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명주 Oct 13. 2020

그 여자의 두 얼굴

  후루룩후루룩 쩝쩝쩝쩝. 먹는 소리가 요란하다. 잘 비벼진 자장면 속으로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푹 찔러 넣을 때 그녀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번뜩인다. 그리고는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면 덩어리를 입을 쩌억 벌려 그대로 후루룩 빨아올린다. 면발이 입안으로 다 들어갔을 즈음 짧아진 면이 콧등을 친다. 그 바람에 이미 시커메진 입가는 관두고라도 짜장소스가 튀어 팔자주름 사이에 커다란 점이 몇 개나 찍혔는데도 전혀 괘념치 않는다. 


  쩝쩝 음흠-. 꽤나 입맛에 맞는지 몰아넣을 때마다 콧소리 섞인 추임새를 콧구멍으로 흘리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겨우 그러한 젓가락질 대여섯 번만으로 자장면그릇에는 양파조각 몇 개만 뎅그러니 남게 되었다. 거의 동시에 나온 내 자장면은 아직 더운 김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다.


  입가심으로 단무지조각 두세 개를 한꺼번에 우걱우걱 씹더니 옆 의자에 얌전히 놓인 가방을 뒤적여 어울리지 않게 공주님들이나 쓸법한 안나수이거울을 꺼내든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이리저리 훑고는 냅킨을 톡 뽑아 입 주변과 아까 찍혔던 점들을 닦아내고 이 사이에 낀 음식조각을 쓰압쓰압 소리 내어 혀를 이용해 야무지게 빼낸다. 마지막으로 빨간 립스틱을 꺼내 덧바르는 모습은 내가 이래봬도 여자예요, 하는 것 같다. 


  이번엔 물 한 컵을 한 번의 쉼도 없이 급하게 마신다. 꺼억-, 트림도 잊지 않는다. 드르륵쿵탕, 의자소리도 요란스럽게 일어나더니 만 원짜리 지폐를 카운터 위에 올리며 아저씨 여기 얼마예요, 하고 목청 좋은 소리로 주인을 부른다. 계산을 마친 그녀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문 밖으로 사라졌다.


  오십대 후반 쯤로 보였다. 그런데 정말 저게 여자일까 싶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는 나이 먹어도 저렇게 아줌마가 되지는 말아야지, 생각하며 다른 때보다 더 얌전하게 젓가락질을 했다. 


  며칠 후 냉면집을 찾았을 때 우연인지 인연인지 내 옆 테이블에 또 그녀가 앉았다. 투피스를 차려입은 모습도, 짧게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도 그날과 같았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곤 저번처럼 혼자가 아니라 앞에 웬 남자가 마주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남자가 먹기 시작하자 그녀도 젓가락을 들었다.


  스파게티처럼 냉면을 작게 돌돌 말아 올린 후 새처럼 작은 입술을 벌려 쏙 머금는다. 그리고 냅킨을 뽑아들어 입가에 튀지도 않은 냉면육수를 톡톡 찍어내는 시늉을 한다. 오물오물 씹는 중에 맞은편의 남자가 건네는 말이 재미있는지 한손으로 입꼬리를 반쯤 가리고는 호호, 웃는다. 그런 식으로 반이나 먹었을까. 어머 저 많이 못 먹어요, 새침하게 말하고는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며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단무지를 우걱우걱 씹는다거나 물 마신 후 트림을 내뱉는 모습은 그녀에게 생판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분명 얼굴은 똑같은데 하는 모양새는 전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지 헷갈리게 했다. 남자가 계산을 마치고 앞서 나가자 그녀가 그 뒤를 따라 여전히 씰룩대는 엉덩이를 더 세차게 흔들며 따라갔다.


  그녀의 전혀 다른 두 얼굴에 입이 떠억 벌어졌다. 도대체 그 남자와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보다도 그녀의 행동변화에 더 아찔함을 느낀다. 혼자일 때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일 때의 행동이 이렇게 다르다니. 여자와 아줌마의 경계선에 선 그녀가 아슬아슬하다.


  여자와 아줌마의 분리에 새삼 의문을 갖는다. 음전한 행동을 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여자와 아줌마로 나뉜다면, 여자는 언제까지 여자인 걸까. 그리고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고 난 후로는 아줌마가 되거나 여자가 되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는 걸까. 나를 돌아본다. 나는 이제껏 당당한 여자이기만 했다고, 아줌마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들에게 들키지만 않았을 뿐 그녀처럼 나도 꽤 오랜 시간동안 여자이면서도 아줌마의 두 얼굴을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슬그머니 떠올린다. 벌써 스무 해도 넘게 그래왔던 것이다.


  임신을 하고도 남들처럼 입덧이 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맛이 돋아 밥도 끼니마다 두 그릇 이상은 먹어야 양이 채워지는 듯했다. 그러한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려니 창피했다. 남편에게만은 항상 여리고 고운 사람이고 싶은데 두 그릇 먹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려 짜낸 방법은 몰래 먹는 것이었다. 남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커다란 양푼에 온갖 반찬을 넣고 비벼서 한 그릇을 미리 후다닥 해치우고는 남편과 마주한 밥상에서 나머지 한 그릇을 마저 더해 배를 채웠던 것이다. 이렇게 새 모이처럼 조금 먹어서 어찌 아이를 낳겠느냐며, 살쪄도 미워하지 않을 테니 많이 먹고 건강하기만 해달라며, 남편이 꼬드겨도 나는 원래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라고 앙큼한 거짓말을 진실이라 우겨댔다.    


  여지없이 뒤룩뒤룩 살이 쪄버린 나는 오늘도 여전히 식구들 아무도 없는 점심에는 방바닥에 덜퍼덕 앉아 양푼에 밥을 비비고 있다. 그리고 한 숟갈 크게 떠먹으며 내가 그래왔고, 그녀도 그랬던 것처럼 아줌마와 여자로 보이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바로 여자로 보이고 싶을 때와 아줌마로 보여도 상관없을 때로 나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여자이기를 포기한 듯  싶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줌마들은 죄다 아줌마와 여자의 두 얼굴을 지녔다. 나 또한 볼따구니가 미어져라 숟가락을 밀어 넣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일 외출할 때 입고 나갈 옷의 색깔을 맞춰보고, 더욱 여성스러워 보이기 위해 손수건을 챙기고, 그 자리에서는 웃음소리도 얌전하게 웃어야지, 생각하고 있으니 더 말해 뭐할까.


  혼자서 나름의 깔끔한 결론을 내어놓고 또 한 숟갈 커다랗게 입속에 밀어 넣으며 흐흐,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그 때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만 드러나는 내 안의 아줌마가 너도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들킨 적이 한 번쯤은 있었을 거야, 라며 우쭐대지 말라 한다. 아줌마 모습을 들켜버린 그녀를 흉볼 일이 아니었다. 나도 결국 그녀처럼 두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만다.    

작가의 이전글 생활계획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