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첫째 날
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섯 곳 정도 선택하라 한다면 파리를 제일 먼저 말하고 나머지 네 도시는 더 고민할 것 같다.
그만큼 나는 파리라는 도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파리는 일정에 넣지 않았었다. 파리의 강도에 가까운 소매치기, 냄새, 인종차별의 악명 때문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데 그 악명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계획을 짜는 나에게 엄마는 유럽에 가는데 왜 파리를 안 가냐고 물었다. 나는 차마 무서워서라고 대답은 못하고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파리를 안 가는 이유가 단순히 무서워서인 것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계획에 파리를 넣고 일정을 조금 늘렸었다.
그렇게 도착한 파리는 정말 멋있었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가짜 역무원에게 돈을 뜯길뻔하긴 했지만 말이다.
노란 조명이 켜진 에펠탑, 박물관에 무수히 많은 유물들(다 약탈한 것들이지만), 맛있는 크루아상과 바게트, 세느강을 끼고 걷는 것까지, 무섭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의 죄책감과 채무감 때문에 좋은 것을 온전하게 즐기진 못했다.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보고 즐겨도 되는 것인가? 언젠가 꼭 엄마를 데리고 와야지.
그렇다, 당시 나는 완벽한 K-장녀였던 것이다.
오늘, 언젠가 파리에 엄마를 데리고 오겠다는 K-장녀의 숙원이 이루어진다.
밤새 비가 더 왔었는지 돌길이 물에 젖어 반질반질했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중간중간 물 웅덩이를 피해 가면서, 미스트 같은 보슬비를 온 얼굴로 맞으며 파리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갔다.
우리는 유럽 전역을 다니는 플릭스 버스를 타기로 했다.
플릭스 버스는 한국의 고속버스와 비슷한데, 다른 것은 대부분 버스터미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플릭스 버스 정류장은 혼잡한 길 한복판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 같았다. 그리고 이 작은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는 또 얼마나 많던지. 유럽의 웬만한 곳은 다 연결되어있다는 점 때문에 정말 혼잡 그 자체였다.
그렇게 몇몇 버스를 보내고 나니, 우리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가 탈 버스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우리의 캐리어를 짐칸에 실은 것이다.
이제 버스에 탑승하려는데 기사가 짐칸 문을 닫는다. 아직 짐을 싣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그러더니 반대쪽 짐칸 문을 열었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반대편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기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았다.
프랑스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베흐씨와 샤를드골이라는 단어가 귀에 딱 꽂혔다.
그렇다. 이 버스의 도착지는 두 곳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내릴 베흐씨 역 다음에 샤를드골 공항으로 향하고, 도착지에 따라 짐칸을 나눈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캐리어를 넣은 짐칸은 샤를드골 공항으로 가는 사람들의 짐칸이었다.
우리의 짐을 옮겨야 했다.
버스 기사는 덩치가 큰 민머리의 프랑스인 아저씨였다.
하, 프랑스인이랑 말하기 싫은데…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생각이지만, 그 순간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파리에서 유심카드를 만들러 들어갔다가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빈 손으로 나와야 했던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뭐,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우리의 짐을 옮기기 위해서는 기사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고민했다. 영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가, 모르는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가! 엄마와 동생은 머릿속이 복잡한 나를 기사 아저씨 쪽으로 떠밀었다. 제발 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을 다 넣었을 즈음,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베흐씨! 그리고 캐리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벗 러기지 인 샤를드골! 파흐동(미안하다)!
단어들의 조합에 아저씨는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 대답을 했다. 대략 너희 짐이 샤를드골에 가는 칸에 있냐는 뜻 같아서 나는 연신 위! 위(yes)! 를 연발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고, 곧 샤를드골 공항행 짐칸을 열어주었다. 나는 메흐씨(고맙다)를 외치며 우리 짐을 꺼내 베흐씨행 짐칸으로 옮겼다. 아저씨는 고맙다는 내 말에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 프로블렘~”
걱정과 달리,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릴에서 파리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정도 걸린다.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향하는 기차에 만만치 않게 긴 시간이었지만, 버스에 사람이 많지 않아 한 사람당 두 자리씩 차지하고 갈 수 있어서 제법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동생은 누워있었고, 그 앞에 앉은 엄마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할 무렵, 엄마가 건너편에 앉은 사람, 그러니까 내 앞에 앉은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쳐다보지 말라며 눈치를 주었다. 엄마는 내 앞사람에게 시선을 떼고는 다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급기야 동생마저 일어나 그 사람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엄마와 동생에게 그 이유를 물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마스크를 내리고 화장을 해서 쳐다보았다고 했다. 내가 프랑스는 보편적으로 마스크를 철저하게 쓰지 않으니 보편이니 쳐다보는 것은 실례라고 하자, 엄마는 억울해하면서 말했다.
