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미국 국립공원 즐기기
전 날 밤 월미도바이브 산타모니카 비치를 떠나 향한 곳은 팜스프링스에 위치한 홀리데이인. 하룻밤 잠만 잘 곳이 필요해서 거창한 호텔이 필요하진 않았다. 역시 홀리데이인은 어딜 가든 일정한 청결과 서비스 수준을 만족해 준다. 스타벅스느낌.
간단히 호텔 조식을 먹고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출발이다.
Every Kid Outdoors
우리는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4학년(4th grade) 귀염 뽀작한 딸래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전체 국립공원 무료입장이라는 혜택을 받고 있는 행운가족이다. 미국 전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Every Kid Outdoors 프로그램이다. 미국 초등학교 4학년만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하면 특별 바우처를 주는데, 이를 공원에서 플라스틱 카드로 교환하면 1년 내내 가족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외국인 대상 국립공원 입장료가 인상된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이 카드가 있으면 여전히 무료로 입장 가능한 것 같다. (이전엔 내외국인 상관없이 차 1대당 30-40달러 정도) 지금까지 방문해 본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공원 입구 도로 중앙에 위치한 티켓 부스에서 차량당 입장료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부스에서 카드를 제시하면, 레인저분이 창문 너머로 4학년 학생이 동승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학교생활은 재밌는지 등 다정한 인사를 건네며 기분 좋게 통과시켜 주곤 한다.
국립공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방문자 센터에 들러 주니어 레인저 책자를 받는다. 파크를 투어 하는 동안 아이들이 책자 속 몇 가지 미션(퀴즈 풀이 등)을 수행하면 주니어 레인저(Junior Ranger) 뱃지를 받을 수 있는데, 이거 모으는 것이 아이들에겐 재미, 부모들에겐 자부심의 상징이다. 그러니 아이들과 국립공원에 간다면 꼭 방문자센터에 들러 투어를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파크 스티커, 티셔츠, 머그컵 같은 다양한 굿즈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상주하고 계신 레인저분께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완만한 트레일이나 꼭 들러야 할 포인트를 직접 추천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우리 가족은 미리 계획을 세워 왔더라도 꼭 데스크를 찾아 레인저분께 추천 코스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지금까지 만났던 레인저분들은 모두 친절했을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을 지키는 이로서의 깊은 자부심이 느껴져 늘 인상 깊었다.
특히 방문자 센터에서 나누어주는 종이 지도는 활용도가 무척 높다. 앞면에는 상세한 지도와 거리가, 뒷면에는 하이킹 가능한 트레일 소개와 예상 소요 시간까지 꼼꼼하게 안내되어 있다. 미국은 국립공원 내부로 들어서면 와이파이나 통신이 아예 터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구에서 티켓팅을 할 때나 방문자 센터에서 나누어주는 종이 지도를 챙겨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필수다.
방문자센터에서도 40분을 달려 처음으로 당도한 곳은 히든 벨리(hidden Vally)
밤에는 스타게이징으로 유명하고 낮에는 트레킹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1.6Km 순환 코스, 길게 잡아야 1시간 정도 험난하지 않은 모래사막 길을 천천히 걷기 좋은 트레일이다. 화강암 바위들이 계곡 전체를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이름처럼 계곡이 바위들로 숨겨져 있는 듯 한 모양새다. 조슈아 트리도 있고 다양한 종류의 사막 식물들을 볼 수 있다. 트레일 곳곳에 있는 안내판을 읽어보며 지식을 탐구하기도 좋겠다. 간단한 식물 소개와 얽혀있는 전설을 소개해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다. 찬찬히 읽어볼까 하면 산통을 깬다. 그들은 모래 깔린 평지에서는 뛰고, 눈앞에 보이는 바위는 기어올라 정복한다.
"야! 너네 안 내려와! 위험해!!!! 맞을래? 5.4.3.2.1!!!"
어글리 코리안 아줌마다.
거의 모든 바위를 기어오르려는 걸 윽박을 동원해 말려가며 남들 한 시간 거리를 우리는 두 시간 걸려 트래킹을 완료했다. 다리 말고, 목이 아프다.
키즈뷰(Keys View)
파노라마뷰가 장관이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전망대다.
1910년경 이 지역에 정착한 초기 정착민 빌 키즈(Bill Keys)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빌려왔다고 한다. 험한 사막에서 가족과 함께 직접 길을 닦고, 댐을 건설하고, 광산을 관리하는 등 지역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라고. 전망대에서 보면 팜스프링스와 인디오시 그리고 코첼라 벨리가 펼쳐져 있다는데, 처음엔 전부 누런 사막 산들로만 보이더니 눈을 적응시키고 보니 비로소 평지마을이 보였다. 코첼라. 블랙핑크 제니가 무대를 씹어먹었던 그 코첼라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이 열리는 그 코첼라... 파노라마 전경을 모두 담아 오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는 카메라의 한계가 매번 멋진 풍광을 볼 때마다 아쉽다. 불어오는 바람이 몸에 깃드니 시원한 김에 앉아서 눈에 담고 올 수밖에.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초야선인장 정원(Cholla Cactus Garden), 가시에 된통 당하다!
와우 공원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다. 자연적으로 군락을 이룬 선인장 밭이다. 우리 여기 오는 것까지는 계획에 없었는데, 레인져분께서 추천해 주셔서 시간을 들여 와 봤다.
