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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하나엄마


  입술에 붙은 밥풀도 무겁다는 삼복더위에 이열치열을 떠올리며 오히려 집근처에 자리한 호암산을 찾았다. 한참 오르고 있을 즈음 자줏빛 코스모스, 노오란 금국화, 선명한 보랏빛의 벌개미취꽃, 사이사이 아직 쇄지 않은 억새풀까지 섞어 제법 그럴싸한 들꽃 한 묶음이 불쑥 내게 안겨들었다. 꽃다발을 건넨 소녀는 생글생글 웃는 낯이었으나 처음 보는 얼굴이다. 들꽃을 함부로 꺾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산 입구의 푯말을 보고난 터라 선뜻 받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받으라는 듯 응, 응, 하며 소녀는 채근하듯 내 옆구리를 찌른다.


  차근히 소녀를 살폈다. 안경에 감춰진 작은 두 눈은 맑았으나 양 사이가 멀고 쳐져있다. 조금 튀어나오긴 했지만 앵두 같이 작고 빨간 입술은 도톰하게 반짝인다. 그런데 그리 예쁜 입술 사이로 보이는 누우런 치아가 삐뚤빼뚤이다. 더구나 말간 침까지 질질 흐르고 있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도 짝짝이인 것이 영 어설프다. 생김새는 익숙하지만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 꽃이 내 손에 억지로 쥐어졌다.


  꽃을 받아들자 활짝, 그러면서도 수줍게 웃는 소녀에게 어디선가 버럭 내지르는 고함이 던져졌다. 먼저 걸음 하던 소녀의 아버지가 뒤돌아서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실례되게 그게 무슨 짓이냐고. 헐레벌떡 다시 뒤돌아온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를 등 뒤로 세웠다. 그리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딸아이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라고. 산에 오르는 내내 정성스레 꽃을 꺾더니만 그쪽이 제 맘에 들어 건넨 것이니 기분 상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주라고.


  행여 받은 꽃을 빼앗길세라 가슴에 꼬옥 안으며 얼른 답례의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정성들여 묶은 꽃을 아침부터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싶은 게 좋다고. 덧붙일 말을 찾다가 소녀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하, 하나요. 정하나요.”


  어눌한 발음이긴 했지만 제법 또랑또랑 이름을 말하자마자 걸음을 재촉하는 아버지에게 한 손은 잡히고 나머지 한 손을 못내 아쉬운 듯 흔들며, 몇 번씩이나 뒤돌아보며 소녀는 총총히 사라졌다. 


  이름이 하나란다. 정하나. 그 이름에 눈물이 차오른다. 하나가 내게 불쑥 안긴 들꽃을 가만 바라보니 색색깔로 참 예쁘게도 묶였다. 이 꽃을, 이렇게 정성스레 묶인 꽃을 내가 받아도 될까. 하나엄마, 나 이 꽃 받아도 될까.


  기름이 심하게 번들거리는 잡채 한 접시가 사람보다 먼저 현관을 들어선다. 하나엄마다. 제멋대로 뒤틀린 손으로 어찌 만들었는지 자랑스럽다는 듯 씨익 웃으며 건넨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그녀의 얼른 먹어보라는 눈빛을 차마 이기지 못하고 한 젓가락 입에 넣어보지만 이내 구역질이 솟구친다. 꾹꾹 참아가며 목 넘김을 하고선 정말 맛있게 만들었네, 어찌 했는지 나도 배워야겠는걸, 하고 말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잘려진 나무 밑둥의 나이테처럼 뱅뱅 도는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눈으로 겨우 칼질을 하고,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하나를 힘들여 유모차에 태우고, 앞이 아닌 옆으로 틀어져있는 발목에 힘을 줘가며 더딘 걸음으로 힘겹게 왔을 하나엄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십 리 밖 먼 길이었으리라. 


  개나리가 흐드러진 봄날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겨우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인 아이들이 아예 모래밭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움큼 쥔 모래를 이리저리 던지기도 하고, 벌려 앉은 가랑이 사이로 쌓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저 건강하게 뛰어노는 것에 감사해하며 서로서로 그쪽 아이는 몇 개월이냐, 개월 수에 비해 빠르다는 칭찬 반 부러움 반을 섞어가며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엄마들과 말을 트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기저귀가 숨은 도톰한 엉덩이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고 있는데 오직 하나만은 삐딱한 고개를 하고 턱받이가 다 젖도록 침을 흘리며 유모차에 앉은 채로 눈만 바쁘게 움직여 부러운 듯 다른 아이들을 쫓고 있었다. 왜 걸어 나와 놀게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우, 우리 아, 아이는 거, 걸을 수가 어, 없어요.”


  하던 하나엄마. 말을 트느라고 묻긴 했지만 그 물음이 하나엄마에게 아픔일 거란 생각을 그 때는 하지 못했다.