“근데 그 사람이 바지를 걷어올려서 다리까지 파운데이션을 발랐단 말이야~”
그건 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접어두고, 괜히 사람을 쳐다봤다가 이상한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으니 웬만해서는 쳐다보지 말라고 일렀다.
우리가 도착한 베흐씨 역은 지하주차장처럼 생긴 제법 규모가 있는 버스터미널이었는데, 한국처럼 터미널과 지하철이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공원을 가로질러야 했는데, 전날 파리에도 비가 왔었던 것인지 공원은 정말 질척 질척했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파리에서 악명 높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지하철이다. 지하철이 파리에서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냄새, 소매치기, 사기꾼을 다 경험할 수 있는 종합똥세트이기도 하다(실제로 파리 지하철역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아무 곳에 배설을 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베흐씨역으로 향하면서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냄새도, 소매치기도, 사기꾼도 아니었다. 바로 에스컬레이터였다. 파리의 지하철에서는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에스컬레이터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선진국이라지만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친화적인 도시는 아니구나 생각한다. 뭐, 그들만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교통편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물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없다는 것은 캐리어를 끌고 있는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베흐씨 역에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내려가는 방향, 올라가는 방향 두 곳 모두에 에스커레이터가 있었다.
파리 지하철, 고맙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에스컬레이터에 크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 이후로는 파리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파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교통권이 있다.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파리에 머무르는 데다가, 개별 교통권의 가격이 비싼 디즈니랜드와 샤를드골 공항도 갈 예정이니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동안 사용 가능한 교통카드 나비고를 구매하기로 했다.
플릭스 버스 아저씨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베흐씨역에 있는 고객센터에서도 우렁차게도 말했다.
“트후아(세 개) 나비고 씨부쁠래(부탁해요)”
돌아온 답은 ‘노’였다. 나비고 카드가 없단다. 머쓱해하며 1회권을 세 장 구매해 숙소로 향했다.
지하철을 한 번 환승해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은 고가철도였는데,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있지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없어서 캐리어를 들고 내려왔다. 내려오니 역내에 작은 고객센터가 있었다. 저기에는 나비고 카드가 있을까? 나는 쭈뼛거리며 고객센터로 향했다.
“트후아 나비고 씨부쁠래”
이번 고객센터 직원은 너희 일요일까지 파리에 머무냐라고 물었고 내가 토요일까지 있는다고 하자 계산은 하나씩 하면 된다고 했다. 나비고 카드 세 개를 건네주면서 꼭 이름과 생년월일을 쓰라고 일러주었다.
나비고 카드 세 개를 품에 안고 따뜻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숙소까지는 동생이 길을 찾기로 했다. 중간에 헤매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문을 찾았다. 대문을 열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해 내가 비밀번호를 불러주려는데, 동생이 대문의 철장 사이로 손을 쑤욱 넣어 안 쪽에 있는 문이 열리는 버튼을 눌렀다.
그래,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파리의 첫 번째 숙소는 우리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원룸형 숙소였다.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이라는 것이다. 계단을 오를 각오는 했었다. 그런데 그 계단이 나선형 나무 계단인 것은 생각 못했다.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엄마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힘들다고 했다.
캐리어가 작은 엄마와 동생이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나도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24인치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동생이 꽥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층 수를 생각 안 하고 올라가다 보니 6층까지 올라갔단다.
힘이 남아 도니?
동생이 열쇠로 문을 열고, 엄마가 내려와서 나를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이제 지쳤어요.
엄마와 진흙이 묻은 캐리어 바닥을 닦는 동안, 동생이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다가 창밖의 에펠탑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정말 뿌듯했다.
이 숙소를 찾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했던가! 혼자 여행했다면 엄두도 못했을 그런 숙소였다.
동생은 열심히 사진을 찍으랴, 영상을 찍으랴 바빴다. 그런데 엄마는 에펠탑을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뭘까? 포르투의 동루이스다리처럼 별 감흥이 없는 걸까? 엄마에게 저게 뭔지 아냐고 물었다. 엄마는 대답했다.
“송전탑 아니야?”
내 입에서 단전에서 끌어올린 괴성이 튀어나왔다. 저게 에펠탑이야아아악!!!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엄마는 에펠탑이 생각보다 볼품없다고 했다. 아.. 난 정말 지쳤어요.
