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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제 Nov 06. 2022

전형적 일자리의 균열

[개정] 한국형 긱이코노미, 재야 고수들의 시대가 온다. 

MZ세대는 왜 긱 이코노미로 향하는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학입시 때는 또 수능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해야 했고, 대학 입학 전에는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학졸업 후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에는 창업과 취업의 갈림길을 마주해야 했다. 진로에 있어 내 선택 기준은 항상 안정과 자유였고, 지금도 변함없다. 대학생 시절, 운 좋게 사업 아이템이 창업공모전에 최종 선정되어 창업할 기회가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창업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내가 내리는 판단 하나하나가 사업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불안했다. 창업의 길은 나의 안정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부모님 말씀대로 직장인이 되어 볼까 생각했었다. 안정적인 월급을 위해 매일 아침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할 때마다 넥타이가 내 몸을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아플 때에는 상사의 허락을 맡고 병원을 가야 했고, 내가 만든 기획서는 항상 누군가의 결재가 필요했다. 직장 생활에는 내가 바라던 자유가 없었다.      


창업의 길은 내게 무한한 상상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단, 그 자유에는 크나큰 책임이 따랐다. 불규칙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수익흐름과 매 순간 처음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은 내 삶의 안정성을 순식간에 빼앗았다. 물론 이러한 수익의 변동성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월세, 관리비 등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다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때 나는 ‘안전정인 수익흐름’이 사업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창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고 일정하고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했다. 사회경험이 전무한 당시 나로서는 창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안정적인 수익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창업은 내게 여러 시련과 상처를 남겼다. 가장 먼저 생각할 여유와 시간을 앗아갔다. 숨만 쉬어도 매일 나가는 비용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매달 월세와 관리비 청구서가 날라왔고, 매일 나가는 식비는 부담스러웠다. 저녁마다 침대에 누워 시간이 잠시만이라도 멈췄으면 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빠르게 성과를 내야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당시 나의 행동은 더뎠고, 사업과 관련없거나 쉬운 일들만 처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매출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벌리기보다 눈 앞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처리하거나 불안을 핑계로 심리서적을 뒤적거렸다. 수익흐름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적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도전했어야 했지만, 능력부족이었던 나는 상상과 도전을 할 여유도 자유도 없었다. 자본주의의 냉기는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열정과 의지를 단숨에 꺼버렸다.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사람 관계에 있어 돈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분명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창업 초기, 나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팀원들은 분명 내 사업아이템과 비전에 공감해서 모였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신들의 기여도와 지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시간에 자신들이 받아야 할 돈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팀원들의 모습에 돈 앞에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겠구나를 느꼈다. 결국 지분 및 수익 배분 문제로 인해 팀은 와해되었고,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정부지원사업을 간신히 마무리지었다.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첫 사업도전은 그렇게 쓰디쓴 교훈들을 남긴 채 실패로 마무리 되었다. 다시는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 싫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졸업반이 되어 버린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창업가로서의 내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은 나에게 취업이라는 선택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학 내 취업센터를 밥먹듯 들락날락 하면서 NCS 교재와 삼성 GSAT 교재를 도서관에서 풀어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취준생이 된 것이다. 매일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교내외 채용사이트를 통해 확인했고, 각 기업들마다의 지원서 서식에 맞게 지원서를 고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다행히 학교를 다니면서 토익점수, 외국어인증점수, 각종 자격증 그리고 창업 및 다양한 대외활동을 한 덕분에 지원서의 경력과 이력을 빼곡하게 적을 수 있었다. 덕분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차 서류는 10번 중에 8번 이상은 통과가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2차 전형인 면접이었다. 나는 창업을 해봤다는 이력이 분명 회사에 도움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회사 실무자나 임원분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분명 회사들의 인재상에 리더십이라는 역량 요소가 있었지만, 창업경험을 통해 내가 갖췄다고 생각한 리더십은 회사들이 말하고 있는 '리더십'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한 대기업 임원급 면접에서 면접관이 내 창업이력을 언급한 뒤 던진 첫 마디가 '그럼 회사에 있다가 창업 기회가 생기면 퇴사할 수도 있겠네요?'인 것을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리더십은 좀 더 로열티(loyalty)에 가까운 개념일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회사는 회사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인재를 찾고 있었다.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영미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칸트, 레비나스, 헤겔 등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탐독했고 많은 시간을 사색을 했었다. 이 덕분에 레포트나 서술형 시험 때 참신하고도 도전적인 답안을 적어낼 수 있었고, 이는 곧 좋은 학점으로 이어졌다. 물론 좋은 학점을 위한 것이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 덕분에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었고,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나 기업들은 큰 꿈과 함께 생각이 많은 인재를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특정 직무의 일을 군말 없이 잘해낼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면접전형에서 연거푸 떨어졌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의 조건을 맞춰나가야 했다. 나는 회사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특정 직무만큼은 완벽히 해낼 수 있는 부품과 같은 인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원서에서 창업이력을 없앴고, 면접 떄에는 내 경험이 해당 직무 포지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이 회사에 얼마나 들어오고 싶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어필했다. 부품과 같은 인재가 되기로 결심한지 몇 일 뒤 나는 한 공기업의 인턴으로 선발되었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첫 출근날, 내 사수였던 분께 들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생각하지마! 생각을 버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너 마음대로 판단하지마!' 나는 대학에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왔다. 바로 이 생각하는 힘이 분명 내가 미래에 근무하게 될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말라니.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라니. 왜 나는 그동안 대학에서 사유하는 힘을 길렀을까? 왜 니체와 헤겔과 샤르트르를 읽었을까? 이런 회의감이 들 때 즈음, 대리님이 나를 호출했다. '보내준 문서에 정렬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줄바꿈도 안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떨어져. 다시 바꿔와.' 


당연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를 선택했다. 나는 회사가 바라는 인재도 창업형 인재도 아니었다. 내게 안정과 자유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MZ세대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유튜브만 검색해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퇴사 브이로그를 올리고 있고, 1인 기업, 프리랜서 혹은 긱워커로서 성공한 사례들이 언론 해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취업과 창업의 두 축으로 대변되었던 전형적 일자리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 균열을 뚫고 더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일자리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나는 그 일자리 형태를 긱 이코노미로 통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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