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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생활계획표

  마지막 해가 저물던 날. 저녁 즈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작은오빠 부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음력으로 치자면 아직 한 달이 넘게 남았지만 달력이 넘어가고 있으니 새해인사를 거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서로 인사가 끝났을 때 오빠는 내년에 자기네 식구가 셋이나 삼재에 들어서게 된다며, 그래서 큰일이라며 법석을 떨어댔다. 


  이에 맞서 내가 반박에 나섰다. 나는 아홉수라고. 아홉수에 비해 삼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숫자로만 따져도 내가 훨씬 위라며, 박박 우겨댔다. 서로 네가 못났네, 내가 잘났네, 바보스런 말다툼을 했다. 결국 세 바보는 얼마지 않아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올해 마흔아홉으로 쉰을 바라보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 아홉수를 어찌 이겨낼까. 어찌 보내야만 잘 보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꼭 숙제를 하지 않은 채로 낼모레 개학을 앞둔 아이처럼 조바심이 난다. 무언가 기발하고 획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때인 듯하여 노트를 꺼내 이것저것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다 보니 지금껏 다섯 번이나 지내온 아홉수는 어떠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홉 살, 진정한 아홉수인 걸까. 나는 구구단을 다 외우지 못해 교실에 남아 나머지공부 대열에 서야만 했다. 사달이 난 것은 7단. 혼자서 외울 때는 '칠삼에 이십일, 칠사에 이십팔', 잘도 넘어가던 것이 선생님 앞에서 검사만 받으려 하면 꼭 '칠사에 이십육'이 되는 바람에 몇 번이나 퇴짜를 맡고, 결국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아니, 그 해를 다 넘길 때까지도 아무도 내게서 유창한 구구단은 들을 수 없었다. '사칠에 이십팔'은 쉬이 나오는데 왜 그리도 7단은 버벅댔는지. 그 어리바리함은 아직까지 극복 되지 않아 지금도 가끔 '칠사에 이십육'이 되곤 한다.


  열아홉은 고3이다. 대학교 입시가 코앞이라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데 나만 느긋했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야간학습시간에도 교과서 속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로맨스소설을 끼워 넣고 홀로 독서삼매경에 빠졌더랬다. 멀리서 보면 그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없을 것이었다. 입시일을 두어 달 남겨놓고서야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결국 짝사랑하던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가 물만 실컷 먹고 말았다.


  스물아홉은 남편이 처음으로 가게를 시작했을 때다. 첫 사업을 시작하는 남편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야심차고 다부지게도 직원들 점심을 책임지겠노라고 큰소리 쳤다. 누가 하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일을 만든 꼴이었다. 고심하여 금액에 맞게 식단을 짜고, 한참 말썽부리기 시작한 네 살배기 아이를 봐가며, 어떻게 하면 입맛 도는 반찬을 만들어낼까 고민하느라 다른 데 눈길 돌릴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몇 달이 지나고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예 가게 일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처럼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없다. 


  서른아홉.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멋지게 살던 때다. 늦은 나이 서른일곱에 방송대 공부를 시작했다. 억지로 하던 때의 공부가 아니었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라 그런지 해가 갈수록 재미가 쏠쏠했다. 국문학과였기에 책을 들춰보면 한자가 많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좋았다.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며 시험을 앞둔 전날 밤을 새는 것도 좋았고, 며칠 뒤 성적표가 나와 아들아이에게 자랑질 할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그제야 무엇이든 하고 싶어서 해야만 질리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아들아이는 학교 다니는 내내 엄마에게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마흔아홉이 되었다. 이제 내게 남은 아홉수는 몇 번일까. 쉰아홉 그리고 예순아홉이 되었을 때도 지금처럼 되돌아보며 스스로 기특하다 머리 쓰다듬을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니 오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아홉수라며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계획대로만 움직였던 때가 있었던가. 아니다. 해서 장고에 악수 둔다고 하지만 이번 계획표는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한참 등산하는 재미에 빠져 무릎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아침마다 운동화를 챙겨 신고 가까운 호암산에 올랐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으나  점차 살까지 빠지니 마약에라도 중독된 듯 쉽사리 관둬지지 않았다. 그 날도 한참을 내처 걸어 목적지인 호압사에 다다랐을 때 환갑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살을 빼는 것이 목적이라면 서두르라고. 쉰이 넘으면 기절 직전까지 운동해도 잘 빠지지 않을 거라면서. 그게 고작 서너 해 전인데 벌써 목구멍까지 꽉 찬 아홉이 되고 말았으니 서둘러야 한다.


  결정. 올해는 다이어트계획표다. 일단 동그라미를 그리고, 스물네 개 칸을 나누고, 여섯 시에 기상,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운동, 아침은 샐러드만 먹고…. 이렇게 흐트러짐 없이 철저한 계획 하에 아홉수를 보내고 멋진 몸매로 쉰 살을 맞이하는 나를 상상한다. 


  드디어 새해 첫날이 밝았다. 그런데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가 중천이다. 벌써 아홉 시가 넘은 것이다. 순간 나는 이순신 장군이 되었다. ‘나의 계획이 첫날부터 어그러졌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조용히 머릿속으로만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떡국 육수를 만들기 위해 다시마를 닦았다. 물론 아침은 샐러드만 먹기로 했지만 새해 첫날이니 떡국 한 그릇 정도는 먹어줘야 나이도 먹지 않을까,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 대었다. 하나가 무너지니 도미노처럼 우르르 하루가 그대로 작살이 났다. 


  핑계를 대자면,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지만 그믐 날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쇤다 했던가. 나는 단지 눈썹이 쇠는 것을 예방하고자 밤을 샜을 뿐이고, 모처럼 맞이한 휴일전야를 만끽했을 뿐이다. 그런데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일일, 아니 작심일가지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떡국 두 그릇에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먹고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둥싯 부른 배를 문지르며 생각한다. 역시 계획표는 짜기만 하고 지키지 않을 때가 제 맛이라고. 이깟 계획이 아니어도 아홉은 열이 되기 직전의 숫자에 불과하다고. 더구나 올해는 황금돼지해이니 돼지띠면서 돼지를 더 더 닮아만 가는 나의 해가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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