 번째 날.

Fromista or campos -Calzadilla de la Cueza 37km.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 Calzadilla de la Cueza

오전 8시 30분 출발.

어젯밤 알베르게에는 우리 둘 외에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들 다른 동네 알베르게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순례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다음 사람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이 배려하여 샤워실과 부엌을 사용한 후 처음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또 공공 청소 시간 때문에 방 비울 시간도 체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런데 우리 둘 뿐이고, 오스피탈레로도 늦게 오고 해서 여유롭게 정리하고 원하는 시간에 출발할 수 있어서 한결 좋았다.

오늘도 종일 노래하고 얘기하며 우리의 과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훈씨는 꿈이 많은 맏아들이었다. 그의 꿈꾸는 일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누면서 어느새 우리는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33km 정도를 계획하고 시작하기는 했지만, 길의 끝이 보이지 않자 정말 힘들었다. 계획은 그저 머릿속의 계획일 뿐 몸과 모든 상황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생리적 현상이 극에 달해서 화장실에 빨리 가고 싶었다. 어깨의 통증도 심해서 더 이상 걷기가 힘들었다.

가도 가도 들판이었다. 사방이 어둡고 가로등도 없는 길을 걷다가 문득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더 이상 노을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불 빛 앞에서 알베르게를 찾으려고 안내 책을 펼쳤는데, 불빛이 세어 나오는 그 집이 바로 알베르게였다. 끝날 것 같지 않게 길고 길었던 길 끝에 나타난 빛이 오늘 만나야 했던 숙소였다.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알베르게에는 그라뇬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바(Bar)에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모두들 선하고 기분 좋은 사람들이었다. 요리사가 직접 나와서 인사를 했는데, 한 친구가 감자칩이 맛있다고 하자, 주문하지 않았지만 서비스하겠다며 웨이터가 한 접시를 더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지배인과 웨이터가 번갈아 오면서, 이곳에서 다음 코스까지는 알베르게가 없으니 잘 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정보를 주기도 했다. 순례자에 대한 마음씀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모두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펼쳐 보이며 곧 다음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가거나 혹은 그 마을에서 호텔이나 호스텔을 이용할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 우리는 일단 가고 싶은 데까지 가 보고 그다음 행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영어의 틈바구니에서 영훈씨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레게머리 친구가 옆 침대에 짐을 풀었다. 그가 자꾸 기침을 했다. 가지고 있는 약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다고 해서 내 가방에 있던 감기약과 차를 나누어 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약까지 주는 것이 아닌데 싶은 생각에 약간 머뭇거렸지만, 그 친구가 기분 좋게 받아주어서 금방 잊었다.

알렉산드라는 그동안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길에서 모든 생각을 멈추고 그저 매일 자신에게 인사한다고 했다. “안녕..” 하고. 너무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자신에게 안녕하고 인사한다는 것. 지금 나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스무 하루 날.

Calzakilla de la Cueza - Sahagun 22km. 사하군 Sahagun

오전 8시 식사. 8시 25분 출발.

바(Bar)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비가 온 하늘은 안개가 자욱하고 앞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둑했지만,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 길 위로 올라섰다.

우리보다 앞서, 피오나와 지넷이 걷고 있었다. 지넷은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다리를 절룩이며 걷고 있었다. 영훈씨는 저렇게 아픈데도 걷고 있는 저 분보다 느리면 되겠냐며 나를 재촉했다. 아픈 다리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아니 빠르기까지 한 그녀는 정말 대단했다. 나중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늘 무척 힘들었다. 많이 지쳤다.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어깨가 아팠다.

나그네들이 어젯밤부터 걱정하던 그 사하군에 도착했는데 고맙게도 알베르게의 문이 열려 있었다. 짐을 풀고 씻은 후 바(Bar)에서 식사를 했다. 지금까지 먹어 본 메뉴에 비해 맛이 별로였다. 빠에야(해물볶음밥)가 오래된 밥을 그냥 데운 것 같이 말라 있었다. 피 같은 돈을 써 가며 식당에 왔는데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그렇지만 배가 고팠기에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저녁거리를 준비하려고 슈퍼마켓에 갔는데, 저만치에서 손을 흔드는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앤드류였다. 먼저 슈퍼로 향했는데, 4시 30분 이후에 문이 열린다고 씌어 있어서 다시 바(Bar)에 있는 앤드류에게 향했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개점 시간을 기다렸다. 앤드류는 근처의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차를 마시며, 지인들에게 엽서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노년의 여유가 참 부러웠다. 그는 사리아에 이르면 거기서 아내를 만나게 된다고 했다. 아름답고 멋진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노년에 각자 여행을 하던 중 타국에서 우연처럼 만나는 것 말이다. 알렉산드라가 바(Bar)에 들어왔다. 그녀도 호텔을 잡고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것이었다. 내일은 38km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내일도 모두가 편안한 알베르게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헤어졌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면서 마고와 루이스라는 아주 멋진 부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딸만 있는 집의 막내인 마고는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쁜 열 살 소녀였다. 마고는 이번이 세 번째 까미노 도전이라고 하는데, 내일 집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친구였다. 걷기를 또 이 길을 사랑하는 멋진 순례자였다. 낯선 외국인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미소를 보내주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버지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딸을 칭찬했다.

