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트립 #6 팜스프링스 호캉스로 마무리

의외성

by 여공팔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돌아오는길 핑크빛 석양이 너무 예쁘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여정을 끝내고 팜스프링스(Palm Springs)에서 호캉스를 즐기는 것으로 마지막 일정을 잡았다. 고생했으니 럭셔리하게 쉬어야지. 숙소는 그랜드 하얏트 인디언 웰스 리조트 앤 빌라 (Grand Hyatt Indian Wells Resort & Villas).

팜스프링스는 주로 LA 거주민들이 휴양차 찾는 도시다. 사막 한가운데 골프장과 수영장 시설을 완벽히 갖춘 고급 리조트들이 모여 있는데, 시설 대비 가격도 꽤 합리적이다. 근처에 아울렛도 있어 쇼핑을 즐기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우리가 숙박한 곳도 그중 하나로 300달러대 가격을 지불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제주도 신라호텔이나 조선호텔정도가 70만 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시설을 이 가격에 누리는 건 오히려 돈을 버는것...

호텔로 체크인하자마자 수영장으로 향했다. 밤 9시 정도였던 것 같다. 수영장엔 우리 가족만 있었고, 직원들은 오직 우리만을 위해 커다란 스크린에 영화를 틀어줬다. 마치 우리 가족의 프라이빗 풀장 같았다. "엄마! 엄마도 들어와~!" 그리도 좋을까? 넓은 수영장에 우리 아이들 깔깔대는 웃음소리만 들린다. 행복한 소음이 온 수영장에 가득 번져있다.

방으로 들어와 룸서비스로 스테이크 먹고 그대로 기절했다.


우리는 호캉스를 온것이니 바쁘다. 가격만큼 호텔을 즐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 눈을 뜨자마자 아침 일찍부터 조식을 먹고 테니스장으로 갔다. 미국 와서 아드님과 따님이 테니스를 시작했고, 아이들 장단 맞춰 주느라고 엄마 아빠도 몇 번 치다 보니, 가족 간에 가볍게 랠리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은 된 것 같다. 호텔에서 테니스 라켓과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피클볼 라켓을 제공하긴 했지만, 우리는 늘 차에 싣고 다니는 익숙한 우리 라켓을 사용했다.

땡볕에 테니스와 피클볼을 치고 나니 땀으로 몸이 범벅이 됐는데, 지금이 수영장을 가야 할 적시다. 상상만 해도 시원하겠다.



밝은 날 제대로 마주한 수영장은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여러 개 풀과 유수풀, 미끄럼틀도 있어서 무리없이 소소하게 즐길 수 있었다. 11월이라 약간 쌀쌀하긴 했지만, Hot tub가 있어서 우리 집 양반하고 나는 주로 그곳에만 들어가 있었다. 뜨뜻한 평온함도 잠시, 억지로 아이들에게 끌려 나와 수영장 풀에 몸을 담가야만 했다. 세상 제일 즐거운 척을 하며 단역급 발 연기를 시전 한다.

그런데,

" 여보! 우리 아드님 어딨어???"

" 같이 풀에 있었잖아."

살짝 염려가 되었다. 아무리 망망대해에서도 물에 떠서 놀 수 있을 만큼 수영을 잘해도 수영장 사고는 순간이니까. 그런데, 저기 까만 물체가 보인다. 아들 같은 아이가 수영장 바닥으로 몸을 향한 채 힘없이 물결 따라 둥둥 더 있는 것이 아닌가!

" 여보!!!!!!!!! 저기 가봐!!!!"

비명 섞인 나의 외침과 함께 우리집 양반이 우리아들로 의심되는 물체 쪽으로 돌진하는 찰나, 아들이 물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저 새끼가...."

"엄마 나 몇 분이나 참았는 줄 알아?! 대박 길었어!!"

"야! 너 사고인 줄 알았잖아! 너 또 그거 하면 죽는다,,,,,,,"

우리 아드님과 따님은 숨 참기 놀이를 살벌하게 하곤 한다.

놀란 맘을 한숨 돌리니 주변이 보인다. 풀 사이드에는 비키니 입은 젊은 서양 언니가 칵테일 마시며 야자수 아래 썬배드에 멋지게 누워있다. '아 부럽다. 혼자 있는 거.'

돈값만큼 논 것 같다는 자평을 끝으로, 이제 짐을 싸고 집으로 가야지.



참 우리에겐 또 하나의 과제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명소 인 앤 아웃버거(In & out Burger) 가기. 학생 시절 먹던 그 맛을 추억하며 왔는데, 맛은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사이 세상엔 맛있는 버거가 너무나 많이 나왔어ㅠㅜ 그렇게 맛있지가 않네. 추억으로 맛있게 느껴질 법도 한데 말이다. 더블더블 버거랑 치즈버거, 생감자로 튀긴 프렌치프라이 시켰다. 요즘 유행이라는 애니멀스타일 프랜치프라이를 추가해 봤다. 감튀 위에 매콤달콤한 소스와 볶은 양파, 치즈가 듬뿍 올라간 시크릿 메뉴라는데, 역시나 클래식 플레인 감튀가 제일 맛있다.

