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미국중학교 생활 시작

by 여공팔

2013년 12월생인 우리 아드님은 한국에서 6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에 와보니 중학생이 되었다. 워싱턴 벨뷰 교육청 구역은 9월이 새 학기 시작이라 9월 기준으로 이전 출생자는 7학년 이후 출생자는 6학년으로 들어오게돼있다.(워싱턴주라고 모두 9월 학기제는 아니다. 지역 교육청별로 학제가 다르다) 간혹 한국 부모님께서 새로운 환경이 불안하신 경우는 한 학년 낮춰 지원하곤 한다. 2013년 3월 출생인 아들친구는 원래대로라면 7학년이지만 6학년 지원 했다고 한다. 사실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관계나 학교수업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지만, 에이 그래도 워낙 적응 잘하고 둔한 아이니까 알아서 얼렁뚱땅 잘하겠지 싶은 마음이 크긴 했다.


미국 중등은 마치 대학의 축소판 같았다.

매 교시(period)의 시간과 등하교 시간만 정해져 있고 그 안의 수업 내용은 학생스스로 선택한다.

수학, 과학, 사회, 언어는 기본 수강과목이고, 3과목은 선택과목이다. 총 7과목 수강. 학생마다 기본 4개 과목을 제외하고 나머지 수업은 시간과 과목이 모두 다르다. 같은 학년일지라도 기본 4과목조차 각기 시간이 다르게 배정된다. 교시가 끝날 때 5분간 쉬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안에 교실을 옮겨 다니느라 바빠서 친구랑 잡담할 시간도 없다. 이건 뭐 수업 찾아다니느라 누굴 괴롭히거나 왕따 당할 시간도 없겠는데 싶다. 관계지향적이지 않은 우리 아드님에게 적합한 시스템!

반면 친구 사귀기에는 어려운 구조이다. 수업 시간이나 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알아간다.


세상에나 튜토리얼과 액티비티 수업 수강 안 하면 2시 35분에 끝난다. 말도 안 돼. 중딩이 3시도 안돼서 끝나.

아들은 선택과목으로 밴드, 어플라이드 엔지니어링(Applied Engineering), 세라믹(도자기아트)을 선택했다. 늦게 등록하는 바람에 제일 듣고 싶었던 과목은 못 들었다. 여기도 인기 수업은 광탈할 수 있다. 웃픈 건 한국에서 배워왔던 기타나 계속하라고 수강신청 했던 밴드부에는 기타가 없단다. 아들이 선생님께 기타는 없냐고 물으니, 그 악기를 연주하고 싶으면 오전 6시 45분 엔트리 밴드 수업을 들으면 기타를 맘껏 칠 수 있다고.

부모의 무지였다. 보통 미국 학교에서 밴드부는 우리가 흔히 아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와 타악기를 따로 떼어놓은 것을 의미했었던 것... 그러니까 트럼펫, 트롬본, 호른, 클라리넷 이런 관악기랑 타악기(percussion)로 팀파니, 마림바, 실로폰 같은 것들이 밴드부 악기이다. 어머나 우리 아들 그럼 뭐 하지.

"어 아드님 여기 드럼 있네,, 드럼이라도 두드리자..."

"엄마 여기 드럼은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더라...?"

"응? 그럼.. 뭔데?!"

수업 듣고 온 아드님께 이것저것 물으니, 엄청 고급스러운 실로폰을 치고 왔단다.

어플라이드 엔지니어링(Applied Engineering) 수업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뭔가를 만들어 낸다. 첫 주 수업날엔 3D프린터로 자지 네임택을 만들어왔다. 아직은 나도 도통 어떤 수업인지 모르겠는데, 더 지켜봐야겠다.

세라믹은 도자기 공방 수업이다.


국, 영, 수, 사회와 밴드, 엔지니어링, 도자기 수업을 5일 간매일 50분씩 배운다고 생각해 보면, 악기든 뭐든 능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조금씩 자주 하게끔 시간표가 짜여 있다.

7과목 외에 선택적으로 하는 Tutorial과 Activity 수업들이 있다.

Tutorial 수업은 보충 수업 같은 성격으로, 내가 부족하거나 마치지 못한과제를 해당 과목의 반으로 가서 선생님께 코칭을 받으면서 배우고 과제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Tutorial시간에는 항상 선생님이 반 교실에 계셔서 도움 받을 수 있다.

Activity시간은 주로 팀 운동이나 가드닝 또는 특별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학교 자체에서 학생들이 공부 외의 활동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

우리 아들은 농구나 축구 같은 구기종목에 관심이 없어서 cross country를 선택했다. 마라톤처럼 일정거리를 달려서 기록을 재며 기량을 관리하는 운동이다. 평지만 달리진 않고 오솔길 언덕길 공원길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비가 와도 그저 달린다. 일종의 러닝 클럽 같은 것. 한주에 두 번 Activity수업을 하는데, 한 번은 학교 트랙에서 달리고 또 한 번은 다른 학교 팀과 학교 외부 공원에서 만나서 팀별 기록경쟁을 한다. 이 또한 부모의 무지로 몰랐는데, 요즘 대학교 자기소개서에서 스포츠로 cross country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꾸준히 달리는 것에서 인내심을 기르고, 자기 기록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목표도 세우고, 달리는 과정에서의 자신과의 싸움과 사색했던 것들을 풀어내기도 유리하고, 혼자 달리지만 어쨌거나 팀 경기이기 때문에 동료를 격려하거나 혼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통해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고... 특히 동양인들이 오래 달리기를 잘한다고. 암튼 여기서는 한 학생의 서사가 담긴 다양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 스포츠인 것 같다. 달리기는 한국에서만 인기인줄 알았는데, 세계적인 추세인 것으로 밝혀져....



