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둘째 날
가족끼리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엄마는 한 번씩 이미 지나친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그러고는 꼭 한마디를 한다.
“갔다 와, 여기 있을게.”
그렇게 다녀오면 엄마는 그 자리에 없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보면 다른 코너에 가있는 엄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엄마의 특기다.
과거 동생이 안경점에 안경을 맡겨,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엄마는 그렇게 사라졌었다. 20년이 넘게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이젠 마트에서 엄마가 사라져도, 엄마가 어디에 있을지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데이터들이 마트라는 장소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파리의 일정은 동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 동생은 그 돈을 주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만 갈 수는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 의견을 존중해서, 그리고 내가 좋아해서 파리가 추가되었다.
파리의 일정은 5박 6일이었는데, 동생은 파리에서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대표적으로 하루씩은 투자해야 하는 디즈니랜드와 몽생미셸이었다.
몽생미셸은 투어를 신청하면 되지만, 디즈니랜드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이유에는 엄마가 있다. 엄마가 불꽃놀이 시간까지 디즈니랜드에서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동생은 엄마 혼자 숙소에 가게 하라고 했지만 한국에서도 지도 어플을 볼 줄 모르는 엄마가 프랑스에서 혼자 디즈니랜드에서 숙소까지 가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결국 엄마는 한번 버텨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디즈니랜드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디즈니랜드에 가기 전에 거쳐갈 곳이 새로 추가되었다. 바로 파리의 아울렛인 라발레빌리지다.
라발레빌리지는 디즈니랜드의 바로 전 정류장에 위치했는데, 보통 두 곳을 묶어서 가곤 한다. 나는 디즈니랜드에서만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만, 전날 라발레빌리지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한 엄마의 말도 그렇고, 유럽에서 아울렛을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 라발레빌리지를 들렀다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오늘은 밖에 늦게까지 있을 것을 고려해 아점을 먹고 10시 반쯤에 숙소에서 나왔다. 파리의 시내에서 라발레빌리지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데,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 된다.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기차는 미키마우스 표시를 찾아가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역에서 내린 후에 대형 쇼핑몰을 지나면 라발레빌리지다. 쇼핑몰 안에 있는 프랑스 국민 빵집 Paul에서 뱅오쇼콜라, 까눌레, 크루아상을 먹어보았다. 빵은 초코빵과 소시지빵만 좋아하던 동생도 크루아상을 먹고 눈을 번쩍 떴다. 그냥 바삭한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쫄깃함,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중량, 버터향까지 너무 맛있다고 했다. 빵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엄마도 역시 프랑스 빵은 다르다며 평소보다 조금 더 먹기까지 했다.
드디어 라발레빌리지에 입성했다.
명품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들의 명품사랑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나라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명품을 사랑한다고 답하고 싶다. 라발레빌리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가의 브랜드일수록 줄은 더 길었다. 예전에 갔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울렛 더몰과의 차이점은, 코로나 때문인지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휴가를 온 유럽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간 라발레빌리지의 쿠폰으로 라뒤레 마카롱도 교환해서 먹고, 몇몇 매장을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을 있었지만 조금 부담스러워 고민하는 나에게, 엄마는 파격 발언을 했다.
바로 내가 가방을 구매하면 여행경비 전부를 엄마가 후원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어렵다. 그간 여행하면서 드는 경비는 대부분 내가 우선 결제하고 있었다. 내가 번듯한 직장이라도 있었다면 여행경비 전부를, 아니 비행기 값이라도 부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이제 취업준비생이 된 나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여행이 끝나고 경비를 n분의 1로 나누어 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이 영 껄끄러워 걱정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여행 경비를 전부 내주겠다니!
바로 가방을 구매했다. 난 이 여행이 엄마를 모시고 하는 효도여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다니는 양육여행이었던 것이다. 진작 말씀해주시지, 그럼 더 극진히 모셨을 것 아니에요?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가방을 구매했고, 엄마는 스카프도 구매했다. 언젠가 해외에 나갔었던 아빠가 반쪽짜리 스카프를 사다 줬었는데, 드디어 긴 스카프를 가지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드디어 짐을 짐 보관소에 맡기고, 디즈니랜드에 입성했다.
