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스키장 찾은 '주부 A 씨'의 복귀전
내 나이 40을 훌쩍 넘어, 근 20년 만에 스키를 다시 탔다. 사실상 대학시절 이후 스키를 타본 경력이 전무한 주부 A 씨는 미국에 와서 아이들과 스키를 다시 타게 된다. 워싱턴 주는 북반구 쪽에 위치해 있어서 눈이 많이 오는 덕분에 근교에 가볍게 즐길 스키장이 많은 것이 한 몫했다. 게다가 스키 많이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우리 집 양반의 선배님들 전언도 있었다.
겨울시즌이 왔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스노퀄미(Snoqualmie) 스키장에서 첫 미국 스키장을 경험한다. 리프트가 복병이었다. 꽤 높이 올라가는 리프트에 손잡이가 없다니... 그리고 멈추기도 자주 멈춰서 허공에서 2-3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건 예삿일이. 도착쯤 돼서 내릴 준비를 할 땐 좌절했다. 초급 리프트 내리는 곳에 경사가 있던 것. 이렇게 불친절한 스키장이라니. 나중에 들어보니 미국 스키장은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한국에서 너무 곱게 길들여져 있던 것 같다. 여기는 초급인데도 슬로프에 모글도 있고 경사도 꽤 가팔랐다. 내 당혹감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너무 재밌게 질주 중이었다. 남편도 나보다 빨리 적응하는 듯 보였다. 나는 눈밭을 구르고 스키가 벗겨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난 후에야 겨우 감을 잡고 예전 몸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몸의 기억이라고 해 봐야 겨우 초보 탈출하고 중급을 가까스로 탈 만한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급기야 마지막 한 번만 더 타자고 올라간 리프트에서 내리다가 오른쪽 무릎을 접질려 부상을 당하고야 만다.
하... 우리 집 짐덩이는 내 몸뚱이였다. 그로부터 삼일은 걷지 못했고, 2주간은 걸을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리고 시렸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어쩌다 다리가...'
부상의 아픔도 잠시, 주부 A의 주도로 가족 겨울 방학 여행으로 스키 타러 휘슬러 리조트를 가기로 결단한다.
정확히는 '휘슬러 블랙콤 리조트'.
또 돈값이 문제였다.
어른들 스키 장비 시즌 렌털로 700달러(보통 9월 시즌 시작에 빌려서 4월 시즌 끝날 때 반납), 아이들 스키장비는 중고 구매 700달러( 사실 중고만 샀으면 500달러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우리 따님께서 꼭 보라색 스키가 갖고 싶다고 또 징징대는 바람에 마음이 약해져서 따님 스키만 새것으로 구매했다). 장비가 있으니 옷도 사야지. 아드님은 한국에 있는 스키복을 다행히 가져왔고, 어른 스키복 두 벌과 따님 스키복 그리고 명수대로 방한장비, 고글과 헬맷을 사고 나니, 얼추 셈해보니 $5000, 한화 600만 원 이상은 쓴 것 같다. 아,, 미춰버리겠네. 쓴 돈을 생각하니 동네 스키장 깨작대는 걸로는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내친김에 무려 세계 3대 스키장 북미 최대 스키장이라 알려진 캐나다 휘슬러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 감히 말도 안 되는 실력이지만 명분이 생겼다.
전형적인 매몰비용의 오류이다.
이미 지출한 돈이 아까워서 본전 뽑아야 한다는 마음에 향후 손실이 예상됨에도 비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인지 편향.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장비에 6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지출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큰 비용을 치렀으니 절약해서 스키장을 가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중간과정에 오류가 생긴다. '이렇게 돈을 들였는데! 동네 스키장에서만 쓰기엔 아깝다!'는 본전심리 발동한 것.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 거금을 쓴다. 4인 가족 3일 리프트권 $2148달러와 4박 5일 호텔비 $863을 더 쓰게 되면서, 추가금액이 $3000 가량 그러니까 450만 원을 더 지출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오겠어.'라는 마음으로 나간 지출이 상당하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은 근교 스노퀄미와 크리스털 스키장 두 곳에서 두 차례 워밍업 겸 훈련을 하고(한번갈때 마다 리프트권 40만 원가량 지출) 휘슬러 스키장에 입성하게 된다.
휘슬러로 가즈아~
드디어 출발일이다.
그동안 유튜브 보며 트레일 숙지하고 스키 스킬을 시뮬레이션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우습지만, 이제 기량을 뽐낼 시간이다.
떠날 때만큼은 신난다.
우리는 먹으러 가는 것 마냥 누룽지, 라면, 햇반, 고추참치, 김가루, 김치, 물 그득하게 트렁크에 채우고,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음식이랑 스키장비까지 넣고 나니 트렁크가 터질 지경이지만 괜찮다. 음식은 우리가 다 배에 넣고 올 거니까.
