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아오... 집 구하기 엄청 어렵네. 집을 우리나라에서 구하려면 그냥 임장을 가면 되잖아? 미국에서 살집은 구글 지도와 내 상상력에만 의존해야 하니깐 어떤 집이 좋을지, 주변 환경은 어떨지 도무지 모르겠어...!!! 홈리스도 많다는데, 기껏 구한 집이 위험 구역 근처면 어뜩해..ㅠㅜ그런 정보를 줄 사람이 없어..."
"미준모에 한번 물어보는 건 어때?."
"안 그래도 물어봤지. 가족들이 살기에는 시애틀 보다는 벨뷰라는 곳이 낫다고 하더라고. 미국의 판교래. 치안도 좋고. 유튜브 찾아보니 한인 부동산 중개인들 투자 영상이 많이 나오는 것 보니까 분명 괜찮은 동네인 것 같아. 투자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은가 봐. 물론 우리가 집을 살 순 없겠지만...?"
일단은 지역은 벨뷰로 결정. 시애틀 워싱턴 대학교로 안식년 온다니깐 열명 중 8명은 벨뷰에 살아야 한단다.
지역은 결정. 다음으로 집을 고르기 위해 미국의 대표 하우징 중개 사이트인 Zillow와 Aprtments.com 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수영장이나 주차장이 있는지, 주변 도로는 어떤지 살피고, 아이들 학교는 어디로 배정되는지 등등을 염두에 두고 몇 날 며칠을 봤던 집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더니, 몇 군데 집들은 이제 살아본 것같이 눈에 훤할 지경...
(미국은 집을 구매하는 것 외에, 렌트를 할 때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예약을 하고 빈집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집을 계약할지 여부를 정한다. 대표적인 사이트가 Zillow와 Aprtments.com 이라는 사이트이고, 이곳에서 지역을 설정하면 지역 내에 렌트가 가능한 아파트 리스트들이 뜬다. 학군이나 렌트비용과 대략적인 아파트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미리 투어를 예약해서 직접 가서 보거나, 가상투어 혹은 온라인 미팅 투어가 가능한 경우도 많다.)
우리 가족은 9월 학기 시작 전 미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무엇보다 아이들 학교 배정이 가장 큰 이슈였다. 아이들 학교를 배정받기 위해서는 집 렌트 계약서와 가스요금 출금 내역서 같은 거주지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필수였다. 그래서 미국 도착 전에 미리 집을 구해 놓아야 했던 것.
연수를 가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떠나기 전 미리 집을 계약하고 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배정은 물론이거니와 그래야 선박으로 이삿짐을 보낼 때도 편하니까. (한국에서 2주-3주 전쯤 미리 선박으로 급하지 않은 짐을 보내면, 잊을만하면 혹은 필요한 물품을 이미 사고 나면 짐이 도착한다고들 한다.)
집 두 군데를 선택지에 놓고 재고 있던 날이었다.
"가구랑 집이랑 함께 인계받는 것도 편하고 좋다는데?" 남편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어왔다.
"올~~ 어떻게 알았대. 맞아 그렇게도 좋지. 나도 미국에서 한국 올 때 집이랑 가구랑 친구한테 다 넘기고 왔잖아. 옷만 가져왔어. 고민할게 아무것도 없었어."
"혹시 모르니 그것도 한번 미준모에 올려봐." (미준모: 미국 이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네이버 카페)
"가구 무빙세일이야 많지만,, 집은 우리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어쨌든 한번 문의글은 올려볼게."
"혹시 무빙세일하시면서 아파트도 같이 인계해 주실 분 계실까요?
며 칠만에 답글 한 개.
"쪽지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3개월 전 대충 올린 게시글이 인연이 되어, 지금 여기에 있다.
쪽지를 통해 받아본 집 주소는 내가 Zillow에서 닳도록 보아왔던 두 집 중 한 아파트여서 만족했고. 쪽지 보내주신 분이 이메일로 집 구조와 함께 가구들을 사진으로 보여주셨는데, 집도 가구도 깔끔하고 정갈했고 무엇보다 내가 이케아에서 눈독만 들이고 있던 그린색 소파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고민을 끝냈다. 이 집이다. 우리의 스위트홈.
엉겁결에 무빙세일과 집렌트를 한꺼번에 인계받아서 편리하게 정착했다. 가구 고르느라 발품 안 팔아도 되고 가구 조립도 필요 없고 완전 러키비키 한 상황. 밥솥, 청소기 등 가전도 다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한국집에도 없던 대저택에나 어울릴법한 커다란 LG TV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좋아한다(전 세입자 공대교수님께서는 TV 없인 못 사시는 분이라고...) 심지어 몇 가지 조리도구도 두고 가셨다. 마치 에어비앤비느낌으로 체크인한 기분. 처음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쓰던 것을 사용하자니 찜찜하고 사기당할까 의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줌으로 소통하다 보니, 좋은 분들 같고, 알고 보니 남편과 같은 학교 공대 교수님이셨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 혹시나 싶어 학교 홈페이지까지 찾아본 의심 병 있는 나란 사람.
우리 집은 얼핏 보면 여행지 빌라 느낌도 나고~ 오두막집 같기도 하고. 안에서 창문 프레임으로 밖에 보면.. 음... 약간 아난티에 온 것 같은,,,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파트다. 한국에서 북한산에나 가면 가끔 보던 청설모는 발에 치이는 거 아닌가 싶게 많고. 마치 호텔라운지 같은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는 커피, 차 코코아가 무료로 제공되고, 작은 헬스장과 수영장도 딸려있다.
미국집은 나무로 지은 경우가 많아서 2층인 우리 집은 층간 소음 유발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 감격스럽게도! 아래층 일층엔 거주자가 이사 가고 없단다. 이런 횡재가... 가끔 아파트 매니저께서 손님들을 데리고 아파트 투어 해 주는 소리가 들리는데, 제발,, 이 집을 맘에 들어하지 말라고,, 주문을 외운다.
그저 미준모에 올린 글 하나와 그리고 그 글에 응답해 주신 분의 쪽지 한 통이 인연이 되어, 세 달이 지난 지금, 나는 그분들이 살던 집에서, 그분들 흔적이 남아 있는 소파에 앉아, 아이의 낙서가 남은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나초를 우적거리며 키보드 두드리고 있다.
전 세입자 분들은 가시면서 많은 것들을 남겨두셨다. 창문 여는 법을 적어 두신 메모, 수영장에서 동네 친구들과 즐겁게 먹었다며 남겨 두신 라면, 급할 때 요긴했던 그릇과 몇 가지 조리도구들, 조심스레 챙겨 주신 한국 양념들. 무심코 찬장이나 서랍을 열면 보물 찾기처럼 뜬금없이 나오는 그분들 흔적들에 이분들 추억까지 덩달아 인계받은 것 같다. 그저 깜빡 잊고 두고 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물건들의 종류나 쓰임새, 놓여있는 위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요긴한 물건들은, 사실은 뒤에 올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고민 없이는 해 줄 수 없는 배려들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는 공공화장실의 문구가 생각나는 나의 저속함이 죄송스럽지만, 이분들이야말로 몸소 실천하신 아름다운 분들이다.
이제 이 집에 우리 가족의 흔적을 입힌다.
이런,, 벌써 카펫에 커피를 두 번이나 쏟았다... 이런 식으로 흔적을 남길 의도는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