초야선인장도 종류가 있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테디베어 초야(Teddy Bear Cholla) 선인장. 쨍 한 햇살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선인장 가시는 예쁘게만 보였다. 그런데 여기 정말 조심해야 했다. 우리 따님 운동화에 밤송이 비슷한 크기의 선인장 가시가 왕창 박혀서 떼어내다가 내 손가락이 선인장 가시에 찔렸는데, 무심코 가시를 떼려는데 꿈쩍도 안 하고 매우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닌가! 순간 매우 당황하여 남편에게 호들갑스럽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 집 양반께서는 '또 나의 와이프가 괜한 일을 큰일로 만드는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뺴주려고 하는데, 이분도 놀라고 말았다. 가시가 정말로 안 빠졌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생한 후에야 겨우 가시를 뽑아낼 수 있었고, 따님 신발에 붙은 나머지 가시를 정리하던 남편님도 가시에 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거봐라 진짜 아프다고 했지... 안 빠지지.....!"
가만 보니 가시가 갈고리 모양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선장은 Junping Cactus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가시 끝이 갈고리 모양이라 스치기만 해도 낚싯바늘이 옷이나 살점에 낚아채듯 강력하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된통 당했다. 이후 우리는 숙연해진 자세로 조심조심 발아래를 잘 살피며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 집 어린이들도 자발적으로 뛰지 않더라. 20분 정도 머무르며 사진 찍고 선인장 관찰하며 시간 보내다 왔다.
또 다시 이 정도 규모의 선인장을 볼 기회가 있을까?뜨거운 태양빛에 반사된 가시 끝이 반짝반짝 빛났던, 아픈 기억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선인장 밭.
거대한 놀이터 Skull Rock
Cholla Cactus Garden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 방문자 센터로 돌아가는 길 중간에 있는 Skull Rock에 들렀다. 거리를 두고 보면 커다란 암석이 마치 해골 머리같이 생겨나서 이름이 유래된 것 같다. 사실상 모래 위에 바위밭 같다. 파크맵에는 마른 개울길을 따라 한 바퀴 도는 트레일 코스를 즐기는 것을 추천한단다. 하지만 여기는 온갖 커다란 바위에 개미떼처럼 붙어 기어오르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만 보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곳은 재미난 암벽등반을 위한 코스다. 한참 여기저기를 탐험하다 보면 커다란 바위에 가려져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한참 눈을 가늘게 뜨고 찾아야만 했다. 저기 어디쯤 새끼손가락만 해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이 바위 위에 서있다. 저기까지 올라가다니, 용기가 멋지긴 하다.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한참을 놀았다. 바위 자체는 미끄럽지 않아서 등산화나 일반 운동화를 신고 발을 잘 내딛는다면 크게 위험하진 않았다. 한 여름철은 매우 덥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우리의 미션, 뱃지와 도장 찍기
공원 투어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반드시 방문자 센터를 다시 들러야 한다. 그래서 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을 꼭 확인해야 하는데, 대부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처음 방문자센터에서 받았던 주니어레인저 책자를 완성해서 레이져분께 검사를 거친 뒤, 아이가 레인저분과 함께 엄숙하게 선서까지 마치고 나면 드디어 영광스러운 뱃지가 주어진다. 선서의 내용은 국립공원의 특색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국립공원 다니며 기념 도장을 찍으려고 국립공원 패스포트(Passport)를 구매했었다. 여기에 방문 기념 스티커를 붙이고 날짜가 찍힌 도장까지 쾅 찍고 나면, 그날의 탐험이 비로소 완벽하게 마무리.
스타게이징의 명소 히든밸리의 밤, 마음이 풍화되는 시간
사실 전날 밤, 오직 별을 보기 위해 LA에서 팜스프링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만 풀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려 히든 밸리(Hidden Valley)를 찾았다. 오직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길게 뻗은 도로를 달려 도착하니, 우리처럼 별을 보러 온 차량이 제법 보였다. 주변은 고요했고 당장 옆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 어두웠지만, 하늘에는 별이 있다.
가장 찾기 쉬운 별자리는 오리온자리. 별 세 개가 점점점 나란히 줄을 맞춘 채 직선으로 늘어서 있어서(오리온 벨트), 눈에 쉽게 띈다. 그 주변에는 목성이 선명하게 빛나고.
가만히 보니 반짝반짝 빛이 난다. 대기의 움직임에 의한 착시현상이라는 이면을 알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니 예쁘다는 서정적인 감탄이 튀어나왔다. 인생 처음으로 별똥별도 만났다. 하늘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다 보면 느닷없이 별 한 개가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툭욱 떨어지다 사라진다. 우리 따님만 별똥별을 보지 못해서 오히려 내가 크게 아쉬웠다. 우리 따님 가만히 좀, 차분히 있어보자... 우리 따님은 좋은 거, 신기한 거 다 보고 즐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이면을 탐구하는 마음과 안목이 생겼으면 좋겠다. 저 별 빛이 우리에게 다다르는데 몇 광년이 걸릴 만큼 우주는 크고 그에 비해 나는 먼지처럼 사소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내 치부책에 적어두었던 미운 사람의 죄목 하나쯤은 지워줄까 하는 자애로운 마음을 또 한 번 먹어본다. 은희경 작가의 책에서 봤던 표현인 것 같다. 풍화작용. 마음의 모난 것들이 풍화작용으로 모서리가 닳다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둥근 돌산들처럼 되어 버리는 건가. 하늘을 많이 바라보다 보면 내 치부책이 백지가 되려나.
원래 계획했던 예상시간을 훌쩍 넘었다. 휘뚜루마뚜루 둘러보다 와야지 싶었는데, 발길 닿는 개별 스팟마다 아이들에게는 거대한 놀이터였다. 지금까지 몇 군데 미국 국립공원에 방문해 봤지만, 아이들의 원픽은 이곳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가장 재밌었다고 한다. 뭐든 대충 보면 보통인 것이고, 관심 가지고 보면 특별한 것이 된다.
이제 새로운 숙소로 간다. LA마지막 코스는 팜스프링스 리조트에서 휴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