휘슬러로 가는 길목인 밴쿠버에서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남한산성(South Castle Korean Restaurant)이라는 식당에 들렀다. 이곳은 순댓국 전문점으로 순댓국뿐 아니라 각종 찌개나 불고기 제육볶음도 있고, 특히 꼬투리 볶음이 유명하다. 우리 아드님은 제법 국밥 맛을 알아서 여기 오면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뚝딱이다. 이번에는 제육볶음을 곁들임 했고 남는 건 포장해서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조식으로 햇반이랑 잘 먹었다. 여기 순댓국이 돼지 비린내가 아예 안나는 곳은 아닌데, 북미권에서 진하고 얼큰한 순댓국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것 같다.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도 많이 찾는 것 같다. 제육볶음은 포장마차 안주 중에 오돌뼈 맛 하고 비슷해서 호불호가 있을 맛이다. 밴쿠버에서 한국 국밥생각나면 가도 되는 곳.
밴쿠버 잠시 들러 점심 먹고 고기랑 상추 같은 식료품을 사고 차로 1시간 반 정도 더 운전해 가니 휘슬러 도착이다. 기온은 낮았지만 날씨는 쾌청했다. 일부 구간은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데, 창문을 통해 스치는 바다와 우뚝 솟은 돌섬들 반짝이는 윤슬 모든 풍광이 멋졌다.
도착이다. 하 그런데, 휘슬러 스키장의 위용이나 호텔의 분위기를 느낄 새도 없이, 우리 집 양반과 나는 또 의견 차가 벌어진다.
발단은 '짐 내리기'였다. 차를 주차하고 체크인하고 나서 짐을 느긋하게 두세 개씩 올리는 게 덜 힘들 거라는 의견과, 무슨 소리냐 호텔 앞에 일단 모든 짐을 다 풀어놓고, 주차하고, 다시 와서 체크인할 때 한 번에 올리자는 의견.
나는 전자를 주장한 사람으로, 무리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고, 더군다나 이 양반이 주차하고 오는 동안 그 많은 짐 앞에서 더욱이 냄새나는 음식도 있는데, 멀뚱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Sorry 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하지만 결국은 '이 양반' 하자는 대로 한다.
끓어오르는 화를 숨기지 않고 내 뱉는다.
"하! 참 안 맞는다!"
그러면서 예전에 아드님 친구 엄마께서 내게 건네었던 질문이 되살아 났다.
"같이 여행 다니면 안 싸우세요?"
휘슬러 있는 동안 우리 보금자리는 휘슬러 빌리지 안에 있는 피나클호텔(Pinnacle Hotel Whistler). 4성급이라는 소개에 배신감이 느껴질 만큼 시설이 낡고 호텔이 작은 것에 놀랐지만, 적정한 가격대(휘슬러 치고는)와 위치 그리고 룸 안에 키친이 구비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키친은 아침과 저녁을 해 먹을 수 있어서 꽤 유용했다. 시즈닝 같은 것들은 직접 가져와야 했고, 일회용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 접시 같은 것을 가져와서 잘 사용했다. 휘슬러빌리지 내에는 마트도 있어서 그곳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다양한 밀키트, 요리 재료도 구하기 쉽다.
휘슬러 빌리지 안에서 호텔 잡기를 잘했다. 스키 타지 않는 여행객도 서점이나 도서관(휴양지에 도서관이라니!), 베이커리 카페들이 많아서 시간 보내기 좋고, 밤에는 술에 젖은 반짝이는 유흥의 마을로 변한다. 가족단위와 젊은 스키어들이 복작복작 모인 여행 나온 느낌 나는 작은 마을이다.
스키장 곤돌라까지 거리도 나쁘지 않았다. 호텔 뒤편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5분 만에 휘슬러 빌리지 끝자락의 곤돌라 탑승장에 닿을 수 있었다. 물론 호텔 가격이 올라갈수록 곤돌라와 더 가까워져 셔틀이 필요 없는 호텔들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스키 타고 와서는 뜨끈한 hot tub에 스키 다는 동안 긴장한 몸을 녹이는 마무리가 괜찮았다. 수영장과 hot tub가 조금 작아서 다른 나라 여행객과 좁은 욕조 안에서 어색한 웃음과 눈웃음을 지으며 몸을 담그고 있어야 하는 어색함은 감수했지만 말이다.
호텔 1층에 ski room 있어서 보관도 용이했고, 갖출 건 다 갖춘 빌리지 안에 있는 가성비 괜찮은 호텔이다.
도착 첫날, 우리는 방 안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탈 수 있는 트레일과 곤돌라, 리프트의 위치를 공부하며 자동차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내일부터 스키를 탄다니, 다른 가족들이야 그렇다 치고, 나는 어쩌지? 외로워서 곁에 둔 내 살덩이들이 내가 넘어질 때 충격으로부터 나를 좀 보호해 줄라나? 별생각이 다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