  이미 친해져있던 채연엄마와 나는 정상적인 곳이라곤 몇 군데 되지 않는 그녀가 안쓰러워 우리 나름의 그룹에 그녀를 끼워주기로 했다. 그래봐야 함께 어울려 시장을 같이 간다거나 별난 음식을 하면 서로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 채연엄마와 내가 음식을 하여 나누어 주고, 시장에 같이 가자며 부르는 편이었다. 그러나 하나엄마가 없는 자리에서는 누가 들을세라 작은 소리로,


  “자신이 그 모양새면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지, 왜 아이까지 그런 형벌을 잇게 하는지 모르겠어.”


  하며 흉을 보곤 했다.


  더없이 착해 보이는 그 이면에는 그리 모자란 너와 어울려주는 내가 이렇게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야, 라는 같잖은 우월감이 숨어있는 것은 누가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음이다. 


  그런 사소함을 나눔이 좋았던 것일까. 그녀의 나눔도 시작되었다. 음식을 하면 무엇이든 접시에 담아 날랐다. 그러나 늘 지나치게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있어 느끼하거나, 소금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싱겁기 일쑤였다. 받아들었을 때는 고맙다고, 맛있게 잘 되었다고 칭찬하며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까지 연출하긴 했지만 그녀가 가고난 후 받은 음식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런데도 미안한 마음은 없었다. 얼마큼의 정성이 들었을지 모르는 그 음식들을 버리다가 들킨 적도 없었고, 더구나 맛있게 먹어주는 연기를 꽤나 잘하고 있으니 언제까지나 그녀는 고마워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근 일 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나는 그 곳으로부터 꽤 멀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날이 정해지고 그간 정을 나누었던 같은 건물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겸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중에 초대도 하지 않은 그녀가 찾아왔다. 어찌 보면 이해하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이들보다 확연히 느린 그녀의 대답이나 때 놓친 웃음은 떠들썩하게 재미난 분위기를 깰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얼른 보내지 뭣 하러 계속 남아있게 하느냐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하나엄마 얼른 가서 저녁 해야지, 하며 그녀를 내쫓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못내 아쉬운 듯 일어서며 내게 곱게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얼핏 보니 쪽지의 글씨마저도 뒤틀어진 그녀를 닮아있다. 이미 분위기에 휩싸인 나는 그것을 얼른 주머니에 넣으며 서둘러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얼른 가라고, 얼른 여기서 빠져주라고. 채근과 재촉을 눈빛으로 날리느라 그녀의 맑기만 한 마음을 채 읽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후로도 한참이나 웃음으로 떠들썩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 뒤, 거실을 정리하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졌고 하나엄마에게서 받은 쪽지가 문뜩 떠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꺼내 펼쳐 읽었다. 


  ‘형석엄마, 나는 형석엄마가 참 좋아. 내가 만든 보잘 것 없는 음식도 항상 맛있다며 먹어주고, 시장에도 같이 가주고. 내게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내 옆에 오는 것마저도 싫어했어. 그런데 형석엄마는 그러지 않아서 참 고마웠어. 먼저 다가와 줘서 더 고마웠어. 멀리로 이사 가지만 그래도 우리 계속해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내 전화번호 잊지 말고 꼭 전화 줘. 많이 보고 싶을 거야.’


  툭, 손에 힘이 빠지며 쪽지를 떨어뜨렸다. 쪽지의 내용은 그동안의 내가 얼마나 가식으로 똘똘 뭉쳐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또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모습으로 신작로 사거리 한복판에 나를 내몰았다. 내가 조금 전 그녀를 내쫓았을 때처럼.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가차 없이 버리고, 가끔은 느린 걸음에 짜증을 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흉을 보았던 나에게 고맙다니. 한참이나 미안한 마음에 꺽꺽 울어댔다. 그리고는 떠나오는 날까지 잘 지내라는 인사도, 미안했다는 말도, 차마 그녀의 얼굴을 대할 용기가 없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사를 하고 바뀐 번호를 알려주려 몇 번이나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를 반복했다. 할 수 없었다. 이런 나는, 가식적이고 못되기만 했던 나는, 이제 와서 솔직하게 고백할 용기도 없어 너무도 창피한 나머지 차라리 그녀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싶었다. 그저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나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그녀의 맑음처럼 더 정직한 미소로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 곁을 지켜주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오늘 오래전 그 하나는 아니지만 같은 이름의 하나를 만났다. 비록 내가 알던 그 하나가 아닐지언정 내게 아까의 소녀는 그 때 그 이십 년 전의 하나다. 그 때의 잘못을 뉘우치며 내내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나에게 하나가 꽃을 준 것이다. 이 꽃, 나 용서하는 의미로 주는 거 맞지. 그렇게 믿어도 되지. 고마워. 오래오래 간직하며 착하기만 했던 하나엄마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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