학기 시작 전에 신입생 대상으로 School Tour를 개최한다. 그냥 학교 커리큘럼 소개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필수로 가야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과 아이는 자기 시간표에 따라 반을 옮겨 다니며 교실 가는 길을 익히고(가장 중요) 선생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진짜 정신없겠다 싶었다. 시간관념 없는 우리 아들이 과연 해낼 수 있는 과업인 것인가!


학기 초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Curriculum Night(커리큘럼 소개날)은 아이 시간표대로 부모님이 교실을 옮겨 다니며 선생님들과 인사 나누고 수업 방식과 선생님들의 교육철학 등을 각 과목별로 15분 정도 설명 듣는 시간이다. 이점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과목 선생님들마다 개성이 강하고 다양했다. 엔지니어링 선생님은 마치 스타트업 회사 엔지니어 같고, 수학선생님은 꿀벌 옷을 입고, 전자책 정말 싫다고 토로하시는 사회선생님,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는 도자기 선생님... 자신의 교육관을 거리낌 없이 뽐낸다. 본인이 어디 출신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이 중학교에 왜 왔는지에 대한 자기소개도 빼놓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신다.

피지컬로는 여자이지만 자신을 He로 지칭하라고 하시는 선생님도 계신다.

선생님과 수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채팅 앱이 있는데, 부모님의 협조가 필요한 숙제가 있을 때는 톡을 주신다. 학부모는 선생님과 그 앱을 통해 수시로 아이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


ceramic 선생님
math 선생님

"오늘의 과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산책을 하거나 가만히 있기입니다. 적어도 20분간." 이게 도자기수업 숙제.

뭔가 거창한 예술가를 길러내려는 심산인가 싶었는데, 아들이 만들어온 도자기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아들,, 도자기 만드는 게 어려웠니? 이걸로 A를 받았다고?"

어플라이드 엔지니어링 수업 공간은 거대한 실습실이었다. 과학실 모둠별 책상에는 각종 도구와 천장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멀티탭도 있고.. 3D printer 도 몇 대씩 구비해 놓고. 아이들 수준에서 뭐든 만들지 싶었다. 뭐야,, 여기 너무 garage 같다.

"우리나라 스티브잡스가 안 나오는 이유가 garage가 없어서라며...?"


소셜스터디(Social Study)라고 부르는 사회과목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리 교본을 쓰는 것 외에는 이렇다고 할 교과서가 없었다. 뭘 가지고 공부를 하지 싶었다. 이렇게 해서 과연 뭐가 아이들에게 남을까 싶게. 이건 초등도 마찬가지.

도대체 모든 학문분야 최강인 세계 수재들이 모여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교육 비결은 뭘까? 초등학교에서 시작해서 고등학교까지,, 운동에 열중하고, 수박 겉핥기처럼 대충 배우는 듯해 보이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수준의 엘리트가 되는 거지? 가만 보면 머리 좋은 거랑 아는 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월등한 것 같은데 말이지. 어떤 이는 인구가 많으니 그중에 나올 수 있는 천재도 많은 것 아닐까라고 한다. 글쎄.. 인구만으로 본다면야 그럼 인도와 중국이 최강이어야지 않을까. (사실 여기 와서 보니 인도와 중국 아이들이 엘리트 그룹인 것도 맞긴 하다). 정답은 없겠지만, 답에는 먼 이야기 같다.

성장기에 스포츠를 통해 체력을 기르고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게 하는 과정을 배우게 한다. 학교에서 수업 방식은 대체로 스스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과정을 습득하게 한다. 과정중심의 커다란 틀 안에서 지적 호기심이 발현된 친구들은 지속적으로 앎의 범위를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것. 학생에게 발현된 지적 호기심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미국 교육에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끝을 보게 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교육 체계.

짧은 시간 지켜본 미국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소회.


우리 아드님 한 달간 하교 적응하는 것 보니 외국인 친구도 집에 데려오고 수업에서 성적도 잘 받아와서 다행이지 싶다. 학교가 싫지 않은 눈치다.

아무쪼록 1년 반 미국 학교 생활 충만하게 경험해 보길.

엄마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살다가 온 친구들 부러웠는데, 우리 아드님 따님이 그 친구들이네. 부럽다~ 너무~.


아 맞다. 영재교육.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는 일반 공립학교인데, 미국은 최초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청자에 한해서 영재 시험을 치르게 해서 영재학습서비스(Advanced Learning Service)를 받을 기회를 준다. 여기에 합격한 아이들은? 심화학습을 시켜주곤 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대부분 부모님들이 Gifted school로 학교를 바꾼다고 한다. 중학교도 마찬가지. 우리나라는 초중등 까지는 기존 학교를 다니며 주말에 영재원을 다녔는데, 여기는 학교 자체를 바꾼다니. 고등학교도 아니고.. 뭔가 이곳이 더 일찍 엄격하게 영재와 준재를 가르고, 사다리를 놓는 느낌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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