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그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문화예술 관련 기관
내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답은 명확하다. 내 꿈은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미술, 음악, 체육 등 예체능에서 딱히 모난 구석 없이 적당히 해냈다. 최근 불안한 마음에 찾아본 무료 사주에서도 내 사주는 '다재다능'하다고 했다. 물론 이건 칭찬이 아니다. 무엇 하나 특출 나지 않고 그저 '적당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니까.
드라마, 시나리오, 소설... 무엇이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백일장에서 겨우 '가작'이나 '동상'을 받는 나의 재능은 작가의 영역을 넘보기엔 너무 소박했다. 그래서 나는 문화예술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품게 됐다. 내가 직접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재능 있는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서포트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홍보라는 직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가. 미디어: 전공(언론학) 활용
나. 교육: 봉사 활동 경험
다. 홍보/마케팅: 수상 경력과 인턴 경력
라. 환경: 환경 선진국 독일에서의 경험
그렇게 나는 문화예술 기관의 지원했다.
당시 내가 지원한 곳은 '공무직' 채용이었다. 정년은 보장되지만 임금과 복지는 계약직 수준에 머무는, 정규직과 계약직 그 어디쯤의 모호한 형태. 취업 시장에 막 발을 들인 나는 그 간극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문화예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이 정규직과 공무직의 차이를 보지 못하게 안대를 씌웠던 것 같다.
자기소개서 항목은 7가지, 분량은 항목당 1,000자 이내였다. 도합 7,000자를 채워가며 생각했다. '역시 예술 기관은 자기소개서에서도 예술성을 요구하는구나.'
다행히 소설과 같은 장문의 자기소개서는 통했고, 다음 관문인 논술 시험장으로 향했다.
사실 논술은 조금 자신 있었다. 지난번 미디어 기관의 논술도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문화예술과 관련된 논술질문이 나올 테고, 그런 글은 백일장에서 그리고 대학교 시험시간에 수없이 많이 작성해 보았다. 게다가 공무직 채용이니, 지난번에 보았던 미디어 관련 기관의 논술보다 난이도가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장은 예전에 인턴으로 근무했던 낯익은 지역의 한 언론사 건물이었다. 손바닥만 한 의자에 딸린 간이 책상 위로 A3 크기의 거대한 논술 시험지가 놓였다. 문제는 총 네 문항으로 앞의 세 문항은 인성, 홍보 직무에 관련된 평이한 문항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4번 문항에서 터졌다. '외국인 귀빈 초대 메일 작성(English Business Email).'
간단한 메일 작성쯤이야 어렵지 않지만, 비즈니스 영어는 결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문득 이 직무가 단순히 홍보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 직무는 홍보‘국제협력’이었다. 국제협력을 위한 글로벌 인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직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무직의 처우를 제시하면서, 능력만큼은 '글로벌 인재'를 원하는 기관도 스스로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논술전형에 합격해 면접 기회를 얻었다. 6명이 20분간 보는 다대다 면접. 1분 자기소개를 포함해 겨우 세 번의 질문이 오갔다. 그마저도 내가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얻어낸 기회였다.
20분 간 6명 중에서 면접관이 나를 알아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면접장에는 이미 해당 기관의 인턴 출신이나 문화예술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면접관들의 눈길이 머무는 '정해진 주인공'들은 따로 있었다. 언젠가 취업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문화예술 공공기관은 관련 경력 없이는 발을 들이기 힘들다. 계약직부터 바닥을 굴러야 한다." 그렇다. 문화예술 기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는 공무직 이전에 계약직 경력부터 쌓얐어야 했던 것이다. 이 시장에서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은 기관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탈락이었다.
주제파악을 못한 나와 이 기관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기관은 종종 한 명씩 공무직을 채용했는데, 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심심하면' 지원서를 던졌다. 논술시험을 치고 면접장에 가기를 총 여섯 번. 면접비 2만 원을 세 번 받으니 가난한 취준생에게는 마치 용돈벌이처럼 쏠쏠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문화예술계답게 통통 튀는 지원자를 선호하는 것 같아서 밝게 답변을 했고, 어떨 때는 경력자 느낌의 지원자를 선호하는 것 같아 차분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이 불합격이었고, 한 번은 적격자 없음으로 합격자가 없기도 했다. 지원을 반복할수록 확신은 뚜렷해졌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준비된 문화예술계 경력자'도, '유창한 글로벌 인재'이며 나는 두 범위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다는 것을. 나의 직무 세분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설정한 인재상의 궤도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결국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고, 예술가의 서포터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6번의 방문 끝에 얻은 것은 있다. 환상이 걷힌 자리에 남은 냉정한 자기 객관화. 그것이 내가 취업 시장에서 배운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