이제 진짜 서둘러 북으로 향해야 한다.


올라가는 길은 한번 달려본 길이라고 익숙한 느낌이다. 한 시간쯤 갔을까, 아들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중간에 어딘지도 모르고 잠시 차를 세워야 했다. 우연히 나간 곳이 I-5 고속도로 위에 있는 Vista Del Lago Visitor Center라는 곳. 쾌적한 화장실도 있고 작은 전시공간도 있었다. 피라미드 호수(Pyramid Lake) 언덕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 건물 밖으로 나가면 호수 전체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뷰맛집이다. 이 센터는 캘리포니아 중앙 수로의 운영 방식을 알 수 있도록 교육전시실을 운영한다. 캘리포니아가 사막과 온난 기후 지역이다 보니 가뭄도 있고 물 공급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자원 확보를 위해 인공적인 호수, 좀 더 정확히는 인공 저수지를 곳곳에 만들어 물을 저장하고 방류하며 캘리포니아 수자원을 관리한다고. 사실은 이곳이 자연이 만든 멋진 호수인 줄 알았는데,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는 배신감도 있었다. 이곳도 그런 저수지 장소 중 하나이고 우리는 운이 좋게 방문자 센터 전시실이 있는 곳에서 화장실 이슈도 해결하고 약간의 배움도 얻어갈 수 있었다.

우리 여행 중 시작과 끝의 숙소는 Holiday Inn. 이번엔 오리건 Eugene 이라는 도시에 있는 홀리데이인이다. 잠만 자고 아침해결하고 다시 출발하기에 최적화된 숙소. 경유지 호텔에 머물때를 대비해서 보스톤백 하나에 잠옷과 속옷 화장품을 넣고 간소하게 짐을 챙겨놓고 이 백만 들고 숙소로 가니 편하더라. 보통 1박에 100달러 초반대로 지불했던것 같다.

이곳 그리울 것 같다.

Holiday Inn. 화장실 휴지랑 수건까지 저리 공 들일 일인가.

점점 익숙한 북유럽 느낌의 쭉 뻗은 나무들이 눈에 띈다. 캘리포니아를 지날 땐 사막 기후 특유의 누런 흙산이 많아 배경색이 황토색에 가까웠는데, 북쪽으로 올 수록 초록과 그레이이다.


Korean War Memorial


하나 둘 익숙한 지역명이 눈에 띄는 와중에, Korea라는 단어가 눈에 스친다. "여보 저기 Korean memorial 어쩌고 있는데? 저기 뭐지? 잠깐 들러보자" 뭔지도 모르고 Korea라는 글자에 끌려 잠시 경로 이탈했다. 애국자들이구만. 가는 도중에 웹 검색 해 보니 Oregon Korean War Memorial (오리곤 한국전 기념비)라는 곳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레곤 출신 장병들을 기리는 33m 길이의 화강암 벽이 있고, 한국전쟁 역사관이 작게 운영되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는 복잡하게 다가왔다.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고 지금의 평화가 과거 누군가의 희생과 슬픔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라는 말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다만 이 문구가 우리나라 특정 성향의 단체들에게 전유물처럼 소비되다 보니, 단어 자체가 주는 강한 정치색이 불편함을 준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은 젊었던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코리아라는 나라의 전쟁에 휩쓸려와서 목숨과 함께 그들의 꿈도 때로는 인간성도 잃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안타까움 만은 모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 한국의 정치 상황과 이곳 추모공간 사이의 간극은 잠시 미뤄두고, 기억과 헌사의 의미에만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다. 참전 군인들의 사연이 담긴 책자도 있었고, 북한에서 군수품을 얻고자 발행한 채권 유품도 전시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이들도 이것저것 들춰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20분 정도 머무르며 전시도 보고 주변 산책을 하면서 장거리 여행 중에 굳었던 몸도 잠시 쉴 수 있었다.




우연한 곳에 들려서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낯선 감정도 느껴보는 의외의 경험을 하는 게 로드트립 재미가 아닐까 싶다.

돈 아낀다며 비행기 대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로드트립을 통해서 의외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장착된 꽤 괜찮은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아드님, 따님! 어떤 상황에서든 의외성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세상 일 8할 ㅡ아니 어쩜 더 많이ㅡ은 너희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테니까!!"



드디어 우리 동네다... ㅠ 되다...







2025년 11월 26일-12월2일 첫 로드트립일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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