파리의 시내뿐만 아니라 디즈니랜드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엄마는 엄청난 인파에 놀라 야외임에도 마스크를 바로 쓰면서 마스크를 하나 더 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괴성을 지르며 파리 디즈니랜드의 랜드마크,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성으로 달려갔다.
파리 디즈니랜드는 성과 퍼레이드, 불꽃놀이를 하는 디즈니파크와 놀이기구들이 주로 있는 디즈니스튜디오로 나누어진다. 이왕이면 다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두 곳 모두 갈 수 있는 투파크티켓을 구매했다. 퍼레이드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성을 보고 놀이기구를 타러 스튜디오로 향했다.
전 세계 여러 곳에 디즈니랜드가 있는데, 각 디즈니랜드들마다 유명한 놀이기구가 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모티프로 한 라따뚜이 어드벤처와 니모를 찾아서를 모티프로 한 크러쉬코스터가 유명하다. 그 말은 그 두 개는 꼭 타봐야 한다는 뜻이다.
크러쉬코스터로 향했다. 대기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엄마와 동생은 별 생각이 없었기에 줄을 서보자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줄이 길지 않아 보였는데, 구석구석 숨겨진 줄이 어찌나 길던지. 1시간 30분 아니라 체감상 세 시간은 줄을 선 것 같다. 그냥 줄이 짧은 놀이기구를 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기다림 끝에 탄 크러쉬코스터는 대부분의 롤러코스터들이 그렇듯,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엄마와 동생은 벽을 짚으며 걸어 나왔다. 전날 와인을 꽤나 마신 엄마는 속이 울렁거린다 했고, 동생은 무서웠어서 토할 것 같다고 했다. 오랜 시간 기다린 것 치고는 반응이 별로였다.
두 번째 필수 놀이기구, 라따뚜이 어드벤처 차례다.
라따뚜이 어드벤처는 라따뚜이의 주인공, 라미의 친구 쥐가 되어 레스토랑을 모험하는 3D 놀이기구다. 우리는 대기를 거의 하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앞서 탄 크러쉬코스터에 비하면 라따뚜이는 갓난아기도 탈 수 있는 놀이기구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엄마와 동생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왜 아까 롤러코스터를 타고 곧바로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는 놀이기구를 탔냐며 한 소리 들었다.
그래, 다 내 욕심이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도 몇 개 더 타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디즈니랜드는 티켓이 있으면 하루 동안 자유롭게 안과 밖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디즈니랜드 밖에 있는 파이브가이즈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파이브가이즈를 선택한 이유는 테라스자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테라스에 앉자, 직원이 와서 난로를 켜줬다.
감자튀김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테라스자리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엄마는 기겁을 하며 먹는 것을 멈추고 마스크를 썼다.
밥을 먹고도 불꽃놀이가 시작하기까지는 3시간가량이 남았다.
힘드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를 숙소까지 데려다줬다가 돌아올 수도 없고, 엄마 혼자 숙소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선택권은 없었다. 디즈니랜드에 가겠다고 결심한 이상, 엄마가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디즈니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기념품샵이었다.
디즈니랜드의 곳곳에 기념품샵이 있다. 우리는 역 근처에 위치한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기념품샵 안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엄마는 무섭다며 안 들어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구경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묻자, 그건 아니라고 한다. 마스크를 꼭 쓰고 다 같이 기념품샵 안에 들어갔다.
기념품샵 안은 천장도 낭만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사진을 한번 찍고, 엄마에게 천장이 예쁘지 않냐고 물어보며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엄마가 없었다.
엄마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무섭다더니 정말 안으로 안 들어온 건가 싶어 밖으로 나가보았다. 하지만 바깥에 엄마는 없었다.
그럼 기념품샵을 구경하고 있는 건가? 곳곳을 살펴봤지만 엄마를 찾지 못했다. 기념품샵 안을 두 바퀴 정도 돌았을까?
인형을 구경하고 있는 동생을 불러 세웠다.
엄마가 없어졌어.
동생과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찾아다녔지만, 엄마는 없었다.
동생은 기념품샵 안에서, 나는 바깥에서 엄마를 찾기로 했다.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하지?