아버지는 식사를 준비하면서, 포도주병을 어떻게 따야 하는 것인지 병 따는 법을 딸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딸은 음식을 차리는 것과 치우는 것을 즐거이 함께 했다. 어린 딸을 이런 길에 데리고 오는 용기도 멋지고,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해 찾아온 딸도 귀하게 여겨졌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다.


스물두 번째 날.

Sahagun - Mansilla de las Mulas 38km. 만시야 데 라스 무라스 Mansilla de las Mulas

오전 7시 기상. 오전 8시 20분 출발.

38km 정도를 계획하고 빨리 출발하고자 했지만, 마고와 루이 부녀와 인사하고 사진을 찍느라고 조금 늦게 출발했다. 종일, 가방을 앞으로 메고 걸었다. 등이 아파서 도저히 가방을 등에 멜 수가 없었는데, 앞으로 들어 보라는 영훈씨의 조언이 효과가 있었다.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오후 7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오스피탈레라는 아마도 37km-40km는 걸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다리를 절룩거리자 “어디 아파? 물집? 배고파, 밥 줘? 개고기 먹어? 개고기 싫어.” 헉! 모두 한국어로 말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동그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이 젊은 오스피탈레라는 아버지와 함께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교성 많은 이 분은 거의 5개 국어의 흥미로운 단어들을 암기하고 있다가 적절히 사용하면서 순례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경쾌하고 신명 나는 사람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외국인에게 익숙한 고국의 언어를 듣는 맛이 꽤 재미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2층 침대가 있다면 아래 칸을 더 좋아한다. 하루 종일 걸어서 부은 다리로 침대 위를 오르내리는 것은 귀찮고 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오스피탈레라는 사무실 위에 있는 숙소에 아랫칸 침대에 사람이 많으니 1층 숙소를 사용하라면서 사무실 옆에 있는 방을 내어 주었다. 세심한 배려에 고마웠다.

폴란드인 순례자가 우리 방 룸메이트였다. 4년 동안 노래를 하면서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년에는 아프리카에 갈 것이라 한다. 기타, 탬버린, 하모니카 등을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영훈씨는 우리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얘기해 주었다며 함께 노래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서 신이 나 있었다.

어떤 이들이 도착해 있는지 궁금해서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죤 피에, 알렉산드라, 죠 가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파스타, 샐러드를 만들어 식사했다. 존 피에는 영훈씨를 참 좋아했다. 영훈씨는 그와 함께 걷다가 부르고스에서 나와 만난 뒤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칼사딜라 데 라 쿠에사에서 다시 만났고 오늘 또 만난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서로의 걸음을 궁금해하고 만날 때마다 무척이나 서로를 애틋하게 대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산티 생각이 난다. 산티는 내게 몇 배는 더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폴란드 청년과 흥겹게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어서 모두들 그의 노래를 듣기도 하고 함께 부르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스페인 분이 하모니카를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분의 하모니카 실력도 대단했다. 나는 그의 탬버린을 흔들며 그 자리에 동석했다.

흥겨운 시간이 더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오스피탈레라가 내 앞으로 와서는 한국 노래를 한 번 해보라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훈씨가 시킨 것이지 싶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기억나는 노래가 없다고 해놓고는 시간을 벌었다. 그런데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아침이슬'을 불렀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노래의 아름다운 코드 진행을 폴란드인 가수가 제대로 따라오지 못했다. 암하렛츠(감신대 기독 민중 노래패)의 기타리스트들이 그리웠다.

노래가 끝나자 거짓말쟁이라면서 크게 과찬을 해주며 호들갑이었다. 그래서 한 곡을 더 신청받았고, 신나는 곡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바위처럼’을 불렀다. 영훈씨가 아는 노래를 골라 함께 불렀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의 스타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모두가 원하는 노래를 해주는 저 폴란드 친구였다.

부러웠다. 나 또한 꼭 한 번 해 보고 싶은 여행이다. 이런 자리를 만나게 된다면 멋지게 노래해 보이리라 했었는데 드디어 만났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