동생은 시간이 아깝다며 빨리 나가자고 성화였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장보기였다.
매일매일이 장보기의 굴레다.
이때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장을 보러 갈 힘이 없다고 했고, 엄마와 동생은 본인들이 장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엄마와 동생이 나간 사이 나는 세느강을 지나는 유람선 바토무슈 티켓을 예약했다. 바토무슈는 해가 질 때, 다리와 에펠탑에 조명이 들어오는 시간에 타면 멋진 야경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해가 지는 시간도 체크하며 오늘 일정의 시간을 나눴다.
엄마와 동생은 두 손 한가득 짐을 들고 돌아왔고, 시간이 애매해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에펠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동생과 트러블이 발생했다. 내 검정 코트를 입겠단다. 내 검정 코트로 말하자면, 사이즈를 한치수 크게 사는 바람에 170에 달하는 나에게도 발목까지 오는 긴 코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코트였다. 물론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동생이 그 코트를 입은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파리에서만은 입지 않길 바랐다. 파리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데! 동생은 분명 코트를 밟고 무언가를 묻히고 난리도 아닐 것이다. 내가 제발 입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동생은 오늘 입기로 여행 전부터 계획되어있었기에 입어야겠다고 했다.
평소에 계획은 하나도 안 세우면서 이런 거에만 열심히다. 여행하면서 서로 옷을 공유하기로 약속을 했었기에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내 코트여…
아까는 볼품없다고 했지만, 막상 에펠탑 앞에 오니 엄마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에 들은 것 같아 다행이다.
사람들이 피크닉을 하곤 했던 에펠탑 뒤의 공원은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공사 중이었다. 에펠탑을 제대로 보기 위해 에펠탑 앞으로 향하는데, 사람이 많았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 많은 도시들을 지나왔지만 파리는 마치 코로나 이전인 것처럼 사람이 정말 많았다.
동생이 사진을 찍겠다고 높은 곳에 올라가다 코트를 구깃구깃 밟는 모습을 보고, 내가 소리를 꽥 지른 것 말고는 순탄했다.
우리는 바토무슈 선착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엄마는 코로나에 걸릴 것 같다며 숨을 참았다. 이러다 우리 엄마 기절하겠다.
우리는 바토무슈 2층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동생은 그 순간에도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아깝다며 유람선 곳곳을 누볐다.
바토무슈는 1시간 정도 파리 시내를 둘러보는 코스다. 문제는 출발한 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조명이 켜지지 않는 것이었다. 옆에 앉은 동생은 언니 말 듣고 바토무슈 탔다가 조명이 들어오는 것도 못 보게 생겼다며 투덜거렸다. 분명 슬슬 조명이 들어와야 하는데…. 나도 덩달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이 해가 지면 바토무슈를 또 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궁시렁거릴 즈음, 드디어 세느강의 다리들과 에펠탑에 조명이 들어왔다.
조명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엄마와 동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엄마는 동생 옆에서 동생을 따라 셀카를 찍고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세느강 위의 유람선에서 노란 에펠탑을 보고 있다니…
지금 우리는 파리에 있다.
바토무슈에서 내리면서 동생에게 한번 더 타고 싶냐고 물었다.
동생은 추워서 싫다고 했다. 우리는 개선문을 보고, 샹들리제 거리에 있는 라뒤레에서 마카롱까지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을 때다.
엄마는 낮에 장을 볼 때 먹고 싶었던 것을 샀다며, 오늘 그것을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무언가 하고 봤는데, 바로 대구였다. 엄마는 고기보다 회와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대구 요리를 팔지만, 많이 짰기 때문에 음식을 시킬 때 넘기곤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계속 먹고 싶었나 보다.
우리는 고기와 대구를 굽고 와인도 마셨다. 엄마와 동생은 창 밖으로 보이는 에펠탑을 보며 파리가 좋다고 했다.
와인을 제법 마신 엄마는 돌아가신 서울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했다. 나도 조금 슬펐다.
내가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엄마를 떠올렸던 것처럼, 엄마도 에펠탑을 보고 서울 할머니를 떠올렸을까? 엄마는 서울 할머니에게 못해준 것들이 생각나 슬프다고 했다.
파리에 오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여행에 나는 지쳐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순간에 엄마에게 못해준 것들이 생각날 것 같다. 내가 좋은 것을 보면 엄마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엄마를 닮아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행을 하면서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빨리 힘내서 언젠가 할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