예전에 서울할머니가 호주에 살고 있는 삼촌네에 방문하신 적이 있다. 할머니는 아침에 혼자 산책을 하시다가, 길을 잃어버리셨다. 할머니가 없어져서 난리가 난 삼촌네 집으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서에 가보니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가신 할머니가 꼿꼿하게 앉아계셨다고 한다.
엄마도 서울할머니처럼 경찰서에 찾아갈까? 하지만 여기는 시내가 아니다. 경찰서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무엇보다 내 핸드폰은 전화가 안 될뿐더러, 여긴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는다.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엄마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엄마가 지하철을 혼자 탈 수 있나? 숙소 위치는 알긴 하나? 엄마가 싫다고 해도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을 보는 법을 어떻게 해서든 가르쳤어야 했는데… 멀더라도 엄마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다시 올 껄. 그냥 디즈니랜드에 오지 말았어야 한다.
애초에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 유심 매장에 찾아가서 전화가 되는 유심으로 바꿀 걸! 아니! 그 업체에서 유심칩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혼자 깊은 걱정의 굴레에 빠져있을 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찾았어.
엄마는 동생의 손을 잡고 기념품샵에서 나왔다. 엄마의 반대쪽 손에는 열쇠고리 몇 개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기념품들도 구경하고, 사고 싶은 것을 혼자 계산했다고 했다.
분명 아까 기념품샵에서 엄마를 찾을 때는 엄마가 없었는데 말이다. 긴장이 풀렸다. 한편 동생은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그냥 기념품을 구경할 걸 그랬다며 투덜거렸다.
어릴 적 집 안에서 요요를 가지고 놀다가 거실 등을 깨부순 나에게 ‘그래, 안 다쳤으면 된 거지’라고 해줬던 엄마처럼, 나도 ‘그래, 안 잃어버렸으면 된 거지’라고 해주었다.
짐 보관소에 맡겨둔 짐을 챙겨 오며 엄마에게 물었다. 만약 그렇게 우리를 못 찾았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엄마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경찰서에 가면 되지.
내가 그렇게 교과서적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혼자 사라지지 말라고 하자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동생이 기절하는 줄 알았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본인의 인생에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한다.
나도 좋았다. 아니, 솔직히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 처음 디즈니랜드 불꽃놀이를 보았을 때는 나도 동생처럼 좋아서 눈물이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앞사람들이 앉으면 다 같이 앉아서 볼 수 있을 텐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꽃놀이는 이전에 내가 봤을 때와 똑같은 코스로 진행되었다. 그때는 불꽃놀이가 끝날까 전전긍긍하면서 봤었지만, 이제는 하나하나 세어가며 언제 끝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다리가 아팠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어 슬프다고 한다.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해도 처음 할 때보다 그 충격과 기쁨이 덜하니 말이다.
문득 여행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그랬을까?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미디어에서든, 실제에서든 보고 겪었기 때문에 큰 감흥이 없었을까? 엄마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불꽃놀이도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엄청난 인파가 지하철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도 지하철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바른걸음으로 향했다. 그렇게 지하철 역에 도착했는데 내 교통카드에 오류가 생겨 개찰구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첫날 때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이젠 요령이 생겨 개찰구를 그냥 뚫고 나왔다. 덕분에 우리 모두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 끝이다. 방심하고 있는데, 엄마가 귓속말로 물었다.
“내일 한다는 무슨 투어 내 건 취소하면 안 되니?”
출발 8시간도 안 남은 투어를 취소해주는 투어사가 어디 있어요. 엄마에게 취소는 안 되고 그냥 엄마가 안 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투어가 얼마냐고 물어본 엄마에게 한 사람당 이십만 원이라고 알려주자, 엄마는 가야겠다고 했다.
어른이 되면서 처음 겪는 걱정들이 늘어난다.
내가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른은 책임질 것도, 걱정할 것도 많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환상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은 늘어나지만 기쁨은 줄어드나 보다.
하지만 이모들에게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는 대단하긴 하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엄마를 보면 기쁨의 크기가 조금 줄어드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습게도 나 역시 불꽃놀이를 보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지고, 그 순간을 더 즐기지 못한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른은 처음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강렬한 기쁨은 줄어들지만, 잔잔하고 소소한 기쁨과 아쉬움을 발판 삼아 살아가나 보다.
그런 소소한 발판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