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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제 Sep 07. 2022

대학이 밥 먹여주는 줄...

프리랜서의 부동산 공부 - (1) 떠돌이시절

대학이 밥 먹여주는 줄 알았다. 고3 수험생 시절, 나는 부모님,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말씀을 믿었다. 좋은 대학에 나오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좋은 수능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수능머리'가 특출나지 않았다. 수능감각이 부족하고, 수능시험 때마다 긴장을 많이 하는 탓에 매 번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했다. 결국 3번 수능시험을 보고서야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인서울대학' 하나만을 목표로 내 20대 초반기를 깜깜한 독서실 단칸방에서 보냈다. 정말로 대학이 밥을 떠먹여주는 줄 알았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내 떠돌이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임시거처는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이모집이었다. 친척누나가 회사입사와 동시에 독립을 하게 되면서 이모집 방 한 칸이 남아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월세걱정은 없었지만, 학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에서 통학을 했는데도 왕복 2시간이 소요되엇다. 길 위에서 벌려지는 시간이 아까웠다.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통학을 하고 싶었다. 주변 원룸을 알아보니 정말 작은 방임에도 당시 50~6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받았다. 1,000~2,000만 원의 보증금은 덤이었다.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학교 주변 고시원을 알아봤다. 2평 남짓한 방에 샤워부스와 작은 창문이 딸린 방이었다. 무보증금에 월세 40만 원이었다. 나름 프리미엄 고시원이라 그랬는지 월세에도 프리미엄을 붙였다. 그나마 라면과 밥은 무한정 제공되니 약간의 반찬만 준비하면 식비를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었다. 


내 고시원 생활은 6개월 정도였다. 고시원생활을 시작한 후로 나는 자주 몸이 아팠다. 지금 추측해보자면, 방 안에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같이 있다보니 위생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월세를 조금이라도 덜 내고자 고시원에 왔는데, 오히려 병원비가 더 많이 나가게 되었던 것 같다. 마침 동생이 서울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신촌에 있는 원룸 오피스텔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월 70만 원, 관리비가 약 15만 원 정도 주거비가 들어갔다. 동생과 내가 같이 한 오피스텔에서 지낼 수 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 주거비 절감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도 나와 동생은 원룸 오피스텔을 거쳐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를 하면서 약 6년 간 서울 월세살이를 하였다.


군입대 기간을 제외하면, 대학졸업까지 약 5년 간 서울에서 월세살이를 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덕분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외부 전액장학금을 받고, 개인과외도 하면서 내 생활비를 일부 충당하기는 했지만, 부모님께서 월세비용을 지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지금, 그때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내가 그동안 부모님께 큰 경제적인 부담을 안겨드리면서 살았구나 깨닫게 되었다. 부동산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부모님께서 그간 짊어졌던 부담을 잘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첫 부동산 공부는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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