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나를 부르다
일곱째 날.
Monreal - Puente la Reina 28km. 푸엔떼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아침이 되자, 다시 찾은 그 니트를 입어야 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옷이 내게로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더욱 추워질 것인데 두 겹을 입고 걷는 한이 있더라도 옷은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엉뚱한 것을 버릴 뻔했다. 마르코에게 감사할 일이다.
생리를 시작하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을 해서였나, 새벽에 시작하게 되었다. 7시가 되자 길버트 아저씨께서도 일어나셨다. 오늘 코스가 어떤지 아시는가 물어보았다.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곳곳에 교회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고 하셨다. 생리 첫날이기 때문에 화장실 이용에만 문제가 없다면 걸어 볼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숲 속 길은 계속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 동안 마음이 점차 굳어 가는 것 같았다. 몸을 위해, 오늘 하루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갈라진 땅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온다 해도 내겐 상관없었고, 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았지만, 갈라진 이 땅은 비가 필요해 보였다. 숨이 차도록 헐떡이며 갈 길만 보았다면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호흡에 맞추어 기도했다. ‘이 땅에 단비를 주십시오, 이 땅 단비, 이 땅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 땅 축복.’ 땅이 축복을 받으면 촉촉하고 메마르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그 위를 밟는 나도 평안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상, 나를 위한 기도였다.
그러다 이름 모를 동네에 도달했을 때쯤 화장실에 급하게 가고 싶어졌다. 동네 어귀에서 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화장실을 이용해도 될까요? 화장실이 어디 있나요?’ 라며 외쳐댔다. 그러자 알베르게로 가라고 알려 주셨다.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다시 힘을 내서 그분께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그가 직접 알베르게 열쇠를 찾아내시어 문을 열어주셨다. 시에스타 시간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밖에 있어준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참 예쁜 마을이었다. 집도 사람도.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을 지나고, 언덕을 올랐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가지런히 심겨진 과수가 눈앞에 가득했다. 아이고 이런. 누군가의 과수원 안으로 들어와 걷고 있었다. 두리번거려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과수원 언덕을 내려와 다시 길을 찾아 걸었다. 그때부터 빗방울이 스친 것 같다. 감사했다. 땅을 축복하면서 걸었더니 다음 마을에서 드디어 장대비를 만났다. 너무 큰 비였기 때문에 어느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과 나란히 서서 내리는 비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함 끝에 푸엔테 라 레이나를 물었더니 7km 정도 남았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떤 여인이 차를 몰고 와서 어르신을 모시고 가고자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길을 한 번 더 물으면서 걷는 길이 오르막길인지를 확인했다. 평탄한 길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자신 있게 빗속을 나섰다.
그런데 그 여인이 가던 차를 돌려서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차에 타라고 말이다. ‘이걸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감사합니다’ 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분은 알지 못할 곳으로 차를 몰고 가셨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았더니 에우나타라고 하는 곳이었다. 내가 걸었다면 볼 수 있었던 곳이었기에 그녀는 알려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말 친절한 분이셨다.
푸엔테 라 레이나가 가까워오자 비를 맞고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은 어디서부터 온 사람들이길래 저렇게 많을까. ‘순례자답게 저들의 틈에서 걸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미안했다. 한반도 책갈피를 건네며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너무 약소했지만 감사의 표시로 드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얼마나 무색하던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내게는 복이었으나 한편으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이곳은 솜 포르트에서 출발한 사람들과 생장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합쳐지는 곳이어서 사람이 많았던 것이었다. 알베르게 문에 공지한 도난방지에 관한 안내문을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어쨌든 다른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 것은 반갑고 신선했다.
먼저 말을 건네주는 청년이 있었다. 스페인 친구였는데 영어로 물어오는 터에 살짝 긴장도 했었다. 그런데 말하는 본새가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보여서 마음이 확 놓였다. “여기 왜 걷고 있는 거야? 친구 만나려고?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나는 휴가 중이고, 앞으로 일주일 정도 걸을 것 같아” 오늘의 질문은 여기까지. 그리고는 자신의 일행을 소개해주며 미소로 인사했다.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는 침실로 들어와서 일행끼리 서로 마사지도 해주는 것이 이전의 분위기와 사뭇 달라 좋아 보였다. 나는 혼자서 열심히 피곤한 내 발을 마사지했다. 그동안 혼자 지낼 땐 몰랐는데 사람이 많아지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들떠 있다.
여자, 내 이름, 내 외모. 이런 것들을 지니고 살려면, 짐이라고 여기지 말고 그 전부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천천히 흐름대로 사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여자여서 불편한 것을 달마다 심하게 느껴야 했고, 나의 외모에 대해 열등감도 엄청 많았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외모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죄송하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마음 깊이 열등감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내 길을 걷는데 무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며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살면서 내 삶이 행복해지는 조건이 아닐까. 오히려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여덟째 날.
Puente la Reina - Estella 19km. 에스테야 Estella
가을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했다. 바람이 아주 차가웠다. 바람을 거슬러서 걷는 것은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어떤 곳과도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평탄한 길이었다. 오르내리는 길이야 힘들었지만 아라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들판도 지나치는 동네도 정말 모두 예뻤다.
11월은 바람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 된다. 에스테야까지는 그동안의 이동 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짧았다. 긴장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했다. 천천히 걸어야 땅을 알고 축복할 수 있었듯이 천천히 걸어야 함께 걷는 사람들과 만날 수도, 또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타난 세 명의 남자분들이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그러다 중간쯤에서 쉬고 계신 그분들을 다시 만났다. 무릎이 아파 보이는 분에게 괜찮으신지 여쭈면서, 파스 하나를 꺼내어 붙여 드리고 남은 것도 모두 드렸다. 그러고 싶었다. 우리는 기념사진도 찍었다.
에스테야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는, 터덜터덜 마을의 중심지로 들어가서 파스타를 처음으로 사 먹었다. 오늘은 지쳐서 음식을 해 먹을 힘도 없었다. 비싼 줄도 모르고 덥석 사 먹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걷는 동안 많이 먹으면, 필요 없는 것을 버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을 이용해야 하는 난감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몸에 축적하기 싫었다. 그래서 빵 한 조각, 커피, 물이 매끼의 전부였다. 꼭 필요한 때, 뭔가 먹어줘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배불리 먹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저녁이 되자 순례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의 스페인 청년 일행과 낮에 만난 첸초 일행도 들어왔다. 이틀 정도 보아서 그런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것이 약간 부럽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몸에 아픈 기운이라도 생길까 봐 조심스럽게 걸었는데 열흘 만에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바늘에 실을 꿰어서 물집 속으로 통과시켰다.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힘들이지 않고 잘 해냈다.
어제 만난 스페인 청년의 물음에 답해줄 문장이 생각났다. “까미노가 나를 불렀다.” 나는 내 안의 생각과 내 몸의 무거운 것들을 버리려 왔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을 비우기 위해 그리고 다시 채우기 위해서라고.
까미노가 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